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며칠째 계속되는 날들. 겨울의 날들. 2026년 1월의 마지막 날, 아이와 몇 년 만에 가는 산. 가끔은 마지막 날이 첫째 날보다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
선녀와 나무꾼, 아니 선녀와 주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는 초3 봄까지 엄마가 선녀인 줄 알았다. 믿거나 말거나.
유치원에 입학 한지 두 달쯤 지나,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같은 반 아이가 때려서 무섭다는 것이다. 마침 나 역시, 유치원 원장님이 어떤 이유로 맘에 들지 않았던 상황이라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대신 아이의 요구를 받아주었다. 그때는 아이가 유치원을 다닌다고 할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기도 했다. 매일 산에 가는 엄마와 함께 집에서 나가야만 하는 것이 유치원을 관둔 아이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엄마 산 따라올 거야?"
"난 키즈 카페에 갈래."
"혼자 있어도 괜찮아?"
"응, 거기 아저씨들하고 놀면 돼."
유치원 대신 아이는 키즈 카페를 다니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산에 갔다. 1년 넘게 그런 생활을 하는데 도통 아이 입에서는 ‘유치원 가고 싶어!’라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각자의 생활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이는 마루에 누워 무선 전화기로 영상을 보는 날이 대부분이다.
2016년 푹푹 찌는 8월의 어느 날, 참았던 화가 폭발하면서 아이의 손에 있던 전화기를 낚아채서, 세게 던져버렸다. 그날 이후 안 되겠다 싶어 아이와 유치원 탐방을 하기 시작했다. 10월쯤 아이는 원하는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주말이나 방학에는 나와 함께 산에 갔다. 아이가 산에 가기 싫다고 할 때는 혼자 키즈 카페에 갔다. 어느 날 아이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엄마는 왜 맨날 산에 가는 거야?"
"응, 엄마는 선녀라서 그래. 산이 엄마를 부르거든. 산에 선녀옷도 숨겨 놓았어."
산에 함께 갈 때마다 아이는 선녀옷을 찾아서 보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숫자 개념이 없었기에 저학년 때까지 엄마가 스무 살이라고 한 말도 믿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주변의 초등학생 친구들은 이런저런 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아이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태권도 다닐래?"
"싫어요."
"그럼 산이라도 다녀."
부모의 강요로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는 자연이 가득한 산에 가는 것이 나을 거라는 판단으로 방학은 함께 산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엄마, 사실 저는 엄마 뱃속에 있기 전 우주에서 떠돌던 주술사였어요."
아이가 어느 날, 산에서 뜬금없이 말한다.
"주술사! 그래, 너와 난 선녀와 주술사야!"
왠지 환상적인 조합이고 아이를 산에 끌고 갈 때 부를 괜찮은 주문이다. 산에 함께 가야 하는 날은 아이에게,
"너 주술사잖아. 선녀에게는 주술사가 필요해. 빨리 준비해!"
"엄마, 사실은 그 말 거짓말이에요.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흑흑"
아이가 뒤늦게 고백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는 태어나기 전날까지 뱃속에서 산에 다녔고, 태어나서는 품에 안겨서 산에 다녔다. 아이가 산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8개월 즈음이다. 18개월 된 아기가 어떻게 산에 걸어갔을까. 그때 송충이 비슷한 애벌레를 만지면서 놀다가 얼굴이 퉁퉁 부은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난 그때 무얼 하고 있었을까?’
신랑은 훈장처럼 그 사진을 앨범에 끼워 두었다. 그때는 아이가 엉금엉금 걸어갔고 난, 빨리 가야 한다고 재촉을 했다. 순간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느리게 걷는 아이를 보면 초조하고 불안했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왜 그렇게 빨리 걸어야 했을까? 무엇에 쫓기고 있었던 걸까?’
2026년 1월의 마지막 날 산은 낙엽 가득하다. 언제 그렇게 많던 눈이 다 녹았을까? 마치 가을 같다. 아이가 나와 함께 산에 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용돈이 없어요. 산에 가면 돈 준다고 하셨죠?"
겨울 방학인 요즘은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산에 가고 싶은 마음에,
"엄마 따라 산에 가면 용돈 줄게."
이렇게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아이는 시큰둥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엄마 산에 몇 시에 갈 거냐고 먼저 아이가 물어본다. ‘웬일이지?’ 반가웠는데 며칠 전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아이도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장갑, 모자도 없이 기모 운동복 바지에 땀을 잘 흡수하는 긴 티에 모자 달린 야구 점퍼 차림이다. 아이는 여유 있고 가볍게 저 멀리 앞서서 걸어간다. 반대로 난, 헉헉 대며,
"기다려, 너무 빨라."
숨이 차서, 반복적으로 말하는데 아이는 슬쩍 나를 쳐다보더니 조금 쉬었다가 다시 산속으로 들어간다.
"새들이 너 오랜만에 왔다고 여기저기서 반겨주네."
이제 이런 말을 하면 어렸을 때와는 달리 아이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본다. 익숙해질 듯도 한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겠지.
지금의 내가 과거와 달라진 것은 아이와의 순간순간에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소중해. 커버린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하고 뿌듯해. 더 빨리 가는 아이를 보는 것도······. 아이가 큰 만큼 나는 더 성장한 거야.’
언제부터 아이가 나보다 더 빨리 걷게 되었을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산에 갈 때마다, "엄마, 재미있는 이야기 해 주세요."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건담에 대한 퀴즈를 만들어서 이야기하자로 졸랐는데, 6학년때부터였을까,
그때부터 서서히 나와 산에 가는 시간도 줄어들긴 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조용해져서 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이러쿵저러쿵 말했던 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건 왜일까?
"엄마는 지금 너와 함께 산에 가는데도, 왜 어렸을 때의 너의 모습이 그리운 걸까?"
"지금의 나는 만날 수 있지만, 과거의 나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말을 듣고 순간 얼음이 되었다. 현재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독하게 과거에 살고 있었던 걸까. ‘지금 여기”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나. 그런데 아이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갑자기 숨이 막혀 답답할 때가 있다.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임시방편으로 그때의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려 연습한다.
‘넌 그때 최선을 다했어. 과거가 아닌, 지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에 집중하는 거야.’
이제는 나보다 빨리 걸어가고 더 커버린 아이. 용돈을 벌겠다고 몇 년 만에 나와 산에 함께 한 아이. 선녀와 나무꾼, 아니 선녀와 주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 저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