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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Dec 31. 2021

창백한 푸른 점

문제의 해결은 현상의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지구가 처한 현실은 은하계의 변두리에 위치한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초라한 과학적 진실 앞에 망연자실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소중한 것입니다.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코스모스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막연한 동경심으로 설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겁니다. 그 설렘의 원인은 아마도 인류의 존재가 우주의 탄생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별의 성분과 인간의 성분은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저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한 챕터를 읽고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는 그때의 느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천문학자가 해주는 우주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사진을 부르는 명칭으로 1990년 2월 14일 촬영했습니다. 칼 세이건은 보이저 계획의 화상 팀을 맡았고 이 사진도 그의 주도로 촬영된 것입니다.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에 세이건은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릴 것을 지시했습니다. 촬영 당시 보이저 1호는 지구와의 거리가 61억 킬로미터였습니다. 많은 반대가 있었으나, 결국 지구를 포함한 6개 행성들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과 동일한 제목의 책 『창백한 푸른 점』의 명문들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이제 지치고 힘들 때 힘을 얻는 나만의 힐링 방법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이도 읽었다는 사실이 슬프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만난 칼 세이건의 차분한 문체는 따뜻한 토닥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 사진에 대한 ‘소감’은 저에게 가장 기억하고 싶은 ‘시’가 되었습니다.


NASA에서 30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리마스터한 사진


여기가 우리의 보금자리이고 바로 우리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알고 우리가 들어봤으며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이 살았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 우리가 확신하는 수천 개의 종교와 이념, 경제체제

모든 사냥꾼과 식량을 찾는 이들

모든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모든 왕과 농부

모든 사랑에 빠진 연인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촉망받는 아이,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스승과 부패한 정치인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이

태양 빛 속에 떠다니는 저 작은 먼지 위에서 살다 갔습니다.


지구는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입니다.


그 모든 장군과 황제들이

아주 잠시 동안

저 점의 작은 부분의 지배자가 되려 한 탓에 흘렸던 수많은 피의 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의 한 영역의 주민들이

거의 분간할 수도 없는 다른 영역의 주민들에게

끝없이 저지르는 잔학행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자주 불화를 일으키고

얼마나 간절히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며

얼마나 열렬히 증오하는지


우리의 만용, 우리의 자만심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창백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 행성은 사방을 뒤덮은 어두운 우주 속의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입니다.


이 거대함 속에 묻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 줄 이들이 다른 곳에서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구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로는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종이 이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다른 세계를 방문할 순 있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하죠.

좋든 싫든, 현재로썬 우리가 머물 곳은 지구뿐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사람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죠.

멀리서 찍힌 이 이미지만큼

인간의 자만이 어리석다는 걸 잘 보여주는 건 없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좀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죠.


- Carl Edward Sag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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