드라마 [블랙 리스트]로부터
미국 NBC 드라마 [블랙 리스트]의 시즌 6, 에피소드 5. (안 본 이들을 위해 (아주 아주) 간략히 드라마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주인공 '레이먼드 레딩턴'(제임스 스페이더)은 오랜 세월 공권력과 법망을 피해서 살아온 지명수배자로서, 어느 날 FBI에 자신이 알고 있는 강력 범죄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스스로 나타나면서 드라마의 시즌 1이 시작된다.) 매 회 다양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자들이 다뤄지는데, 에피소드 5에 등장한 '얼터 이고'는 회차가 끝난 즉시 같은 회차를 한 번 더 보게 만들 만큼 소재 면에서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Alter Ego. 정확히는 범죄자의 이름이나 가명이 아니라 그(들)의 소속 회사명인데, 드라마 속 얼터 이고는 요컨대 '인간관계의 공백을 채워주는 곳'이다. 지인이나 결혼식에 동반할 사람이 필요하다든지, 편부모 자녀에게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부모를 소개해주고 싶다든지 하는, 다양한 니즈의 사람들이 고객이 되고 얼터 이고에서는 자사의 수백 명의 전문 배우들을 활용해 고객에게 그들이 필요한 관계를 제공한다. 작중에는 게이 남성이 고지식한 부모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가짜 이성 결혼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얼터 이고에 딱 결혼식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대가를 지불했다.)
얼터 이고라는 사명에서 이미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는 사회적으로 규정되거나 인지된 자아를,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바꾸는 일이다. 드라마 밖 현실에서도 결혼식 일일 하객 아르바이트 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이 관계들은 가짜일지라도, 이용자가 느끼는 경험만큼은 완전히 가짜라고는 단정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가족이 필요한 사람, 친구가 필요한 사람, 파트너가 필요한 사람. 얼터 이고를 방문한 FBI 요원에게 회사 대표가 말하듯, 어쩌면 '돈을 받고 거짓말을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관계에 있어 생겨난 공백을 한시적으로나마 채우는 일이 그 사람에게 주는 순간의 경험만큼은 '아주 현실과 흡사한' 것이 된다.
그동안 법정에서 궁지에 몰리게 된 '레딩턴'은 언제나 자신이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던 중 '운명이 자신을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즌 6의 한가운데의 이야기에 대해 언급한다고 해서 이것이 안 본 사람에게 스포일러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만 언급하는 게 좋겠다.) '레딩턴'이 여기서 겪는 일을 돌이켜 보면, 운명이 나를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의 주체와 의지로만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앞에서의 얼터 이고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봐도 될까. 오랜 기간 자연스러운 계기와 우연들로 인해 쌓여온 관계가 아닌 인위적으로 '생성한' 관계가 자신의 일부를 대신하는 일.
드라마 이야길 꺼낸 건, 글을 쓰는 일이, 쓰인 글 속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되는 생각과 감정들이, 과연 쓰는 사람 자신의 그것과 온전히 일치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는 질문에 대해 매일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기 위하여 글을 쓴다고 언젠가 적은 적 있다. 과연 글을 쓴다는 것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줄까. 삶에는 분명 '얼터 이고'도 대신해줄 수 없는, 오직 혼자만의 순간이 찾아온다. 오래도록 써내려 온 글들은 그 존재와 흔적이 곧 '저는 이런 생각과 경험을 하고 살아왔습니다'라는 단서가 될 수는 있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매 순간, 글을 쓰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조금씩 되어간다. 그렇다면 이만큼의 글을 쓴 나는 어제의 나와는 얼마나 다른 '나'인가.
격일 단위로 2,000자 안팎의, (거의 언제나 2,500자를 채워온) 리뷰를 쓰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영화를 봤고, 그만큼 유튜브나 넷플릭스, 혹은 책과 같은 다른 콘텐츠에 소비/투자하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아무리 글을 빨리 쓸 수 있다고 해도, 영화는 빨리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킵'하거나 건너뛰면서 어떤 작품을 봤다고 하는 건 분명한 착각이므로, 나는 영화를 볼 때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넘기지 않으며 계속해서 봐야만 한다.) 현실이 아닌 스크린 혹은 '브라운관'(아직도 이 용어가 쓰이는지 모르겠으나)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의 삶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암묵적인 답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확실한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단지 나는 그것들을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쓰거나 말하길 좋아할 따름이다.
혹시 쓰거나 말한 적이 있었던가. 끝까지 읽을지 여부도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의 2,000명에게 노출되는 글보다, 확실히 읽는 20명에게 전달하는 글이 그 점에서는 좀 더, 아니 많이, 더 '나다운' 글을 쓰는 일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이 소규모 연재 [봐서 읽는 영화]의 vol.01을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껏 이어올 수 있었고, 이제 vol.02를 준비하고 있다. 가상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거기로부터 현실에 가닿는 어떤 가치를 찾아내려 노력하고 그것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서 전달하는 일. 3월의 마지막 날이다. 보지 못한 영화와 드라마와 책들이 매달, 매주, 매일 생겨나고 쌓여간다. 평생에 걸쳐서도 결코 다 보지 못할 그것들 중 극히 일부로나마 무엇인가를 공유할 수 있다면 그 일은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나의 '이고'와 부합하는 일이다. 언젠가 생각이 달라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하고 싶다고 믿고 해야 한다고 믿는 이 일을 계속해보려고 한다. (2019.03.31.)
본 글은, 4월 8일(월)부터 시작될 연재 [봐서 읽는 영화] vol.02의 '파일럿 에피소드' 성격의 글입니다. 4주간 14편의 영화 글이 이메일로 전달되는 [봐서 읽는 영화] vol.02의 신청은 (링크)에서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