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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본다

창문과 거울

by CO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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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없는 방’이라는 건축학적 모순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완벽한 어둠과 고요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라면,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지만 현대인에게 그런 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손에는 언제나 켜져 있는 작은 창문, 스마트폰이 들려 있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불 끄고 누운 침대 위에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 창문을 연다. 엄지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타인의 화려한 일상들. 오로라가 춤추는 아이슬란드의 밤하늘, 입사 동기의 승진 파티, 갓 구운 빵 냄새가 날 것 같은 브런치 카페의 풍경. 그 네모난 창문 너머의 세상은 편집된 하이라이트 영상처럼 매끄럽고 눈부시다.


그 빛에 눈이 멀어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은 화면이 꺼지는 순간, 검은 액정에 비친 내 초라한 얼굴과 함께 복귀한다. 며칠째 이어진 야근으로 푸석해진 피부, 늘어난 티셔츠, 그리고 무엇보다 휑한 눈동자. 방금 전까지 봤던 창문 밖의 완벽한 세상과, 거울(액정) 속에 비친 내 궁색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속이 울렁거린다. ‘같은 시간을 통과해 왔는데, 왜 결괏값은 이토록 다른가.’ 이 질문은 곧 자괴감으로 변질되어 새벽 내내 나를 괴롭힌다.


사람들은 흔히 “남과 비교하지 말라”라고 충고한다.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니 타인을 보지 말고 어제의 너와만 비교하라고. 맞는 말이다. 반박할 수 없는 정론이다. 하지만 그건 물에 빠진 사람에게 “숨 쉬지 말고 아가미로 호흡하라”라고 주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눈이 달린 이상 우리는 본다. 보이는 이상 우리는 인식하고, 인식은 필연적으로 나와 대상을 비교하는 데이터 처리 과정을 동반한다. 비교를 끊겠다는 다짐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라서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비교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가, 즉 우리가 사용하는 ‘광학 도구’에 대한 오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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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자주 창문을 거울로 착각한다. 창문 밖의 풍경이 내 모습이 아니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그 투명한 유리에 비친 희미하고 아름다운 잔상을 나라고 믿고 싶어 한다. 혹은 저 창문 밖의 세상이 나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착각한다. 밖을 볼수록 안은 더 어두워진다. 이 불행의 자동화 시스템을 멈추려면 광학의 기본 원리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나를 비추는 빛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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