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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02. 2020

더 나쁜 쪽으로 향하지 않으려는
이야기

2020년 02월 02일의 작은 기록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문명이 잘못된 경로를 택하는 상황을 조바심 내며 경계하는 것은 SF 작가들의 직업병일지 모르지만, 이 비정상적이고 기분 나쁜 풍요는 최악으로 끝날 것만 같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될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세랑, 『목소리를 드릴게요』 작가의 말 중에서)



2020년 02월 02일. 좋아하는 서점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샀다. 근래 읽은 '작가의 말' 중 손꼽을 만큼 기억해두고 싶은 말이라 적어두기로 했다.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과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을 때의 그 경이와 설렘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좀 더 멀게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든지 『숨』이라든지, 어니스트 클라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든지. 또 아니면 듀나, 장강명, 배명훈, 어슐러 르 귄, 필립 K. 딕과 같은 수많은 다른 이름들. 이 세상에 없는 것이나 이 세상에 없을 것을 사랑한다는 건 한편으로 그만큼 이 세상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상상을 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삶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언행에는 일말의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할 줄 모르는 이들이 많다. 타인의 정서와 관점을 헤아리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이들도 많다. 그로 인해 세계가 나빠지는 동안에도 세상 곳곳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꾼들이 이 세계가 '더 나쁜 쪽으로' 향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 온 숙고의 흔적들이 글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3030년 03월 03일, 아니 2220년 02월 22일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의 다른 시간대로의 여행은 불가능하므로, 유일하게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상하고 생각하는 일이다. 세상 많은 이야기들이 각각의 이유로 다 소중하지만 특히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아끼고 아끼는 것 역시 그래서다. 이 세상에 없겠지만 거기 있을 것들. 주말 내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좋은 영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좋은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좋은 영화의 수많은 기준들 중 하나일 텐데,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서도 생각이 닿는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말하기에 한없이 모자란 능력을 갖고 있어 다만 그러한 픽션을 쓰는 이들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것이고. 또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가만히 말하고 쓰는 것이고.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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