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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15. 2020

한 장에 이천 원, 여섯 장에 만 원
입니다

조심스럽게 안심하게 되는 순간들

"아주 약간의 미래만이라도 주어진다면 누구도 자기 삶을 스스로 파괴하지는 않는다"는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을 기차 안에서 다시 읽었다. (<씨네21> 1243호, '재난 속에서의 웃음, 계획을 가질 권리'에서) 이 글은 영화 <조커>(2019)와 <기생충>(2019)을 분석한 글이었다.


'팬데믹'으로 칭해지는 현재의 범지구적 상황과는 그 범주나 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겠지만 재난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결과를 '계획의 소멸'로 정의한 그의 문장을 계속해서 현재와 겹쳐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이 그립다'거나 '일상이 사라졌다'는 종류의 표현을 최근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내가 타 있던 칸의 승객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기차 안에는 물론 평소보다 승객이 적었다. 그 적은 사람들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더 찾기 어려웠고 영주에서 엄마와 아빠는 간식거리를 내어오며 "언제까지 마스크 쓰고 다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일상은 그러나 멈춰 있지 않다. 영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탄 건 부모님과 함께 다음날 아침 부산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형수가 될 분이 자신의 가게를 새로 연 것을 겸사겸사 핑계 삼은 가족 모임. (형에 의하면) 부산에서 제일 비싸다는 대게요리 전문점에도 식사를 하는 손님들은 많았고, 체온 측정을 위해서이기는 했지만 백화점 지하주차장에 내려가는 길은 한참이 걸렸으며 자리를 찾느라 지하 3개 층을 더 내려갔다.


백화점에서, 도마를 고르는 엄마와 형.

이사라 시인의 시 '그리운 세상'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햇볕 따스한 오후 세시의 벽에 매달려 있는 그림자들/ 그들 무게에 늘어지는 시간들// 문들 담쟁이들/ 사람들/ 공기들 작은 벌레들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느슨해진 벽을 뚫고 나와/ 서로를 쓰다듬으며 털어내는/ 살아 있는 것들의 먼지들'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에서) 이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들. 세계 역시 멈춰 있지 않다.


위축되어 있을지언정 여전히 사람들은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영위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전염병의 두려움에 맞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주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바이러스의 치사율과 같은 정보들과 별개로 내게 있어 질병과 전염성에의 두려움보다 더 중대한 건 예컨대 '일상의 실종' 같은 것이다.


대게를 고르고, 식사를 했다.
밤에는 영화 <기생충>을 가족들과 보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부산에서의 짧은 하루를 보낸 뒤 다시 서울로 향하는 KTX에서는 어제 완독 한 조우리 소설 『라스트 러브』를 한 번 더 읽었다. 서울역에서 탄 지하철 안에서는 한 상인이 '연예인 마스크'라며 "한 장에 이천 원 여섯 장에 만 원"을 외치고 있었고, 저녁 모임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들어간 스타벅스에는 앉을자리가 딱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마스크를 쓴 낯선 타인의 얼굴을 보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표정이 있다. (2020.03.15.)


밤의 무궁화호, 낮의 KTX
오후 세 시는 아니고 오후 다섯 시 무렵.
작은 일상의 흔적들


*그러니까, 위생과 안전에 유의는 하되, 행동 자체에 제동을 거는 것보다 오히려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게 일상을 지키는 힘이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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