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점의 도형들

네모와 세모와 동그라미 사이, 나

by Cosmos

아침 출근길, 횡단보도의 흰 줄이 좌표축처럼 길게 눕는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면, 네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른쪽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견고한 어깨, 모서리마다 접힌 주름—정확히 네모. 속도를 바꾸지 않고, 서두르는 법도 없다. 모서리끼리 맞대고 사는 데 익숙한 사람 같은 걸음.


그 옆 버스정류장에 세모들이 모여 있다. 한 꼭짓점은 입, 나머지 두 꼭짓점은 어제와 내일. 그들은 꼭짓점을 부딪히며 웃는다. “어제는 말이야—” 하고, “내일은 말이지—” 하다가, 어느새 오늘을 가로지른다. 세모들은 방향을 바꾸는 데 능숙하다. 회전하면 모양이 바뀌는 줄 알지만, 사실은 같은 세 꼭짓점이 돌아가며 앞이

될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자주 웃는지도 모른다.


신호가 깜빡일 즈음, 놀이터에서 동그라미들이 뛰어든다. 작은 원들이 서로를 튕기며 반짝인다. 그들은

부딪혀도 찢어지지 않는다. 부딪힘이 곧 놀이기 때문이다. 원은 넘어지지 않고, 넘어져도 구른다.

그 둥글림이 부럽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굴러도, 모양을 잃지 않을 것 같아서.


나? 나는 아직 내 도형을 모르겠다. 거울 속의 나는 때로 길쭉한 선이 되고, 때로 한쪽이 움푹 팬 다각형이

된다. 모서리를 벌려 다른 것들을 끌어안고 싶다가도, 닫힌 도형이 되어 자기만의 넓이를 지키고 싶어진다.

그래서 출근길마다 눈으로 도면을 그려 본다. 누구의 각도는 어딜 향하는지, 누구의 반지름은 얼마나 큰지,

내 곁을 스치는 선분들은 어떤 길이를 가지고 있는지.


회사를 들어서면 사무실은 직사각형들의 숲이다.

모니터, 회의실 유리, 서랍, 규정, 데드라인—

모두 육면의 상자처럼 딱 맞게 끼워져 있다. 사람들도 네모가 된다. 가장자리를 세워 앉고,

각 잡힌 말투로 서로의 면과 면을 맞댄다. 나는 한동안 네모인 척한다. 모서리를 세우고, 균형을 맞춘다.

간혹 내 모서리가 어딘가 깨져 사선으로 미끄러질 때, 나는 커피를 따른다.

컵의 입구는 동그라미. 그게 좋다.

입술을 대면, 나도 잠깐 원이 된다.


점심시간, 옥상 모서리에 등을 댄다. 바람이 분다.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도로의 차선은 평행선, 휘어지는 램프는 나선. 신호등 앞사람들의 흐름은 작은 다각형들이 부딪혔다 흩어졌다 반복하는 시뮬레이션 같다. 이 도시는 어떤 정리로 유지되는 걸까. 아마 없다. 도형들은 서로의 면적을 조금씩 나눠 가지며, 균열이 생기면 테이프로 붙이고, 더는 붙지 않으면 새로운 테두리를 그린다. 규칙 대신 습관으로 유지되는 모양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과장은 정육면체였다. 육면체들은 말을 곧게 던진다. “보고서 마감, 오늘이지?” 단면의 칼날이 지나가며 내 표면을 깎는다. “예.” 네모인 척하는 목소리. 문이 닫히고, 거울 너머 애매한 다각형이 내 눈을 본다. 괜찮아, 다각형도 도형이야—라고 말하려다, 그냥 웃는다.


오후 내내 숫자들을 옮겨 적는다.

표의 칸—네모—칸—네모.

규칙적인 모서리 사이로, 한 줄 메모를 쑤셔 넣는다. 동그라미처럼 숨 쉬기. 메모는 셀을 넘칠 수 없다. 넘치면 샐 뿐. 모니터 가장자리 바깥으로 빠져나간 작은 글자들이 바닥에 그림자를 만든다. 그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 자리에서 일어난다.


퇴근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을 펴면 원이 된다. 그 아래 걷는 동안 나는 동그라미가 된다.

내 원주 안에 세계가 들어온다. 비는 경계에서 맺히고 미끄러진다. 빗소리 사이로 세모들이 통화를 한다.

“어제,” “내일,” “그래도.” 네모들은 속도를 늦추고, 모서리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각을 살짝 말아 넣는다.

누군가는 우산 없이 달리는 직선이다. 누구에게나 기울어진 선분이 있고, 누구에게나 곡률이 있다.


