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지도를 그리다

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31

by 손안의 우주


악기를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은 힘을 뺄 수 없다. 감각은 언제나 그것의 상대항을 통해서만 이해되기 때문이다. 초보자는 힘을 빼본 경험도, 힘을 줘본 경험도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힘을 빼라는 조언은 종종 더 큰 혼란을 불러온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연습은 감각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연습하는 사람은 모두 탐험가다. 다만 마스터는 탐험의 범위를 우주로까지 넓힌 사람들이고 초보자는 이제 막 요람을 벗어난 사람일 뿐이다. 탐험이라는 연습의 본질상, 숙련자든 초보자든 필연적으로 길을 잃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팔-손-손가락의 위치와 각도를 조정하며, 특정 손가락 하나를 의식의 중심에 놓아보기도 하지만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때로는 손가락이 부서질 듯한 세기로 치고, 때로는 병든 사람처럼 축 늘어져 연주한다. 긴장과 이완의 양극단을 오가며 다양한 감각의 세계로 자신을 파견한다.


최근 뇌과학의 발달은 한 연주자의 뇌파를 읽어 타인에게 이식함으로써 동일한 연주를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과연 연주가 뇌의 전기신호로만 볼 수 있을까? 생물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관점에서 보면 연주는 뇌 안에 저장된 정보가 외부로 출력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뇌, 신체, 악기, 환경이 하나의 순환적 시스템을 이루며,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서서히 드러나는 어떤 사건이다. 뇌의 활동은 결코 몸의 감각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감각은 손끝의 압력과 온도, 미세한 지연, 실패와 수정의 반복 속에서 형성되며 그 모든 과정은 다시 신경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피드백으로 되돌아간다. 연주는 이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갱신되는 관계적 패턴이다. 따라서 숙련자의 연주는 신호들의 집합의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 다시 말해 상황의 미세한 변화를 읽고 그에 맞게 스스로를 조정하는 살아있는 시스템이다. 연주를 복제한다는 것은 단순히 신호를 복사 붙여넣기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 관계망 전체를 재현해야 하는 일에 가깝다. 아직까지 연주 감각 이식은 불가능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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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의 튜토리얼에 의존한다. “How to Play”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강의가 쏟아진다. 화면 속에는 이미 정답이 주어져 있다. 어떤 손가락을 써야 하는지,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어떤 소리가 올바른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강의를 하는 사람 내부에 있는 감각의 지도이다. 어떤 방식으로 차이를 느끼고 그 충돌을 어떻게 조정해왔는지, 그 좌충우돌의 역사까지는 다운로드 할 수 없다. 그래서 유튜브 강의는 연주를 하나의 정답을 맞히는 문제처럼 다룰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학습은 정답을 전달받는 과정이 아니라 연주자와 악기 사이에서 미세하게 어긋나고 다시 맞춰지는 차이들을 부드럽게 순환시키는 과정이다. 강의 튜토리얼은 이 순환을 단축시킨다. 탐색과 오류, 수정과 재조정의 피드백 고리를 생략한 채 결과만을 제시한다. 그 결과 학습자는 자신의 감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정리된 차이를 반복하는 데 익숙해진다. 감각은 깊어지기보다 평면화되고 특정 경로에 고정된다.



새로운 길을 스스로 탐색할 때, 뇌와 몸은 다양한 가능성들에 노출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관계망 자체의 재구성이다. 이미 정답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이러한 다양성이 축소되고 특정한 반응 패턴만이 강화된다. 그 결과 단기적인 재현 능력은 향상되지만 감각을 확장하는 능력은 약화된다. 이 차이는 운전자의 길 찾기 방식과 유사하다.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목적지에는 빠르게 도달할 수 있지만, 길의 전체적 구조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반대로 스스로 길을 찾는 사람은 헤매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공간 전체의 관계를 체득한다.


연주 역시 마찬가지다. 감각의 지도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순환 속에서 형성된다. 그 순환을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숙련자가 되는 과정이다. 직접 길을 헤매며 얻은 감각은 오래 남는다. 과거의 연주자들은 테이프나 CD를 늘어질 때까지 반복해 들으며 배웠다. 한 음을 붙잡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돌려 들었다. 정확한 손 모양이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오직 귀와 몸의 감각에 의존해야 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다. 듣고, 시도하고, 어긋나고, 다시 듣는 반복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고 그에 맞게 자신을 조정하는 순환이 형성된다. 끊임없이 어긋나고, 무너지고, 맞춰지는 그 모든 순간들은 몸과 환경이 서로를 수정하며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렬되어 가는 과정에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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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악의 신에게 네비게이션이 아니라 나침반을 구해야한다. 길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길을 생성할 수 있는사람이 되도록 말이다. 네비게이션은 이미 결정된 경로를 제공하지만, 나침반은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방향을 스스로 잡도록 만든다. 방향 감각은 몸과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순환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다. 길을 헤매며 마주한 모든 풍경들, 성취감과 불안감과 같은 감정의 동요들까지, 그것은 단순한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감각의 지도를 형성하는 중요한 사건들이다.


차이와 피드백의 고리가 학습의 본질이다. 과도한 긴장 상태, 뻣뻣하게 굳은 움직임, 조급해지는 마음, 이 모든 것을 소중하게 대하자. 지금의 불편함은 언젠가 만나게 될 ‘가벼움’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감각이니까.


글/정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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