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지향하는 이상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우면서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 것은 이 쓸모없다는 것은 '지금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의 쓸모를 찾아내는 것이 문화의 발전이기도 하다."(황현산)
황현산 선생님이 떠나신 지 내일이면 1년이다. 트위터에 남기셨던 위 말은 한때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필사해 올려두기도 했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다시 읽는다.
당장 돈이 되거나 당장 실리적 쓸모가 있는 게 아닌 일들을 하고 있다. 오전에 팔월의 첫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했고, 책장을 정리하고자 고르고 고른 책들을 거의 십만 원가량 중고서점에 팔았다. 카페에 가서는 앉은자리에서 세 시간 동안 두 편의 글을 썼으며 합정역 인근의 라멘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별 일 없고?" 하는 엄마의 말에 나는 선뜻 "네!"라 하지 못하고 일이 초 정도를 머뭇거린다. 별 일 없다는 말은 듣기에 중의적이다. 근심거리의 유무와, 돈벌이의 유무.
쓰는 오후
만든 책이나 진행하는 모임, 새로 시작하는 콘텐츠에 대해 적극적으로 '영업'하기를 늘 주저해왔다. 최소 정원을 채우지 못해 모임을 진행하지 못했던 달에도, 혹은 마음으로 바랐던 것만큼의 구독자가 따르지 않더라도. 온오프라인에서 나와 직,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 '내가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예컨대 친인척에게 보험 영업을 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혀 이야기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책 한 권 사주세요'라든가 '영화모임 한 번 와달라' 같은 말을 하는 건 언제나 조심스러웠고 '지인 찬스' 같은 것에 기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자신이 하는 일의 쓸모는 스스로 찾아내고 알려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스스로가 만드는 콘텐츠들에 대해 드러내는 일은 적극적이어야만 하겠다는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문화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일이란 대부분 '아름답고 쓸모없는' 쪽에 가깝지만 내 일은 말하자면 그걸 '쓸모 있는'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합정 딜라이트스퀘어에서 본 저녁하늘
알라딘에서는 180도로 접히는 모눈 노트 하나를 새로 샀고, 교보문고에 가서는 장바구니에 한동안 있었던 임경선 작가의 새 산문 『다정한 구원』을 샀다. 밖에 있는 동안 책 절반을 읽었고 노트북 배터리가 다 닳을 때까지 자료를 읽고 글을 썼다. 부쩍 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이 잦아졌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취향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저녁 하늘을 한동안 올려다보다 다시 카페를 찾았고, 노트북 어댑터를 콘센트에 꽂은 후 폰으로 이 글을 썼다. 요즘 다짐이나 생각을 글로 기록해두는 일이 좀 더 잦아졌지만 아랑곳 않고 남겨놓기로 한다. 바빠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바쁜 사람이 되어야지!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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