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Sep 23. 2019

책의 먼지를 털고, 손님과 이야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동네서점 책방지기 일지 _ 1일차

연남동에 자리한 동네서점, '서점, 리스본'에서 책방지기로 근무를 시작했다. 근무일지까지는 아니고 그날그날 기록한 것들을 소박하게 공유해두려 한다.


'서점, 리스본'(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47), 인스타그램 @bookshoplisbon

첫날이다. 서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40분. 불을 켜고 음악을 틀어둔 뒤 책들에 먼지가 쌓여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것을 거쳐 문에 걸린 팻말을 'Closed'에서 'Open'으로 돌려 걸었다. 오래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근무 중에는 화장실이 신경 쓰여 뭘 먹거나 마시길 잘 하지 않았다. 오늘도 식사를 출근 전 미리 해결했다. 근무를 얼마나 하게 될지, 업무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등을 떠나 내가 있는 동안은 이 서점의 얼굴은 나다. 억지로 밝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려 애쓸 필요는 없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방문객들에게 불편을 주지는 않을 만큼의 점원으로서 역할을 해야겠기에, 첫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음에도 적막이 있다.


평일 오후라는 시간을 다소 얕잡아 본 것에 비해서 월요일 오후 손님은 불규칙하지만 제법 있었다. 첫 손님은 서가 이곳저곳을 돌며 꽤 여러 책들을 들췄다. 그중 한 권을 손에 들고, 또 한참을 다른 책들을 살폈다. 찾으시는 책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곁을 살피던 차에 손님이 계산대 앞에 섰다. 손에 들린 책은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계산을 하면서 찾는 책이 있으신지를 물었더니, 문장의 단어와 단어들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책을 찾는다는, 대략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몇 권을 떠올리다 최근에 읽은 김애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을 권했다. 소설을 좋아하시는지, 산문을 좋아하시는지 등 몇 마디를 더 나눈 뒤였다. (영업력 발동!) 관심을 보이셨고 우선 『리스본행 야간열차』 한 권만 구입하셨다. '서점, 리스본'에서 첫 책이 '리스본'이라니! 하면서 그 손님이 김애란의 책을 찾아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간 여러 동네서점을 방문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갑자기 여러 손님들이 거의 동시에 방문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주의는 각각의 손님들이 책을 펼치고 있는 모습 모두를 향한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주인이 말을 거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손님도 있겠고, 나 역시 애써 손님들에게 살갑게 책 이야기를 꺼내려하지는 않는다. (물론 마음속에서는 "그 책 좋아요! 당장 사셔야 해요!" 외치고 싶음이 앞서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손님에게 하는 말은 "어서 오세요"와 "안녕히 가세요" 정도다.


근무시간의 절반쯤이 지났을 무렵에는 부모님 연령대의 신사 분이 들어오셨다. 요즘 이렇게 동네서점들이 많이 보여 좋다며, 요즘 사람들은 전보다 책을 더 읽지 않는 게 안타까울 때가 있다며,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보이면 그리 반갑더라는 등의 이야길 한동안 하셨다. 책을 구입하진 않았지만 다음에 또 둘러보겠다며 나가셨다. 다음에는 예약 주문한 이병률 시인의 산문 『혼자가 혼자에게』를 찾으러 온 분이었다. 추가로 『아무튼, 식물』이 있는지 문의하셨는데 아쉽게 재고가 없었다. 찾는 손님이 있는데 서가에 없는 책은 잊을까 따로 적어놓는다. 그에 앞서서는 존 버거의 『풍경들』을 찾는 손님이 있었는데 존 버거 책들이 꽂힌 서가에 그게 눈에 띄지 않아 그 손님을 돌려보내야 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서가 다른 쪽을 살피다 보니 바로 그 『풍경들』이 눈에 띄었다.


책의 먼지를 털고, 손님과 이야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손님이 없거나 당장 할 일이 따로 없을 때 서가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한 건 그래서다. 어디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국적이나 출판사, 혹은 분야에 따라 문학 안에서도 여러 갈래가 나뉠 수 있다. 그리고 특정한 책의 옆에 꽂혀 있는 책은 왜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 같은 걸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오후 6시가 넘자 손님이 더 많아졌다. 꼭 서점에 온다고 해서 책을 사서 나가는 건 아니다. 여러 책들을 만져보고, 펼쳐보고 살피다 가시는 분도 계시고, 독립출판물도 취급하냐고 묻는 분이나, 근처 카페나 식당 위치 같은 걸 물어보는 분도, 아니면 화장실을 찾는 분도 있다. 그렇게 몇 무리의 손님들이 들락거리던 중, 반가운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마 전 1인 출판으로 책을 내신, 인스타그램으로 오래 알고 지낸 분이었다. 내가 주문한 책을 직접 전하러 여기까지 오셨다는 것. 서점지기가 된 첫날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는 일이, 일과를 마칠 무렵의 만남이어서 짧지만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오늘 책 열 권을 팔았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첫날이었다고 생각해본다. 저녁에는 영화 보고 글 쓰고 책 읽어야지. (2019.09.23.)




*이메일 영화 콘텐츠 연재 '1인분 영화'의 10월호 구독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9/29, (링크))

*글을 읽으셨다면, 좋아요,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만나고 싶은 뫼비우스의 우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