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은 신성모독이다

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2

by 손안의 우주


나는 실용음악과에서 드럼을 전공했다. 팝, 록, 재즈, 펑크, 라틴 등 다양한 대중음악 장르를 공부하며 창작과 표현에 대한 나름의 신념을 형성해왔다. 아이돌을 비롯한 대중가수들, 인디밴드, 성인가요, 뮤지컬 등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는데 그 현장들은 언제나 자기 색깔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가득했다. 업계에서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너만의 색이 뭐냐’, ‘네 개성이 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는다. 그것이 곧 상품가치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질문들 속에서 자랐고, 점점 더 남들과 다른 나, 차별화된 표현에 대한 강박이 연주와 창작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다. 음악가란 곧 자기를 표현하는 존재이며 자신만의 색깔이 없다면 예술가가 아니라 단순한 기술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중음악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하지만 타블라를 배우기 위해 인도에 가서 나는 정반대의 예술관과 마주쳤다. 인도 전통예술에서 개성은 최우선의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구루의 스타일을 완벽히 체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가 새로운 리듬을 만들거나 반주 형식을 제안하는 것은 불경한 행위로 여겨진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예술은 창조가 아니라 계시 받은 질서의 반복이며 진정한 예술가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전통을 가장 순수하게 모방하는 사람이다.

이를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 있다. 타블라 수업 중, 오른손 약지 손가락의 힘 조절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힘을 주면 손 전체가 뻣뻣해져 다른 손가락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힘을 빼면 약지가 악기 표면에서 자꾸 떠서 소리가 흐트러졌다. 참고로, 유파에 따라 약지를 다루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펀잡(Punjab) 유파는 약지를 유연하게 두는 편이고, 델리(Delhi) 유파는 표면에 단단히 고정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나의 선생님은 델리 유파의 매우 명망 있는 분이었고 역시 약지를 강하게 고정하는 방식을 강조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방식이 불편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펀잡 유파의 접근법을 말씀드렸는데, 돌아온 것은 단호한 질책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호기심 많은 제자라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내 태도를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례로 받아들이셨다. 그날 나는 혼이 났고 질문조차 허용되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배우고 있던 것은 손가락의 위치가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 더 나아가 예술가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내가 중심이 되는 방식이 아니라 한 유파의 몸의 기억 속으로 나를 침잠시키는 방식이었다. ​


델리 유파의 전설. 스승님의 아버지. Ustad Latif Ahmed Khan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는 오스만 제국 시기의 궁정 화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절대 그림에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곧 신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림은 화가의 시선이 아니라 신의 시선을 모방하는 일이며 가장 훌륭한 화가는 가장 잘 지우는 자, 가장 완벽히 모방하는 자로 여겨진다.

소설 속 화가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화가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에게 있어 예술이란 자기 표현이 아니라 자기 소멸, 자신을 지워내는 과정이다. 바로 그 부재의 방식으로 신성한 질서에 다가가려는 것이다.

타블라 수업에서 배운 것도 그런 것이었다. 연주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전통의 울림에 조율되는 것이었다. 그 형식의 세계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겸손히 스며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진짜 스타일이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임을.

자아란 내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스스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형식을 모방하고 반복하며, 타인의 걸음걸이를 내 몸에 새기는 시간 없이 자기만의 길을 걷겠다는 건, 아직 길을 걷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 자의 조급함일지 모른다.

구루의 형식을 지나 자아에 이르는 길. 그것은 형식을 부정하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을 통과하여 그 너머에서 다시 자신을 발견하는 길이다. 형식은 자아를 정련하는 불이다. 그 불을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람만의 소리가 나타난다. 그것은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수없이 반복하고 묵묵히 따르며 때로는 사라지는 과정을 지나야 한다. 그렇게 긴 과정을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안의 음악, 그리고 나라는 사람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스승님. Ustad Babar Latif Khan

“전통은 우리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길을 인도하는 별이다.”

— Ravi Shankar

“즉흥이란 형식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형식 안의 자유다”

— Zakir Huss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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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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