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30분이 넘어서 겨우 잡아탄 택시 안 라디오에서 거짓말처럼 곧장 심규선의 노래가 나왔다. '서점 리스본, 포르투'의 오픈 기념 포트럭 파티에서는 오늘도 내 '리스본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테이블은 가득 찼고 막연한 예상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는 얼굴들과 함께 보냈지만 가끔은 처음 보는 이들과의 즐거운 대화도 있었다. 종종 신청곡을 받아 재생목록에 노래를 추가하기도 했고 갑자기 낭독회를 하기도 했다. 정말 갑자기. 시집과 책을 들고 가긴 했지만 갑자기 마이크를 잡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단 말이지! 이승희의 시와 김상혁의 시를 읽었다.
7월 6일, 서점 리스본, 포르투에서(마포구 성미산로23길 60)
누군가 "여기 서울 아닌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그건 정말이었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란 그런 것이다. 추운 계절이었다면 둘러앉은 가운데에 모닥불만 있으면 딱 좋았을, 그러나 무더운 저녁이었기에 이따금 부는 바람이 딱 알맞은. 낯선 얼굴이 많았지만 '서점, 리스본을 아는 사람들'로 무엇인가 공통분모가 생긴 느낌이라 야외와 실내를 오가며 이 모르는 사람들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고 해야 할까. 스스로 사교적인 파티에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지만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 이들과의 말들은 대부분 즐겁다. 사람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좋지만 공간의 과정을 함께하는 일도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엔 더 쉽지 않은 행운이다. 흘러온 시간의 길이와 밀도가 꼭 애정과 상관관계가 밀접하지만은 않다.
7월 6일 망원시장에서
'리스본'에 오기 전 오후에는 지인의 집들이를 겸한 모임이 있었다. 망원시장에서 산 음식들과 맥주 한 캔씩. 그 모임 역시 (내가 주최하게 된) 영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시작된 모임이었으므로, 2019년 7월 6일의 하루는 오직 취향과 관심사로만 채워진 하루라고 해도 되겠다. 한데 그보다 앞선 낮에는, 그러니까 집을 출발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접촉사고를 목격했다. 내 맞은편 차선은 직진(+좌회전) 신호였고 우회전을 하려던 차는 보행자가 있어 멈춰 섰다. 그런데 뒤따르던 차가 미처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앞차를 들이받게 된 것. 내게 들어온 건 뒷차가 회색 구형 SM5인데 앞차가 아이보리색 렉서스였다는 것보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오후 한낮의 기온이 34도였다는 사실이다. 두 차주의 주말 한낮의 그 시간이 얼마나 '최악의 하루' 같은 것으로 남게 되었을까. 두 차량이 충돌하는 소리에 주변에는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 이내 뒤따르는 차량들의 경적이 울렸다. 보행자들과 근처의 행인들의 시선이 SM5와 렉서스에 집중되었지만 나를 포함해 모두 이내 갈 길을 갔다.
7월 6일, 연남동 경의선숲길
좋아하는 소설에는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는 그들의 아침이 이 작고 완전한 프레임의 사진들처럼 온전할지, 그러니까 제대로일지, 혹시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은 아닐지 생각하면서."*라는 문장이 있다. 푹푹 찌는 더위와 불쾌한 습도 속에서, 나는 단지 덥다고 불평했지만 누군가의 주말 오후는 더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만큼의 짜증스러운 오후가 되었겠구나 하는 사소한 생각을 하며 문래동의 한낮을 지나 망원동의 저녁 하늘을 보았고 연남동의 밤을 보았다. 오후 내내 횡단보도에서 본 그 사고 생각을 했지만 저녁이 되자 이내 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점 리스본, 포르투의 공간을 구경하고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과 한때를 보내는 동안 잠시 잊었던 일들이 자리를 파하고 그 공간을 벗어나자마자 다시 생각났다.
포트럭 파티, 저마다 음식과 다과류를 사오거나 준비해온 사람들
오늘은 영화 일기를 쓰지 못했다. 파티를 다녀온 후 집에서 어떤 영화를 감상하려 했는데 그게 뭐였는지도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기록은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그 영화가 혹시 생각날까 싶어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이야기가 모이고 공간에는 시간이 쌓여간다'라고 적었어도 충분할 것을 굳이 짧지 않은 글로 기록을 남기는 건 사소하고 일상적인 기록이 갖는 역사적 가치를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는 훗날 어떤 형태로 기억에 남는 하루일까, 아니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는 일상일까 하는 생각을 하루 동안 자리한 몇 개의 이미지들을 둘러보며 한 번 더 했다. '이제 2019년의 하반기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 게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다. 시간은 그렇게 사소하게 흐른다. 사람과 공간은 그렇게 사소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하루는 가능한 자주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생각했다. (201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