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가 영감을 기다릴 때
프로는 작업한다.
포토리얼리즘을 창시한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척 클로스(Chuck Close)가 한 말이다. 1940년 워싱턴 태생의 그는 선천적으로 약한 몸과 난독증으로 쉽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자신이 미술 분야에 특출 난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꾸준히 노력해 자신만의 능력을 키워나간다. 1960년에 워싱턴 대학에 진학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의 초창기 작품은 '포토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그의 별명과는 다르게 추상적인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예일대학교로 다시 진학하면서 그의 작품 기조는 변화를 맞이한다. 뛰어난 색감과 소묘 실력을 갖췄음에도 늘 자신의 능력에 의문을 가졌던 그는 새로운 기법과 창의적인 작업 방법을 고민했다. 이런 시련의 과정을 거치며 척 클로스만의 극사실주의는 빛을 발한다. 20세기 후반 미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라면 단연 팝아트의 앤디 워홀을 꼽는다. 이에 버금가는 실력자로 포토리얼리즘의 척 노리스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두상이라는 소재에 '추상적 구상'을 끊임없이 실험한 그는 이제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글을 쓸 때 '영감'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분명히 개성 있고 특별한 작품이 탄생하는데 영감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빛나는 영감을 얻기 위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의도적으로 찾아가는 작가들도 있다. 매력적인 글감이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경험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이런 노력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혹은 영감은 여유롭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색하기 좋은 환경을 찾기 위해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장소를 물색하기도 한다. 경쟁으로 일그러진 도시 소음을 벗어나면 내가 가진 능력보다 뛰어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해서 작은 책상에 앉아 절치부심(切齒腐心) 글을 쓴다(좋은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누구도 이러한 수고가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그저 묵묵히 글을 쓰고 있다.
영감이 글쓰기의 전부는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 줄이라도 직접 글을 써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완벽한 동작을 상상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유능한 운동선수는 그 동작을 다시 한번 연습한다. 누군가 모두에게 감동을 줄 연주를 떠올릴 때 유능한 연주자는 그 곡을 다시 한번 연주한다. 우리가 이런저런 핑계로 글쓰기를 미루고 있을 때 유능한 작가는 그저 글을 쓸 뿐이다. 척 클로스가 어려운 여건에도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될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말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작가가 글을 쓰면 종이 위에 글자가 조각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글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독자의 정신과 만난다. 각자 상상하는 장면의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작가의 생각이 독자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수동적인 배움과 단순한 정보의 획득을 넘어 자신의 논리, 가치, 신념을 기반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 최종적으로 진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고귀한 행위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주 해보면 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당황스럽지만, 잘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주 해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에는 실력도 있지만 '생각'과 '실천'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완벽한 공부법』에서 고영성 작가는 "전문가가 되려면 우리의 노력은 두 개의 부사를 반드시 동시에 필요로 한다. 바로 '제대로'와 '꾸준히'이다."라고 했다. 읽을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들이는 수고, 즉 글쓰기 적합한 환경을 고민해 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듯이 글을 쓰지 않으면 유능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글을 직접 쓰는 데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글쓰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다. 짧은 메모 한 줄이라도 더 써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은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