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방향
우리는 모두 레이서로 태어났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고속 트랙 위에선 그렇다. 출발 신호는 태어나기도 전에 울린다. 산후조리원 예약 전쟁부터 시작해, 영어 유치원 레벨 테스트, 선행 학습 진도, 수능 등급, 최연소 승진, 30대 내 집 마련, 그리고 40대 임원 달성까지. 이 트랙에는 쉴 곳이 없다. 나 역시 13년 동안 그 위에서 꽤 성실한 레이서였다(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믿었다). 공대생 시절부터 엔지니어로 일하는 동안, 나는 가속 페달을 밟는 법만 배웠지 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꺾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멈추면 뒤처진다는 공포, 그것이 내 엔진을 돌리는 유일한 연료였다.
어느 날 문득, 맹렬하게 달리는 차 안에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속도계 바늘은 시속 100km를 훌쩍 넘어가는데, 차창 밖 풍경이 낯설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푸른 바다가 아니라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분명히 누구보다 빨리 달렸는데, 도착해 보니 내가 원한 곳이 아니었다. 그때의 당혹감이란. 내비게이션을 켜지도 않고 엑셀만 밟아댄 대가였다. 우리는 술자리에서 서로의 연봉을 묻고, 차종을 묻고, 아파트 시세를 묻는다. "얼마나 빨리 가고 있어?"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생략한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중이야?"
속도에 중독된 사회는 방향을 묻는 사람을 패배자나 몽상가 취급한다. 잠시 멈춰 서서 지도를 펼치면 "한가한 소리 한다"며 혀를 찬다. 하지만 묻고 싶다. 낭떠러지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것이 과연 성실함인가, 아니면 가장 부지런한 멍청함인가. 인류의 기술사를 뒤져보면, 오직 속도만을 숭배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주인공이 하나 있다. 콩코드 여객기다. 콩코드의 삶은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고속 성장'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76년 상업 비행을 시작한 콩코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여객기였다. 최고 속도 마하 2.04. 총알보다 빨랐다. 런던에서 뉴욕까지 고작 3시간이면 주파했다. 아침에 런던에서 홍차를 마시고, 뉴욕으로 날아가 점심 미팅을 하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 것이 가능했다. 콩코드는 20세기가 꿈꾸던 '속도의 미학' 그 자체였고,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콩코드는 '스칼라'의 한계를 보여준 기계였다. 물리학에서 스칼라는 크기만 있고 방향은 없는 물리량이다. 콩코드는 오직 '빠름'이라는 크기에만 집착했다. 그 압도적인 속도를 얻기 위해 콩코드는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다. 우선 효율이다. 콩코드는 일반 점보제트기보다 승객은 4분의 1밖에 못 태우면서 연료는 2배 이상 퍼부었다. 마하 2의 속도를 견디기 위해 기체는 공기 마찰열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비행 중 기체 길이가 무려 30cm나 늘어났다. 조종석 틈새로 손을 넣으면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 정상적인 비행이 아니었다. 공기와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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