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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23. 2019

'토이 스토리 4' - 만들어졌어야만 하는 속편

모두에게 삶을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2010년 개봉했던, 픽사와 디즈니 작품 사상 처음 아이맥스로 상영된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 3>에 대해 각별한 기억을 갖고 있을 많은 관객들이 <토이 스토리 4> 제작 소식에 아마 조금이라도 우려를 했을 법하다. 아니, 우리의 <토이 스토리> 시리즈도 건드려 속편을 만들겠다고? 처음 2017년 여름으로 예정되었던 <토이 스토리 4>는 당초 연출자였던 존 라세터가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하고 각본이 대폭 수정되며 개봉 시기도 연기되어 2019년 6월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개봉한 <토이 스토리 4>는 세 편의 시리즈 전작들에 비교해 전혀 손색없는 압도적인 호평을 얻고 있는 것은 물론, 북미 기준 시리즈 사상 최고 오프닝 성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트릴로지로 이미 마무리된 시리즈를 한 번 더 살려내 그 이야기를 확장하고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무리하기. <토이 스토리 3> 이후 9년 만에 개봉한 <토이 스토리 4>는 이야기 역시 전작의 9년 후로부터 시작된다. (오프닝 시점은 2편과 3편 사이에 해당) 극장에서 모처럼 만나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속편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작품을 만난 소감을 본 글을 통해 한 번 더 적기로 한다. (이전 글: (링크), 스포일러 없음)


*이하 <토이 스토리 4>의 직,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3편의 이야기는 정말로 거기서 끝이었나?


성장한 ‘앤디’가 대학생이 되어 자란 곳을 떠나기 전 ‘보니’에게 자신의 정든 장난감들을 물려준다. "So long"이라고 말했지만, 고마웠다고 말했지만, <토이 스토리 3>의 이야기는 정말로 완벽한 마무리였을까? ‘장난감이 말을 하고 움직인다면’ 같은 상상을 기초로, 그간의 시리즈는 줄곧 인간, 특히 유년의 시점과 시선에서 실현된 그 상상을 장난감들의 이야기로 구체화했다. 방 안에 늘어져 있는 수많은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움직이며 내레이터이자 해설자처럼 그 캐릭터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역할을 부여해 행동을 이끌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아이. 그리고 새 장난감이 들어오는 상황이나 장난감 수집가에게 팔려가는 상황 등 세 편 모두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어드벤처’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장난감이나 인형에 얽힌 각별한 추억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탄탄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었다. ‘우디’와 ‘버즈’를 필두로 각 캐릭터의 생동감과 개성은 놀라울 만큼 탁월했다.


영화 <토이 스토리 4> 스틸컷


관객들 저마다가 가지고 있을 유년의 추억을 잠시 소환해 재확인하고, 마침내 자라나는 또 다른 아이에게 그것을 물려주는 이 이야기는 모든 장난감과 인형에게 ‘주인’이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완구점의 수많은 ‘버즈 라이트이어’들은 자신을 구입해 갈 주인을 만날 때까지 진열대에 머문다. 누군가 그것을 구입해야만 거기에 이야기가 입히고 마침내 추억이 되었다. 그렇다면 ‘보니’처럼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한 장난감들은,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어떻게 되나. 쓰레기장으로 향해야만 하는 운명인가? <토이 스토리 4>는 기본적으로는 ‘우디’와 ‘보핍’의 재회를 큰 틀로 삼지만, 보다 많은 부분을 포괄하는 가정은 9년 후 ‘보핍’의 상태를 비롯해 골동품점의 여러 장난감 캐릭터들의 존재와 역할을 미루어 볼 때 위와 같은 대목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요컨대, ‘토이 스토리’에서 장난감은 주인이 있어야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인가. 한 가지 더 있다. ‘우디’가 ‘보니’의 가장 아끼는 장난감이 아니라는 점.



