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안된다는 마음으로

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1

by 손안의 우주

나는 타블라를 연주할 때 어차피 이번 생은 안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인간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 기상천외한 기법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인도인들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체념에는 묘한 편안함이 있다. 이번 생에는 안될 것 같아도, 그래도 계속해본다는 마음 덕분에 조급함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 갔을 때 선생님을 따라 구루쿨(Gurukul)이라 불리는 제자 공동체에 간 적이 있다. 함께 연습하고 수업을 받는데, 내 옆에는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작은 소년이 있었다. 여리여리한 체구에 큰 눈을 가진 그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 귀여운 얼굴은 곧 내게 공포로 다가왔다. 연습이 시작되자, 그 소년과 친구들은 내가 연습하던 프레이즈를 4배속으로 연주했다. 정확도와 지구력까지 더해져 손이 마치 선풍기처럼 보였다. 좌절감이 밀려왔다.


살벌한 꼬마들

그런데 그런 살벌한 친구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인 나보다 숙련도가 훨씬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그 그룹은 내가 연습하던 것을 0.25배속으로 천천히 반복하고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이 두 그룹 사이에 열등감도 우월감도 없었다는 점이다. 구루지가 연습곡을 제시하면 초보자는 느리게 숙련자는 빠르게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연습할 뿐이었다. 서로 다른 빠르기의 연습이 교차되면서 만들어지는 사운드를 그들은 함께 느끼고 즐겼다. 부러움이나 조급함 대신 앙상블과 하모니가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인도에서 전통음악의 프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 기간을 거쳐야한다. 전근대 시대까지만 해도 수련자들의 수행시간이 20-25년은 예사였다. 첫 무대에 데뷔하는 사람의 나이대가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런 문화적 전통 안에서 누가 몇년 먼저 시작했는지 늦게 시작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 조기 교육이나 영재 교육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이런 훈련 시간을 권유받았다면 부모들은 절대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멸의 거장들. 알라우딘 칸(중간), 라비 샹카르(좌), 알리 악바르 칸(우).


한국은 일찍 시작하고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유난히 강한 사회다. 음악뿐 아니라 공부, 운동, 예술 전반에서 언제 시작했는가가 결정적 요인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도의 전통은 정반대다. 늦게 시작했더라도 오랜 시간을 차분히 쌓아가면 결국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은 경쟁의 변수가 아니라 수행의 토대였다. 인도의 연주자들은 데뷔의 시점이 아닌 성숙의 깊이로 평가받고, 이는 음악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을 통해 빚어내는 성취임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들은 무슨 일이든 온 열심을 다해 죽어라 하지 않는다. 그냥 한다. 양치하듯이, 밥먹듯이. 수십 년, 심지어 여러 생에 걸쳐 이어질 수행을 전제로 하기에 단번의 성취에 매달리지 않는다. 마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때 굳이 ‘열심히’ 걸을 필요가 없듯이 그저 멈추지 않고 걸으면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이 이번 생은 안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안될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할 몫만큼은 해두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것이 인도의 윤회적 세계관이 내게 주는 지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윤회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은 뒤 내 몸을 이루던 원자들은 흙이 되고, 물이 되고, 공기가 되어 흩어진다. 그것들은 언젠가 내가 사랑하던 이의 식탁에 오르고, 내 손자가 키우는 반려견의 몸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나의 일부는 다시 살아 움직이고 숨 쉬고 사랑한다. 이토록 물질적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삶을 순환하며 이어져 있다.

모든 불안은 삶이 짧다는 생각에서 온다. 어떤 성취 앞에서 조급해지고 앞서가는 이들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면, 내 수명이 만년쯤 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시간이 무한하다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조차 무의미해진다. 결국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목적지에 다다를 테니까.


글/정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