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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Dec 08. 2023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다

⟪나를 보내지 마⟫•가즈오 이시구로

1.

이 책의 원제는 주디 브리지워터의 노래 'Never Let Me Go'를 차용했다. 저자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책의 제목을 '나를 보내지 마'로 결정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이 소설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감정을 느끼는 두 인물의 대비는 소설의 핵심 메시지를 날카롭게 가로지른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는 게 두렵지만,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평범한 인간은 인간처럼 행동하는 피조물보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부한 이해심을 진지한 공감으로 착각한 인간은 경악스럽게도 눈물까지 흘린다. 환상은 나를 바꾸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귀로 들었다는 것이지, 그 사람의 생각, 의도,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 아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의 관계, 현재 상황, 말할 때의 분위기 등 많은 것들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이다. 자기 기억 중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궁금했던 장면은 서로 다른 감정의 ‘만남’으로 우연히 탄생할 수 있다. 공감이 아니라 각자에게 소중한 것이 있었을 뿐, 서로의 진심을 이해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진정성 어린 감정의 표출은 뜻밖의 만남으로도 충분히 연출될 수 있다. 왠지 서글픈 현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는 명제는 그래서 애처롭다. 갑자기 쓸데없는 넋두리를 해서 미안하지만,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들 필자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 감히 예측해 본다. 예쁜 소설 읽으려고 집어든 책에서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결말을 만났을 때 보이는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아무나 붙잡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하소연하는 것이다. 그렇게 답답했던 내 마음을 드러내고 공감을 구걸하면서 인간은 평정심을 되찾는다. 쉽게 말해 이 책은 그만큼 읽을만하다는 말이다. 교과서같이 심심하고 딱딱한 표지 때문에 뻔하고 지겨운 이야기일 것이라 섣부르게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절대 급박하거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은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이런 행복한 몰입의 이유는 저자가 인간의 복잡한 심리적 변화를 인간의 언어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우리는 감정도 미분과 적분을 통해 수치화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절대 그럴 수 없지만 그렇지 않겠냐고 막연히 착각하며 사는 게 요즘 인생이다. 저자는 이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등장인물 간의 대화의 뉘앙스와 배경 묘사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가즈오 이시구로만의 섬세하고 우아한 문체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더욱 아름답게 하지만 조금은 처연하게 만든다. 등장인물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소설을 입체적으로 읽는 탁월한 방법 중에 하나다. 단, 일방적인 호소나 강압적인 동정을 유도한다면 독자는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렵다. 감정을 설명하는 것보다 주인공의 말이나 행동을 보여주는 게 훨씬 몰입하기에 훨씬 자연스럽다. 저자는 이 점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철저하게 지켜낸다. 아울러 시를 읽을 때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문장의 리듬감은 주인공과 나를 동기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독자와 저자의 원활한 소통은 문체에 달려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저자가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문장으로 ⟪나를 보내지 마⟫ 정의한다면 'SF와 성장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인간과 문명의 갈등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 읽고 나면 SF 소설인지, 성장 소설인지, 연애 소설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나를 성찰하게 된다. 내가 정말 인간인가? 인간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사유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결과는 참혹했다. 같다고 생각했던 사랑도 추억도 그들에게는 다른 것이었다. 겨울밤 흔하지 않은 독서 경험을 찾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전에 말한 것처럼 문제는 너희가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는 거야. 너희는 사태가 어떻게 될 건지 듣긴 했지만, 아무도 진짜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 너희는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 우스 선생님의 들었지만 듣지 못했다는 말은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니까, 음, 알잖아. 걔들의 판단에 따르면 그 사람이 '근원자'라는 거야.


▶︎ 근원자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독자가 호기심과 의심을 가질 때 작품을 향한 몰입은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루스의 태도에는 권위가 있었고, 그녀의 말에 뭔가 근거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 만큼 우리 셋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 우리는 대부분 이런 반응이지 않을까? 정작 아니라고 부정할 확실한 때가 오면 아무것도 못 한다. 상황과 감정을 핑계로 자기합리화하며 스스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결국엔 후회한다.



나는 뒷거울로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이윽고 그는 한 손을 애매하게 들어 올리고 나서 돌출된 지붕 쪽으로 몸을 돌렸다. 차의 뒷거울에서 광장의 모습이 사라졌다.


▶︎ 토미의 마지막 모습. 그와는 이렇게 끝났다. 사랑도 추억도 그들에게는 다른 것이었다.


3.

문명의 갈등을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SF 장르를 좋아하는 분

잔잔하지만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소설을 찾는 분

세밀한 감정 묘사에 재미를 느끼는 분


나를 보내지 마

저자 : 가즈오 이시구로
번역 : 김남주
출판 : 민음사(2021)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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