영화 <토이 스토리 4> 스틸컷


‘장난감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아이들은 한 번 산 장난감을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쓰지 않는다. 잃어버리기도 하고, 싫증이 나서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혹은 버리기도 한다. ‘하늘색 하늘’과 구름 배경의 타이틀이 나오기 전, 그리고 <토이 스토리 3>의 시점이자 <토이 스토리 4>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9년 전. 폭풍 속에서 ‘보핍’도 그리 말한다. “아이들은 늘 장난감을 잃어버려.” ‘우디’는 ‘보핍’이 떠나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보핍’은 자신이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비를 맞으며 ‘보핍’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는 ‘우디’. ‘우디’는 자신의 모자가 비바람에 날아갈까 염려해 고쳐 눌러주는 ‘보핍’의 마음과 눈빛을 잊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친절하게도 <토이 스토리 4>는 어린 ‘앤디’가 자라 대학생이 되기 전 ‘보니’에게 자신의 장난감들을 물려주기까지의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짧게 반복한다. 1편에서부터 3편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어땠는지를 상기시키는 짧지만 효과적인 이 대목은 ‘우디’와 ‘버즈’ ‘장난감’이 내는 소리를 따라 하는 ‘앤디’의 음성과 함께 그의 손에 쥐어진 채 방 안 구석구석을 하늘처럼 활공하는 토이 캐릭터들의 눈빛을 오간다. 조금 자란 ‘보니’는 이제 유치원에 간다. 그리고 이제 ‘우디’는 보안관 역할을 ‘제시’에게 넘겨준 채 ‘보니’의 역할놀이에서 조금씩 소외되고 있다. <토이 스토리 4>는 ‘주인이 있는 장난감의 삶’이 어떤지 이제야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전편에서 ‘앤디’가 비록 ‘보니’에게 “이 장난감들은 내게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니까 잘 대해주겠다고 약속해 줘”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쉽게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니까. ‘보핍’이 그랬듯 ‘우디’의 주인 역시 다시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영화 <토이 스토리 4> 스틸컷

반복하는 것 같지만 다른 이야기


‘보니’가 유치원 예비소집일에 ‘만들어’ 온 ‘장난감’인 ‘포키’는 태어날 때부터 장난감으로 (이를테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쓰레기통에 있는 갖가지 물건들을 ‘보니’가 조합해 문자 그대로 ‘만든’ 것이다. 자신은 장난감이 아니라 쓰레기니까 쓰레기통에 있어야 한다며 계속해서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포키’를 챙기게 되는 ‘우디’의 곁에서 <토이 스토리 4>는 다시금 ‘장난감 주인과 그의 장난감’의 관계를 되풀이하는 듯 보인다. 낯선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보니’가 무사히 예비소집을 다녀온 것이 ‘포키’ 덕분임을 ‘우디’는 보았다. 세상에 이제 막 ‘태어난’ ‘포키’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만큼이나 ‘보니’와 ‘포키’의 관계 역시 중요한데, 이제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서 우리는 잠시라도 ‘포키’가 안 보이면 온 사방을 뒤져 찾아야만 하는 ‘보니’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즈 전작들이 사람과 장난감의 관계 자체를 중심으로 장난감들의 여정과 모험담을 그렸다면 <토이 스토리 4>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우디’와 ‘보핍’을 중심으로 한 토이 캐릭터들의 ‘삶’을 중심으로 ‘보니’와 ‘포키’, ‘포키’와 ‘보니’의 관계가 영화의 여정에 영향을 주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만드는 바탕이 관계의 두 주체 간 서로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지키려는 노력과 그로 인해 쌓이는 시간에 있다면, 이는 비단 사람과 장난감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도로 위를 걷는 ‘포키’와 ‘우디’의 대화에서 ‘우디’의 전 주인인 ‘앤디’가 언급되는 것도 ‘우디’에게 여전히 ‘앤디’가 소중한 존재이자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되어 있기 때문이고, 골동품점 앞에서 언급되는 ‘보핍’ 역시 ‘우디’에게 있어 ‘앤디’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다. <토이 스토리 4>는 자신이 확장해낸 이야기를 무작정 관객에게 주입시키려 하지 않고 전작들이 지나온 세계를 기반으로 유사한 구조 속에서 조금의 변화를 준다.


