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법

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17

by 손안의 우주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직접 타격이다. 악기에 접촉되는 신체 부위를 내가 직접 인식하는 방식이다. 피아노가 가장 대표적이다. 건반을 누를 때를 떠올려보자. 도를 눌러야겠다는 판단을 하면 뇌는 엄지손가락에 명령을 내린다. 그 명령을 받은 엄지 손가락은 건반을 누른다. 그러면 그 건반에 지레장치로 연결된 해머가 현을 때린다. 그 때 우리는 맨질맨질한 건반의 물성을 전달받음과 동시에 도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와 같이 피아노, 드럼, 기타, 베이스, 바이올린과 같이 내가 소리를 내고자 마음 먹었을 때 바로 소리가 나는 악기들에 사용하는 연주 방식이 직접 타격이다. 스틱이나 피크, 활을 사용해도 매커니즘은 동일하다. 타격 부위를 직접적으로 인식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둘째는 간접 타격이다. 이 방식에서는 타격하는 신체 부위가 내 감각의 인식망 속에 직접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어떤 악기를 그 연주자와 똑같은 신체부위로 타격을 했는데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간접 타격으로 연주해야하는 악기다. 이러한 악기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악기에 접촉되는 신체 부위가 완전히 힘이 빠져야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손가락이 완전히 힘이 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다. 튕겨오르거나(탄성), 바닥에 머무르거나(흡수) 둘 중 하나다. 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딱딱한 표면에 공을 던지면 튕겨오르고, 끈적이거나 물렁한 표면에 던지면 바닥에 머무를 것이다. 간접 타격의 핵심은 타격면의 물성과 이완된 손의 상호작용이다. 타블라가 전형적인 예다. 타블라 연주의 대부분은 검지 손가락으로 가죽의 가장자리 부분인 끼날(Keenar)을 타격하는데 피아노의 레를 연주할 때처럼 검지 손가락을 쓰면 타블라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타블라의 가죽은 조금이라도 눌림이 생기면 울림이 발생하지 않는다. 타격 이후 즉시 손가락을 떼어줘야 울림이 유지되면서 청아한 공명음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동작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타격 뒤 검지 손가락을 의식적으로 들어 올리려 하면 울림의 타이밍은 이미 지나간다. 아주 빠른 타이밍으로 손가락을 떼야하지만 내가 직접 들어 올리는 속도로는 그 타이밍을 만들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저절로 튕겨오르게 하는 것이다. 튕겨오르는 동작은 의식적으로 들어 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마치 바닥에 던진 농구공이 스스로 튕겨 올 때처럼.


이를 위해서는 검지손가락의 힘을 완전히 빼야하는데 그러려면 검지를 인식 대상에서 지워야 한다. 그런데 뇌는 어떤 것을 의식적으로 피하려 할수록 더 강하게 끌어당기기 때문에 검지를 의식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는 소용이 없다. 뇌를 속여야 한다. 이를 위해 타격의 주체를 검지에서 엄지로 이동시킨다. 감각의 감지 회로에 엄지라는 우회로를 놓아 검지가 스스로 드러나지 않도록, 즉 뇌의 시야로부터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가죽 표면의 바깥인 거저라(Gajara)를 향해 엄지를 던진다. 그러면 검지가 힘이 빠진 상태로 저절로 따라오다가 끼날(Keenar)을 때리고 자연스럽게 팅겨오른다. 비로소 그 때, 긴 울림이 발생한다. 검지가 공처럼 ‘비인식적 상태’로 존재하게 될 때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부위별 명칭 참고

이처럼 타격의 주체를 감각망에서 지워내는 것이 간접 타격의 핵심이다. 뇌의 길을 바꾸어 소리가 태어날 틈을 열어주는 것이다. 간접 타격 훈련은 단순히 소리를 얻기 위한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손가락에 힘이 남아 있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집착과 긴장을 쥐고 있을 때 삶의 울림이 막혀버리는 것과 같다. 반대로 손가락이 힘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맑고 투명한 공명이 일어난다. 이는 곧 놓아야 들린다는 역설의 체험이다.


나는 일상의 감정에도 이 원리를 적용했다. 누군가 무례하게 굴어 불쾌감이 차오를 때 그 감정을 애써 치우려 하면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럴 때 나는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끝의 촉감이나 호흡의 흐름에 주의를 두거나 그 자리에서 즉시 나와 천천히 걸었다. 발바닥이 바닥을 누르는 압력,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감각에 몰입했다. 그러자 불쾌감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나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밀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안을 없애려고 집착하는 대신 걷는 리듬과 풍경의 변화에 시선을 두면 불안의 결은 서서히 옅어졌다. 마치 검지를 지우기 위해 엄지에 집중하는 것처럼 감정도 붙들려 하지 않고 다른 감각으로 우회할 때 그 감정은 손가락의 힘처럼 저절로 풀렸다.


이처럼 타격의 주체를 검지에서 엄지로 옮기는 작은 속임수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삶에 적용되는 수행적 은유다. 바로 이 지점이 타블라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악기라 불리는 이유다. 단순히 빠른 손기술이나 복잡한 리듬 때문만이 아니라 소리를 내는 방법 자체가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과 같기 때문이다. 주체를 옮겨야만 힘이 빠지고 억지로 애쓰지 말아야만 소리가 난다. 기술적 난이도와 더불어 심리적·명상적 통찰을 동시에 요구하기에 타블라는 단순한 악기를 넘어 수행의 길로 불린다.


마음의 문법은 타블라를 연주하는 일과 같이 작동한다. 우리는 마음이 쥐고 있는 대상을 억지로 지우려 애쓸수록 더욱 강하게 붙드는 경험을 한다. 억지로 고치려 들면 더 왜곡되고 힘을 빼고 바라볼 때 자연스러움이 드러난다. 주체를 옮겨 인식을 분산하면 쥐고 있던 힘은 자연스럽게 풀린다. 이 순간 손가락은 공처럼 저절로 튕겨오르고 가죽은 저항 없이 울린다. 이는 곧 애써 비우려 하지 않고 우회하여 흘려보내는 것이 얼마나 깊은 자유를 주는지를 알려준다.


악기를 연습하는 일은 명상과 같다. 호흡을 억지로 고요히 만들려 하면 숨은 더욱 거칠어진다. 그러나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들고 나는 숨을 지켜보기만 하면 고요는 저절로 찾아온다. 악기를 두드리며 손을 의식하지 않는 순간 연주자는 악기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이완을 연습하는 것이다.


글/정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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