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의 해안선

독서와 글쓰기

by CO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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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책장을 바라볼 때마다 묘한 현기증이 인다. 정확히는 책장 한구석을 점령한 채 아직 첫 장도 넘기지 못한 책들의 두께가 주는 압박감이다. 흔히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산 것 중에 읽는 것이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단순히 읽지 않은 책이 많다는 사실보다 나를 더 괴롭게 하는 건 따로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세상이 명쾌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복잡하고 불투명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공부할수록 세상이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이건 일종의 거대한 지적 사기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세상을 거대한 기계 장치라고 믿었다. 적절한 입력값을 넣으면 정해진 출력값이 나오는 결정론적인 세계. 그래서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정교한 논리를 세우면 인생의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지식은 곧 빛이며, 그 빛이 닿는 곳마다 어둠이 걷힐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하고 나면 내가 정복한 지식의 영토보다 내가 발을 들이지 못한 미지의 대륙이 훨씬 더 광활하다는 사실만 뼈아프게 깨닫는다.


지식의 양이 늘어날수록 무지의 부피 또한 함께 커지는 이 역설.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우리는 왜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게 많아지는 기묘한 늪에 빠지게 되는 걸까. 이 의문은 단순히 지적인 겸손의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학습하는 시스템 근저에 흐르는 논리적 충돌이다. 어쩌면 우리가 더 많이 배운다는 건 더 세련된 방식으로 길을 잃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 막막함은 여전히 나를 서성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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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의 시선으로 지식을 정의한다면 그건 나라는 시스템이 점유하고 있는 반경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수학적 비유를 하나 떠올려 본다. 지식의 총량을 원의 면적이라고 가정해 보자. 우리가 학습을 통해 지식을 쌓는다는 건 이 원의 반지름을 조금씩 늘려가는 행위와 같다. 반지름이 커지면 원의 면적, 즉 내가 아는 영역은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하여 비약적으로 넓어진다. 여기까지는 기분이 좋다.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더 복잡한 수식을 풀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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