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정보들과 사건들 속에 살고 있다. 많은 정보를 빠른 속도로 접하고 있는 인류는 계층, 나이, 성별, 인종에 상관없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 지구 밖 우주의 일마저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물론 편하고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부피와 전파속도로 인하여 이러한 정보들을 관습처럼 큰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여론이라는 명목 아래 개인의 다양한 의견, 소위 비주류의 가치관은 어느 정도 무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대중이 되는 데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신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개인은 대중에게 폭력적인 억압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빠르게 돌아간다. 그리고 이런 세상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달린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건 아닌가?', '잘하고 있는 거겠지?' 잠시 멈춰서 나를 바라보고 싶은데, 바쁜 세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천천히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 않다. 이대로 멈추면 뒤처질까 덜컥 겁부터 난다. 다시는 세상과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아 무섭다. 영영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만 쳐다보며 살아갈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결국... 다시 달린다.
그냥 달려야 할 것 같으니까 달린다. 멈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시 달린다. 생각해 보면 내가 왜 달리는 지조차 모르고 달린다. 멈추는 것보다 일단 달리는 것이 나아 보이니까 달린다. 왜 달리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면 멈춰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할 나의 마음보다 평생 몇 번 마주칠지도 모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더 중요해진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그런지, 무작정 달리다 보니 어느덧 '성공'에 가까워졌다. 꿈꿔왔던 인생의 목표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일단은 뒤처지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해야만 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럴 때마다 쓸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꾹꾹 참으며 노력해온 자신의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제는 축하도 받고 미뤄왔던 일들을 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다. 이상하게도 나를 축하해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보인다. 다들 자신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을 뿐 아무도 타인의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는다.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하지만 타인의 불행을 더 기뻐한다. 멈추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모두 열심히만 달리느라 남들이 어떻게 달려왔는지는 관심 밖이다. 이런 결과는 경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미 결정돼 있었는지 모른다.
그제야 우리는 후회하며 깨닫는다. '가만히 있어도 돼. 멈춘다고 망하는 게 아니야. 너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그때가 돼서야 간신히 알아차린다. 잠깐 멈춰도 혹은 누군가에게 추월을 당해도 생각보다 큰일이 벌어지진 않는다는 사실을... 요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나이가 들어서 다시 찾으려 하는 이유는, 그제야 멈춰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타인의 속도에 뒤처지는 자신의 모습을 걱정하며 좀 더 빨리 달릴 방법만 고민하다 보면 나는 없고 경쟁만 남는다. 열심히 달리느라 지친 나의 마음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내 마음을 내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들어줄 수 있을까? 너무 힘들고 지칠 때 혹은 자신의 길에 의문이 들 때 잠깐 멈췄다 가는 건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서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여정에 도움이 된다. 지금 멈추고 싶으면 멈춰도 된다. 그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