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프롤로그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은 ‘타블라’라는 악기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2016년, 각종 대중음악의 무대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며 지쳐가던 무렵에 이 악기를 만났다. 그 만남은 단순히 새로운 악기를 만난 사건이 아니라 내 인격의 깊은 층위를 변모시키는 결정적 계기였다.
타블라는 인도의 고전음악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타악기다. 이 악기는 현대에 이르러 전통의 영역을 넘어 팝, 재즈, 엠비언트, 전자음악, 명상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쓰이면서 대중들에게 모습을 알렸다. 많은 음악가들이 타블라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악기라 말한다. 그것은 인간의 손가락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양 악기들처럼 악보에 기록되어있지 않다. 수백 년의 전승은 오직 구전으로만 어어져 왔다. 입에서 귀로, 손끝에서 몸으로 옮겨지며 축적된 감각의 언어는 곧 학습자가 자신의 몸과 마음의 구조를 다시 쓰도록 만든다. 타블라를 배우는 일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전인적 변화를 요구하는 경험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나는 2주간 델리의 음악공동체(Gurukul)에 머물 기회를 얻었다. (기회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루지가 나를 받아들일지 여부가 먼저 결정되어야 했으니까.) 나는 드럼과 타악기를 전공했기에 사실 화상 수업만으로도 기능적인 부분을 익히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학부 때 이미 다양한 월드뮤직을 공부해서 알고있는 내용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기능과 지식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음악이 어떻게 살아 숨 쉬고 그것이 사람들의 관계와 삶 속에서 어떻게 전해지는지를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그 때 인도는 연일 최고치의 감염자를 기록하며 언론이 떠들썩했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화면으로만 보던 선생님을 직접 뵙고 그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든 불안을 잠재웠다.
인도인들에게는 다르마라는 개념이 있다. 다르마는 본래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가문, 카스트와 역할 안에서 지켜야 할 질서와 책임을 뜻한다. 그것은 단순한 윤리 규범을 넘어, 우주가 굴러가는 질서 속에서 각자가 맡은 자리를 발견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내 사람에게는 반드시 다르마적 의무가 따르지만 외부자에게는 그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 (인도인들이 여행자에게 사기를 쳐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인인 내가 공동체의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내가 그들의 질서 속에서 한 자리를 부여받았음을, 그들의 우주적 책임망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했다. 그 순간 나에게 음악은 기술을 넘어 우주의 맥박을 향한 응답이었다. 그들 사이에 머물며 나는 처음으로 음악이 직업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구루지가 보여주신 따뜻한 환대를 잊을 수 없다. 수업 첫날, 그는 직접 숙소까지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구루마는 만삭의 몸으로도 수업마다 다과와 음식을 정성껏 차려주셨다. 그 분이 직접 끓이신 짜이의 맛과 향기는 지금도 선명하다. 그 친밀한 손길은 마치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친족의 정처럼 다가왔다. BTS의 지민을 좋아하던 구루지의 첫째 딸은 내 딸과 같은 나이였는데 수업 도중 장난스레 뛰어들어와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명망 있는 예술가 가문도 아이가 있으면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나는 작은 감사의 마음으로 지민 피규어를 선물로 보냈다. 맑고 큰 눈으로 애교를 부리던 그 아이와의 만남은 내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 된 듯한 감각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구루지의 집에서 그들의 다르마 속에 편입된 듯한 고양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따뜻한 울타리 밖은 전혀 달랐다. 공항, 타지마할, 아그라 역, 레드포트 등에서 만난 인도인들은 나를 손쉽게 속였고 나는 마치 먹잇감이 된 듯한 불쾌감을 느꼈다. 공동체 내부에서 경험한 환대와 그 바깥에서 마주한 냉혹한 태도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바로 그 대조 속에서 나는 다르마의 무게와 울타리의 의미를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몸담아온 대중음악의 세계는 속도와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아이돌 콘서트, 뮤지컬 갈라쇼, 오디션 프로그램, 성인가요, 음악 방송 녹화 등 모든 현장에서는 짧은 리허설 안에 음악을 완성해야 하고 단 몇 초 안에 관객의 주의를 붙잡아야 한다. 이 세계에서 음악가는 늘 즉각적인 결과물로 평가된다. 신속한 적응력, 오류 없는 정확성, 순간의 폭발력, 이것이 대중음악적 세계관의 미덕이다.