영화 <토이 스토리 4> 스틸컷

모두의 눈을 맞추고, 모두의 손을 잡아주는 이야기


‘보핍’의 언급에 따르면 그는 영화 첫 장면의 일이 있은 지 2년 후 골동품점에 가게 되고 거기서 다시 나온 후 7년을 놀이공원에서 지냈다. "7-Fantastic-Year!"라는 ‘보핍’의 말은 진심이고, 그는 혼자가 아니다. 세 마리 양 ‘빌리, 고트, 그러프’가 있고 '기글 맥딤플스'가 있으며 마치 전작의 녹색 병정들을 연상케 하는 세 ‘컴뱃 칼’도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이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하는 ‘보핍’의 삶에는 주인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개비개비’는 자신을 모델로 한 그림책에서 본 소녀와 똑 닮은 ‘하모니’가 자신의 주인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디’에게서 소리 상자를 빼앗으려고도 할 만큼 그는 ‘하모니’의 선택을 받기를 꿈꾸며 티 타임을 연습한다. <토이 스토리 4>가 그래서 장난감에게 주인이 없어도 된다고 말하는 영화인가? 아니, “그래도 되는 장난감도 있다”라고 말해주는 쪽에 가깝다. 부모와 떨어져 구석진 곳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니’의 곁에 남아 있기를 택하는 ‘버즈’나 ‘제시’, ‘보니’에게 돌아가려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보핍’에게로 다시 향하는 ‘우디’의 마음은 물론 시리즈를 함께한 다른 장난감들의 눈빛과 표정을 (‘우디’와 ‘보핍’의 시점 숏으로) 찬찬히 헤아린다. (‘개비개비’의 심복처럼 활동했던 ‘벤슨’은 다시 골동품점으로 돌아갔을까?) 물론, ‘보니’ 역시도. (그리고, 전 주인을 잊지 못하던 ‘듀크’도!) 시간이 흐른 뒤 찾아오기 마련인 모든 관계의 헤어짐이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알고 있다. 멀어져 가는 서로를 웃으며 바라보는 이들은 친구의 말을 "To Infinity" "And Beyond"로 각각 나누어 완성한다.


영화 <토이 스토리 4> 스틸컷

구 캐릭터와 신 캐릭터 사이의 관계, 그리고 ‘포키’


카우보이를 상징하는 ‘우디’는 어쩌면 <토이 스토리 4>의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구시대적인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다. ‘장난감의 역할은 주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행동을 하는데 초반부 ‘포키’에게 그는 “너는 쓰레기가 아니라 장난감이고 ‘보니’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라는 내용을 거의 주입시키려 한다. 그러나 ‘포키’를 겪으면서 ‘우디’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자신의 추억을 꺼내면서도 조금씩 ‘포키’의 눈높이를 맞춰나간다. ‘쓰레기도 따뜻하고 포근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전하는 과정은 날 때부터 장난감이었던 ‘우디’와 날 때부터 쓰레기였던 ‘포키’가 서로 친밀해지는 과정과 어우러진다.


‘포키’는 처음 ‘보니’의 가방에 실려 방에 들어와 장난감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골동품점에서 다시 ‘보니’가 놓고 갔던 가방에 실려 장난감들에게로 돌아온다. 여기서 그는 ‘우디’가 있는 곳을 ‘버즈’에게 알려줌으로써 ‘중요한’ 존재가 된다. 나아가 ‘포키’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초등학교에 간 ‘보니’가 만든 또 하나의 ‘쓰레기’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승해주기까지 한다. 그 상대는 “내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어”라고 하는데, 여기서 ‘포키’가 “나도 몰라!”라고 하는 게 포인트다. ‘포키’라는 캐릭터는 주인의 유무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장난감 캐릭터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존재에 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지지만, 어디까지나 전 세대 관객을 위한 유머와 (쉬운) 교훈 정도에 머문다. 게다가 <토이 스토리 4>는 지금까지의 시리즈보다 더 많은 유머 코드를 담고 있는데, 주로 ‘포키’를 비롯해 활약은 대체로 ‘버니’와 ‘더키’ 등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크게 ‘우디와 포키’, 그리고 ‘버즈와 버니, 더키’로 구분되어 영화의 두 축을 담당한다.


