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7
타블라를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매일 권하는 연습이 있다. 바로 소리의 끝을 관찰하는 연습이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타블라의 가장 기본적인 소리인 ‘NA’ 를 익힌다. 나는 먼저 학생들에게 이 구음을 길게 발성하게 한 뒤, 손으로 구현할 타블라의 타격 지점을 알려준다. ‘NA’ 의 타격 지점은 타블라의 가장자리, 즉 끼날(Keenar) 이라 불리는 테두리 부분이다. 어깨, 팔, 손목의 힘을 충분히 빼고 검지손가락 끝마디로 정확히 이 지점을 타격하면 종소리에 비견될 만한 맑고 긴 울림이 만들어진다. 물론 상당한 수련이 필요한 기법이다.
끼날의 표면은 맨질맨질해 손끝에 전해지는 마찰이 적다. 마치 잘 닦인 농구 코트 같다. 반면, 중앙의 시하이(Syahi)는 쌀가루와 철가루, 천연 접착제를 여러 겹 발라 굳혀 만든 부분으로 약간의 끈적임과 묵직한 저항을 전한다. 고무 요가 매트 같은 느낌이다. 이 물성의 대비가 타블라의 독특한 음색과 길고 짧은 울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단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NA’ 를 연주하게 한다. 이때 한 가지 중요한 규칙을 둔다. 앞 사람의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만 다음 사람이 연주를 시작한다는 규칙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이 단순한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앞 사람의 소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차례가 오면 서둘러 연주해 버린다. 규칙을 아는 것과 수행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의식의 초점이 상대방의 소리가 아니라 곧 다가올 자신의 연주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나는 학생들의 주의를 오직 상대의 타블라 소리에만 집중시키도록 이끈다. 소리가 발생하는 순간과 소멸하는 순간, 그 경계를 주의 깊게 바라보게 한다. 학생들은 곧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고요를 발견하고 그 침묵의 질감에 흥미를 느낀다. 또한 그 저변에 은은하게 깔려있는 다양한 사운드스케이프도 새롭게 체험한다. 에어콘 소리, 오토바이 소리, 코 훌쩍이는 소리.
이러한 몰입훈련을 장기간 거듭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미세한 인격적 조정이 일어난다. 소리의 소멸을 끝까지 지켜보는 동안 나는 기다림과 인내의 가치를 체득한다. 서두르지 않고 상대의 흐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침묵 속에서도 대화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은 점차 여유로워지고 관계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진다. 소리의 끝을 존중하는 태도는 곧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여유로 이어지고 쉼표 속에서 대화는 비로소 깊이가 생긴다. 타블라를 통해 훈련한 침묵의 감각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품성과 관계 맺음에까지 스며들어 나라는 사람 전체를 서서히 변모시킨다.
누구나 경청이 훌륭한 미덕임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경청은 단순한 마음가짐이 아니라 상당한 훈련을 통해 길러진 테크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테크닉은 도덕 교과서나 자기계발서 같은 매뉴얼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내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의 끝을 관찰하는 사운드 훈련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경청이란, 결국 상대방 소리의 끝을 관찰하는 행위와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글/정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