그러나 타블라는 정반대의 세계를 드러낸다. 더디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불편한 과정을 끝까지 허용할 때에만 그 문이 열린다. 속도를 추구할수록 문은 닫히고 성과를 좇을수록 길은 멀어진다. 타블라는 성과가 아니라 과정을 요구하는 악기이며 그 과정은 곧 존재론적 수련의 장이다.
이 대조적 경험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허용이라는 감각과 조우했다. 조급한 성과 중심적 삶에 길들여진 나는,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악기와의 만남을 통해 내 성급한 태도와 가치관을 정면에서 마주했다. 타블라의 질서는 나를 기다리게 했고 그 기다림은 내면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나의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타블라와 함께 겪은 나의 인격적 변화를 기록한다.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손가락의 기교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조급함을 비워내고 더디게 걸어도 무너지지 않는 내적 구조를 세우는 일이었다. 타블라는 내게 ‘허용의 역사’를 쓰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내가 오래 몸담아온 대중음악 씬의 문화와 한국 사회의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빠른 성과와 즉각적인 결과를 좇던 일상의 습관들이 타블라 앞에서는 힘을 잃었고, 그 간극 속에서 나는 비로소 다른 질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결국 이 기록은 한 악기와의 만남을 넘어 내가 속한 모든 세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2부는 타블라 연습을 통해 관찰한 감각의 기록이다. 반복되는 타격과 침묵, 그 사이에 깃드는 미세한 떨림과 호흡, 마음의 동요를 지켜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음악은 단순히 청각적 사건이 아니라, 몸과 의식 전체가 참여하는 명상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명상은 언제나 평온하지 않았다. 연습을 할수록 내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수많은 낯선 감각들이 불쑥 개입했다. 손가락의 힘이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호흡이 흐트러지고 예상치 못한 긴장이 근육을 타고 번지곤 했다. 처음엔 이 감각들을 억누르려 했으나 곧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신 그 순간부터는 감각을 지켜보며 그 흐름을 따라가기로 했다. 감각이 어디서 발생하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경로를 따라 흩어지는지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나는 마치 지도를 그리듯 내 몸과 마음의 지형을 새로 익혀갔다. 관찰이 쌓일수록 길을 더 정밀하게 찾을 수 있었고 때로는 그 길을 따라 조정하는 법도 배워갔다.
연습이란 완벽한 통제를 향한 싸움이 아니라 조정되지 않는 감각들로 이루어진 낯선 지도를 탐험하는 일이다. 그 지도를 그려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음악을 배우는 동시에 내 자신을 배운다. 그리고 그 지도는 점차 한 연주자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태도와 시선을 비추는 지도로 확장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 또한 언제나 뜻대로 조정되지 않는 감각과 사건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제할 수 없지만 관찰하고 이해하며 조금씩 조율해 가는 과정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그려간다. 결국 인생이란 불완전함을 없애는 싸움이 아니라 그것들을 품고 살아가며 자신만의 지도를 완성해 가는 여정이다.
이 글은 연주자이자 탐구자로서 내가 경험한 감각의 탐험기이자 한 악기가 어떻게 한 사람의 태도와 시선을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음악을 아는 이에게는 악기와 연주의 내밀한 세계를, 음악을 모르는 이에게는 자기 존재를 비추는 거울을 건네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연주의 본질에 대한 사유로, 누군가에게는 감각과 삶의 관계를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타블라는 내게 그 두 세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