영화 <토이 스토리 4> 스틸컷

사람에 연연하지 않는, 장난감만의 삶


‘버니’와 ‘더키’ 이야기가 나왔으니 다시 본 작품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겠다. ‘버니’와 ‘더키’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이 어디인가. 과녁을 맞히면 장난감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다. 즉 둘은 주인을 만나길 기다리는 캐릭터다. 그들이 ‘버즈’를 따라가는 건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만남은 ‘버즈’가 ‘우디’를 찾으러 나서면서 가능해졌고, ‘버즈’는 ‘우디’로부터 ‘마음의 소리’라는 걸 배웠다. 그리고 이 ‘마음의 소리’에는 어쩌면 관계의 본질이 있다. ('You've Got a Friend in Me'라는 사운드트랙의 곡명과도 부합하는) 진정한 관계는 서로의 마음의 소리를 헤아리는 것에서부터 가능하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토이 스토리 4>의 몇 가지 가정들이 훌륭하게 녹아든다. 주인공 장난감 캐릭터가 주인의 ‘최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장난감이 반드시 주인이 있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관계는 만드는 게 아니라 쌓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점.


‘개비개비’ 이야기로 이 점을 설명할 수 있다. ‘하모니’가 자신을 발견하고 주인으로 삼기를 기다렸던 그는 ‘하모니’에게 “난 개비개비야. 사랑해”라고 말한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존재가 자신에게 곧장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 말 자체의 당혹감을 떠나서, ‘개비개비’의 ‘하모니’를 향한 마음은 진짜 사랑이라기보다 거의 집착 내지는 감정의 강요에 가깝다. 그 말 때문만은 아니고 단지 ‘하모니’라는 소녀의 장난감 취향에 ‘개비개비’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개비개비’는 ‘하모니’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이어서 ‘우디’(그리고 ‘보핍’)의 설득으로 이들을 따라나선 ‘개비개비’는 부모와 떨어진 채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여기서 소리상자를 통해 나온 ‘개비개비’의 말은 뒷 내용이 바뀐다. “난 개비개비야. 나와 친구가 되어줄래?” 주인의 ‘최애’ 장난감이 되는 일은, 주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장난감이 되는 일은 일단 주인과 친구가 먼저 되고 나서 나중에 이루어져도 늦지 않다. 단지 빌런 캐릭터처럼 보였던 ‘개비개비’의 훌륭한 성장은 앞에서 말한 ‘모두의 눈을 맞추고, 모두의 손을 잡아주는 이야기’라는 표현에 정확히 부합한다.


영화 <토이 스토리 4> 스틸컷


<토이 스토리 4>는 ‘우디’가 “보니에게는 내가 있어야만 해”에서 “내가 없어도 다른 장난감들이 있으니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도록 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우디’는 ‘보핍’을 다시 만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삶은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 허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짜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에 머무는 삶. ‘우디’는 ‘주인을 잃어버린 장난감’인 게 아니라 삶을 새로 시작한 장난감이 된 것이다. ‘우디’에게 이야기가 집중되면서 ‘버즈’나 ‘제시’ 같은 기존 시리즈의 캐릭터들에 소홀했다는 지적은 그 자체로 부당한 이야기는 아니나 내 경우에는 그 지적에 아주 동의하지는 않는다. 세 편의 전작들을 통해 각 캐릭터들은 이미 충분히 보여줬다. 그리고 놀이기구와 차양 위에서 ‘우디’ 그리고 ‘보핍’의 시점을 통해 그간의 이야기를 함께한 다른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는 장면. 그리고 ‘우디’를 얼싸안는 친구들. 그것으로 ‘친구들’을 헤아리는 일은 충분히 수행했다고 믿는다. 더불어 ‘제시’ 역시 ‘보니’ 가족이 탄 차가 장난감들을 놓고 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을 해냈으며 ‘포테이토 헤드’와 ‘렉스’ 역시도 차의 내비게이션 대신 가족들을 ‘우디’와 ‘버즈’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요컨대 ‘우디’를 중심으로 하되 나머지 장난감 캐릭터들에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골동품점에서의 영화 <샤이닝> 이스터에그


