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 수수료 100%의 하루

과감히 어떤 일을 포기해내기

by 김동진

일주일 간 너무 많은 자극을 소화했던 것 같다. 모 예술영화관에서 처음 개최하는 영화제 행사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예매했던 강연 프로그램의 일시가 오늘이었다. (실은 이틀 전에 이미 상영작 하나를 취소한 뒤였다.) 듣고 싶은 주제였고 다뤄지는 영화 역시 각별히 아끼는 작품이라 이건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어제였다. 그러나 오늘이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당장 써야 하는 글들과 생각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고, 분명 필요하고 좋은 자극이자 영감이 되는 (게다가 좋아하는 시인의 강의였기에) 자리일 거라는 확신이 있음에도 이상하게 거기까지 갈 기동력이 생기지 않았다.


며칠 전 한 출판사에서 마련한 행사로 김금희 작가님을 뵈러 갔다. 그 자리에 게스트로 온 김현 시인의 말 중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은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 할 일을 의식하고 거기에 얽매여 있느라 정작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보다 차라리 우선순위에 따라 과감하게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오늘은 한 시인의 강연을 듣지 않으면서 다른 시인의 말을 실천한 하루였다고 하겠다.


움직였다면 늦지 않게 행사 장소에 갈 수 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씻는 동안에도 내내 고민했다. 그러나 집을 나선 나는 거기가 아니라 동네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원활한 행사 운영을 위해 대부분의 행사들은 개최 시점을 앞두고 일자별로 취소 수수료율을 달리 적용한다. 내 경우 전날까지도 예매를 취소하지 않았으므로, 100%. 취소 수수료율 100%. 취소를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환불 금액은 0원. 이것을 예매한 일이 벌써 일주일도 더 전의 일이었으므로, 강연을 듣기 위한 참가비는 이미 매몰 비용이 된다. 간단히 사정을 적고 피드에 '대신 참석하고 싶은 사람'을 구해볼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다. 0원을 환불받기 위해 취소 과정을 밟지도 않았다.


취소 수수료 100%를 부담하는 대신 밀려 있던 글들을 절반 이상 처리했다. 어디 가서 "저 글 빨리 쓰는 편이에요"라고 말하기에 조금도 손색없는 속도로, 만족스럽지 않은 채로 마무리하는 일 없이. 저녁이 되자 카페는 더 한산해졌다. 주문한 메뉴와 고객을 호명하는 직원의 외침만이 간간히 들렸고, 노래를 너무 오래 들은 귀가 아파져 양쪽 이어폰을 빼서 충전 케이스에 넣었다. 아직 할 일이 더 남았고 그것 중 하나는 당장 오늘 처리해두는 게 내일을 원활하게 보내기 좋은 일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일들이 당면해 있다. 오늘의 '일이었을 일' 중 하나를 제외하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해졌다.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소설을 집에 오자마자 펼쳤다.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 조금 무기력해져 있던 주말을 보내고 나니 긴 글을 쓸 수 있었고 다시 의욕이 생겼다. 아직 해야 할 게 남았는데 이리 마음 편할 일인가. 취소 수수료 100%의 하루를 보낸 덕에 내일의 기분은 적어도 '질 것 같은 기분'은 아닐 수 있게 되었다.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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