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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un 27. 2022

질문은 마음의 창


자본주의의 결계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인문학, 특히 철학(Philosophy)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허영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꼰대들의 자기 합리화를 철학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고도화된 사회의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변화의 속도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오직 정보 습득만을 부각하며 성공한 인생을 위해 끝없이 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대부분 이런 환경에  적응한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하고 문득 의심이 든다.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한 지혜와 통찰은 절대로 광속으로 얻을  없다. 나의 내면은 물론 외부와 관계도 깊이 있게 고찰하지 않는다면 지혜와 통찰은 상상 속의 허울일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 기자와 NPR(National Public Radio) 해외특파원으로 활약한 철학적 여행가 에릭 와이너. 그는 기차를 타며 철학과 철학자를 사유하는 것을 사랑한다. 어찌 보면 디지털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기차는 21세기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의 추억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덜컹거리는 기차와 따분한 철학 이야기는  어울린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독자들에게 난해하고 복잡하지만,  필요한 철학적 사유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에는 작가가 직접 선별한 14명의 철학자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위대한 철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에서 우리가 어떤 도움과 가르침을 얻을  있는지 기차여행처럼 편안하게 안내해 주는 책이다.


책의 형식적인 면에서 눈에 띄는 것이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부분에 삽입된 소제목과 적절한 인용구다. 단순한 목차의 의미를 넘어 우리를 진지한 철학과 인문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뿐 아니라 해당 에피소드의 내용을 적절히 요약하기 때문에 더욱더 효과적이다. 모르던 곳의 산책을 마치고 길 초입에 스치듯 읽었던 길 안내문을 다시 읽을 때의 감회가 특별한 것처럼 각각의 에피소드를 읽고 소제목과 인용문을 다시 읽으면 이번 글에서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철학자의 생각을 체화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질문은 일방향이 아니다. 질문은 (최소)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질문은 의미를 구하고 또 전달한다. 적절한 때 친구에게 적절한 질문을 묻는 것은 연민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질문을 무기로 사용한다. 상대를 저격하고(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자신을 저격한다 (왜 난 제대로 하는 게 없지?). 질문으로 변명을 삼고(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중에는 정당화한다(내가 뭘 더 할 수 있었겠어?). 마음을 들여다보는 진정한 창문은 눈이 아니라 질문이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마음의 창은 왜 눈이 아니라 질문일까?


눈을 통해 그 사람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이는 주관적인 판단과 편협한 생각이 개입할 소지가 크다. 눈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은 다르다. 질문은 눈보다 정교하게 질문한 사람을 정의한다. 질문에는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화제의 전환이나 분위기를 환기하는 대화의 변곡점은 질문하는 순간에 많이 발생한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하는 대화를 중단할 것인지 아니면 더 연장할 것인지 판단하기 애매하다면 상대방의 질문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질문할 때이다. 질문에 나의 진심이 담길수록 그 질문의 가치는 올라간다.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질문의 의도는 무엇인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정확하게 밝힐수록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오해하기 쉬운, 파악하기 힘든, 공격적인 질문일수록 부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하는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질문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인지, 어디인지, 언제인지보다 '왜'와 '어떻게'에 더 집중해야 한다. 자신에게 매번 알기 쉽고 뻔한 질문을 던지면서 특별한 삶을 바라는 것은 왜곡된 욕심이다. 대답하기 어렵지만 진심이 담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다 보면 삶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질문이 마음의 창이라는 생각, 자기 내면 저 깊이 침잠해있는 것들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 나와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솔직하고 진지한 질문을 떠올리자. 그때 떠오른 질문이 곧 나의 내면을 설명한다. 솔직할수록 그리고 진지할수록 그 질문이 나의 정체성을 잘 설명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진심이 궁금하다면 그 사람의 질문을 곰곰이 반추해보자. 왜 그런 질문을 했을지 혹은 정말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대화는 이미 서로에게 건강하고 유익하다. 저자도 지적했지만, 공격적인 질문은(그 질문의 방향이 상대를 향하든 자기 자신을 향하든) 상호작용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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