<토이 스토리 4>의 골동품점은 과거에 주인이 있었던 물건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이 이야기를 하기에 제격인 공간인데, 여기에 처음 진입할 때 턴테이블을 통해 나오는 음악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1980)의 사운드트랙 중 한 곡인 ‘Midnight, The Stars and You'다. 이 곡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에서도 이른바 ’샤이닝 시퀀스‘ 도중 좀비들의 무도회 장면에서 쓰인 바 있다. 골동품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양상이, ’개비개비‘와 ’벤슨‘의 이 대목에서의 역할이 일종의 호러적인 측면도 가미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훌륭한 선곡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토이 스토리 4> 아이맥스 포스터



<레디 플레이어 원 - 어벤져스: 엔드게임 - 토이 스토리 4>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있게 한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키노트에서 “It just work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이클라우드 같은 서비스들을 발표하면서 했던 이야기인데, 유저는 자신이 이용하는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그걸 이용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자신들(애플)이 알아서 잘 만들었다는 자신감의 표시다. 이는 <토이 스토리 4>의 끝에서 ‘포키’가 처음 만난 친구에게 하는 말과도 겹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거냐고? 내가 지금부터 다 이야기해줄게! 아니, 사실은 나도 몰라!> 이 시리즈를 보면서 우리는 “어째서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고 말도 할 수 있느냐” 같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우리의 상상에서 그들은 그냥 그렇게 작동할 뿐이다.


나는 몇 안 되는 레고라든가 '미니카'(<영광의 레이서>를 보고 샀다. ‘아스라다’였던가. 이름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정도를 제외하면 장난감과도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컴퓨터가 생기면서 관심사는 자연히 게임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장난감이든 인형이든 혹은 게임이든. 어린 시절의 가까웠던 것들에는 모두 'ㅇㅇ 스토리'가 될 수 있는 기억과 경험들이 담겨 있다. 자.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이 뭉클한 영화인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이스터에그를 다 알아서가 아니라 주인공과 원작자의 순수한 애정에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이 감동적인 영화인 이유는 모든 MCU 영화를 샅샅이 외우고 있어서가 아니라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마음이 저절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보핍을 (영화 바깥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9년 만에 만난 우디가 보핍을 볼 때, 관객 역시 2010년의 <토이 스토리 3>를, 이어서 1999년의 <토이 스토리 2>를, 1995년의 <토이 스토리>를 생각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생명력을 부여하는(Animate) 것인데,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 보핍을 보면서 우디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작품 속 캐릭터는 그대로지만 성우들은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를 더 먹었고 관객도 자랐다. 이야기의 힘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한 번 뿐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며 붙잡을 수도 없는 나날들을 순간으로 만들고 그 순간이 우리를 붙잡게 만드는 것. 이야기는 늙지도 죽지도 않고 계속 거기 있다고. 애니메이션은, 그래서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 4> 역시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우디’가 ‘보핍’을 바라보던 그 눈빛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이 이야기 역시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영화 <토이 스토리 4> 국내 메인 포스터

<토이 스토리 4>(Toy Story 4, 2019), 조시 쿨리 감독

2019년 6월 20일 (국내) 개봉, 100분, 전체 관람가.


(목소리) 출연: 톰 행크스(우디), 팀 알렌(버즈), 애니 파츠(보 핍), 토니 헤일(포키), 조안 쿠삭(제시), 크리스티나 헨드릭스(개비개비), 키아누 리브스(듀크), 키건 마이클 키(더키), 조던 필(버니), 보니 헌트(돌리), 매들린 맥그로(보니), 제프 갈린(버터컵), 월리스 쇼운(렉스), 에스텔 해리스(미스터 포테이토 헤드), 블레이크 클락(슬링키), 존 라첸버거(햄), 제이 헤르난데즈(보니 아버지), 로리 앨런(보니 어머니), 로리 멧칼프(데이비스) 등.


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토이 스토리 4> '새로운 여행' 포스터

(★ 10/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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