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독립한 날

by 고요


인생을 크게 구분하여 나눈다면 그 경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깊게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바로 떠 오른 생각은

1막: 태어나서 학생 신분을 거쳐 결혼을 하기까지

2막: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분가(독립)시키기까지

3막: 다시 혼자되어 점점 늙어 죽기까지

내 경우엔 이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다.


그럼 난 1막과 2막을 지나고 지난주 수요일, 날짜로는 22년 3월 15일

막내가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면서 일단 3막이 시작된 셈이다.

큰 애는 완전 독립이 맞고 둘째와 셋째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졸업을 해도 웬만하면 다시 합가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그렇고 아이들도 독립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꼭 그래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분가는 앞으로도 계속되길 나는 희망한다.


어제는 처음으로 나를 위해 늦은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웠다.

눈시울이 붉어지긴 했다.

외로워서가 아니다. 나를 위한 일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곧 익숙해지겠지.


손에서 책을 놓은 지 오래됐다. 이상하게 한번 놓으면 다시 잡기가 힘이 든다.

책 냄새가 좋다는 큰애처럼 늘 책을 끼고 살고 싶은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큰애는 몇 년 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출판 학교를 들어갔다.

졸업을 하고 현재 좋아하는 미술 관련 출판사에서 만족해하며 일을 하고 있다.

우리하고는 다르다. 아니 나하고는 다르다.

결단력이 있고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도전할 줄도 알고 급여의 많고 적음에 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먼저이다.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삶을 자신에게 맞추고, 분배하고,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은 능력이고 지혜이다.


그동안의 인생에서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많은 것이 부족했다. 물론 가장 부족했던 건 용기였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충분히 잘 살았다.

내겐 긍정과 인내와 감성이 있었다.

항상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고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정의로웠다.

정의롭다는 것이 꼭 크게 해석할 일만은 아니다.

법과 원칙에 충실했다면 스스로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정의로웠던 게 맞다.

그건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3월 23일 내 생일을 기준으로 난 다시 나의 독립 일기를 쓸 것이다.

그동안의 일기가 아이들과의 추억이 대부분이었고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섬세한 기록이었다면

이제는 나이 들어 나와 세상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이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과도 서서히 무심해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

아직 학생이 둘이나 있고 정확하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지만 그건 또 하나씩 뒤로 젖히면 된다.

중심이 나로 바뀌는 것이다.

온 맘과 정신이 아이들한테 쏠렸던 지난날에서 이제는 돌아서겠다는 것이다.

한 번에 잘 안될지라도.


그토록 열망했던 자유다.

5년만 뒤, 5년만 뒤를 얼마나 소망했던가?

그때는 과연 그날이 올까 싶었는데 참고 참았더니 오긴 왔다.

대단한 일이다.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다.

나를 위해, 소소한 내 일상을 위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전과는 정말 다를 것이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고,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고, 강해질 필요도 없다.

널브러져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고 몇 시간 tv 채널만 돌리다가 투덜거리며 전원을 끌 수도 있다.

무엇을 배우고 싶지도 않고 열정이 생기는 것도 원치 않는다.

소박한 밥상과 소박한 옷차림 그렇게 소박한 나를 가꾸어 갈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예쁘고 여전히 성실하며 여전히 정의롭다.

그런 나를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 좋하하지는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