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Nov 03. 2019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가족과 사회로 확장하기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 리뷰

소설 『82년생 김지영』(2016)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고 반드시 이야기되어야만 하는 내용들을 담았음에도, 정신과 전문의의 시점으로 된 르포와 회고 형식으로 쓰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소설 장르를 빌린 일종의 사례와 통계 모음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은 이 원작에 없던 내용을 추가하고 있는 내용을 알맞게 변형하고 있던 내용의 일부를 적절하게 덜어내면서 훌륭하게 각색했다. 소설을 어떻게 시나리오화 해야 할지에 대한 치열하고 섬세한 고민이 역력히 느껴질 만큼. 여기서 특히 중요한 건 바로 '원작에 없던 내용'들이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이 단지 소설만으로는 읽을 수 없는, 여성이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지극한 현실들을 전 연령대에 걸쳐 낱낱이 서술했다면 영화는 몇 걸음을 더 나아간다. 예컨대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혹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라면, 혹은 당신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단지 영화이기만 할까?' 같은 물음들.



<82년생 김지영>은 연대기적 구성 대신 현재 시점의 '김지영'(정유미)이 갖가지 계기로 떠올리는 과거의 일들과 현재를 교차하면서 '과연 지금에 와서는 그때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영상 매체에 알맞은 표현법을 염두한 것이겠지만 구성 자체도 이야기 전달 면에서 더 효과적이다. 장편 데뷔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안정적인 연출력까지 더해졌다.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관건은 '원작에 없던 내용'들. 이는 직접적으로 영화가 다뤄내고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게 될, 즉 관람 의향이 이미 있는 관객에게 라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원작 소설에는 포함되지 않은 일부 내용이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관람 전이고 영화의 구체적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는 않다면 참고해주세요.)



'정대현'(공유)은 나름대로 아내의 입장과 아내의 고됨을 생각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여력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들을 모두 통감하고, 나아가 '지영'이 자신과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지영'이 지금처럼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책하기도 한다. '김지영'은 이전에는 자리를 회피했던 어떤 상황이 되풀이되자 자신에게 무례하고 분별없는 말을 쏟아낸 남성에게 다가가 명료하고도 정확한 일침을 날린다. (이때 그 남성에게 '김지영'이 하는 말 전체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필요한 발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처 주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 오히려 상대의 예민함을 탓하고 자신의 둔감함을 전혀 생각할 줄 모르거나 돌아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 영화 밖에도 있는 그들 모두에게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은 일종의 현실 고발 내지는 자조의 성격을 지녔다. '이게 여성의 현실이다'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각색한 영화는 관객에게 영화 자신이 바라는 타협안 내지는 희망 사항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김지영'이 김은실 팀장이 새로 차린 회사에 복직할 수 있을지의 여부, '정대현'만 알고 있던 '김지영'의 현상이 다른 인물들에게도 알려지게 될지의 여부는 소설의 논의를 확장한 것이어서 중요한데 <82년생 김지영>은 마치 <가버나움>(2018)의 나딘 라바키 감독이 "단 한 가지만 바꾼다는 건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듯 '복직'에 있어서도 당사자와 주변인이 처할 수 있는 여러 층위의 화두를 짚어낸다. (예: '육아휴직'이 그렇게 간단한가? 시어머니는 어떻게 반응할까? '김지영'의 친정 가족들은 어떤 모습일까? 등) 섣불리 이상향을 그리지 않으면서 <82년생 김지영>은 공감대메시지 모두를 놓치지 않는다.


'논쟁' 정도면 모를까, 이것을 '논란'이라고 하는 건, 분명히 '틀린' 단어 선택이다. <국제시장>(2014)과 같은, 요즘 세대는 살아보지도 겪어보지도 않았을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헌사를 보내거나 눈물을 흘리면서 바로 지금 세대의 당면한 이야기인 <82년생 김지영>(2019)에 대해 상반된 잣대를 적용하는 건 명백하게 이중적인 일이겠다.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4월 1일에 태어난' '김지영'에 국한하지 않고 세대와 성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보편적 화두를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업 영화의 문법으로 제기하는 영화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려 하지 않는 사려 깊은 방식으로. (사적으로는, 한국영화로 말하자면 상반기에 <미성년>과 <기생충>이 있었다면 하반기에 <벌새>와 <82년생 김지영>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8/10점.)


<82년생 김지영>(2019), 김도영 감독

2019년 10월 23일 개봉, 118분, 12세 관람가.


출연: 정유미, 공유, 김미경, 공민정, 박성연, 이봉련, 김성철, 이얼, 김미경, 김정영 등.


제작: (주)봄바람영화사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신세계아카데미 겨울학기 영화 글쓰기 강의: (링크)

*4주 영화 글쓰기 클래스 <써서 보는 영화> 11월반: (링크)

*글을 읽으셨다면, 좋아요,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글쓰기 모임 '써서 보는 영화' 11월반 모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