횡단보도 앞, 노란 비옷을 입은 아이 하나가 동그라미처럼 통통 튄다. 신호 기다리는 사이,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진다.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동그라미의 중심이 커다래지는 순간. 옆의 엄마가 아이를 안아 올리며 말한다. “조금만 더.” 세모의 말끝이 부드럽다. 꼭짓점이 둥글어질 때의 목소리.


신호가 바뀌고, 나는 네모들과 함께 건넌다. 내 옆에서 누군가가 살짝 부딪친다. “죄송합니다.” 옅은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젊은 남자다. 그의 모양이 보이지 않는다. 네모도, 세모도, 동그라미도 아닌, 비어 있는 틀.

경계선은 있는데 내부가 비었다. 빈 다각형. 그는 이어폰을 한쪽만 끼고 비에 젖은 화면을 본다. 화면에는

깨진 도형 아이콘이 떠 있다. 통신 없음. 그는 다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걸음을 뗀다. 마치 자기 가장자리를 누구에게도 긁히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우리는 각자의 좌표로 흩어진다. 나는 서점 구석에 서서 새 책과 헌 책을 번갈아 넘겨본다.

새 책은 모서리가 선명하고, 헌 책은 모서리가 둥글다.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뇨, 그냥요.”


책등들이 네모로 줄 맞춰 서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사이를 선분처럼 오간다. 몇 장 넘기다 책을 덮는다.

손끝에 약간의 잔열이 남는다.



집에 돌아와 창문을 연다. 빗소리가 규칙을 흉내 내다 금세 어긋난다. 책상 위에 종이를 한 장 놓고 펜으로

작은 점을 찍는다. 점에서 선을 그린다. 선은 곧 네모의 변이 되고, 세모의 변이 된다.

선을 더 긋자 별 모양이 된다. 너무 날카로워서 다시 동그라미를 덧그린다. 원은 모든 각을 포용한다.

원 안에 네모를 넣고, 그 안에 세모를 넣고, 세모 안에 다시 원을 넣는다. 도형들이 얽히고 섞여 서로를

침범하고 서로를 감싼다. 어느 순간 선이 너무 많아져 종이가 까매진다. 펜을 멈춘다. 까만 종이에

흰 여백이 도형처럼 떠 있다. 그 여백이 예쁘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서 생긴 모양. 빈틈의 형상.


문득 낮의 빈 다각형이 떠오른다.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가던 목소리. 빈 것은 모양이 아니다. 빈 것은,

아직 채우지 않아서 남겨둔 자리다. 여백은 대기 중인 도형 같다. 그 생각을 하자, 내 안의 모양도 조금

느슨해진다. 꼭짓점을 세워둘 때와, 모서리를 말아 넣을 때, 둥글게 굴릴 때와, 그냥 직선으로 뻗을 때를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한 하나가 되기보다, 상황마다 변하는 합성도형—그런 게 더 나다워 보인다.


밤이 깊어갈수록 창밖 불빛들은 작은 사각형이 되어 떠다닌다. 아파트 창문들, 각자 다른 네모난 불빛.

어떤 네모는 커튼이 반쯤 닫혀 있고, 어떤 네모는 고양이 그림자가 지나간다. 멀리 놀이터에서는 아직도

두어 개의 동그라미가 구르고 있다. 그 둥글림은 깜박이는 신호등 사이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튄다.

세모들의 웃음은 저녁 뉴스 소리와 섞여 사라진다. 네모들의 발소리는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잘려 들어간다.


불을 끄고 눕는다. 천장은 완벽한 직사각형이 아니다. 생활의 모서리는 늘 조금씩 흐트러져 있다.

그 비뚤어짐이 나를 편하게 한다. 가끔은 각을 세우고, 가끔은 둥글고, 가끔은 비어 있는 채로. 내일 아침,

횡단보도에서 또 도형들이 만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변이 되어 스치고, 서로의 면을 눌러 자리를 만들고, 때로 서로의 중심을 지나치며 흔들릴 것이다. 부딪힘이 꼭 파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부딪힘은 방향을 준다. 어떤 얽힘은 모양을 바꾼다. 어떤 여백은 자라서 새로운 도형이 된다.


잠들기 전, 휴대폰 메모장에 한 줄을 적는다.


나는 고정된 도형이 아니다.


보관함으로 넣고 화면을 끈다. 방은 한 개의 큰 동그라미가 된다. 숨소리가 중심이 되고,

어둠이 반지름이 된다. 오늘의 충돌들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내일의 변들은 아직 그려지지 않은 채,

여백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여백은 묘하게 든든하다. 어디든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