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궁공원(太阳宫公园)

진짜 자연 말고 적당히 통제된 자연, 공원

by 유과장


일단 이름이 멋지다. 태양의 궁전이 있는 공원이라니. 태양궁지역 유래가 어찌 된 것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볕이 잘 드는 곳이고, 태양신을 모시던 곳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공원에 비해 조금 더 디테일하게 공들여 놓은 티가 난다. 다른 곳보다 더 세련되게 닦아놓은 러닝트랙이라든지, 호수 중앙에 새들이 머무는 섬을 만들어 놓았다든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많다는 점이 반가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공원에 가는 편인데,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곳이다.



겨울에 갔을 때에는 호수에 새가 많았는데, 새를 관찰하거나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것 같은 비싼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눈에도 예쁘고 뽀얀 새들이 많아 한참 서서 새를 구경했다. 한국에 사는 동안 나는 새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지저분한 비둘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을 이맘때면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잿빛 기러기떼도 차 위에 똥을 싸는 애들에 불과했다. 그런데 베이징 공원에는 예쁜 새가 참 많다. 털색으로 동물을 차별하면 쓰겠냐만은, 그렇다면 대체 아름다움이란 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태양궁공원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새들의 섬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학이 한 마리 살고 있다. 다른 새보다 훨씬 크고 우아해서 처음에는 조각상인줄 알았는데, 멀리서 날갯짓을 한 번, 두 번 하더니 물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먹고 있었다. 아니 왜 길쭉하고 하얀 애들은 똑같이 물고기 잡아먹는데 우아한 걸까? 우리 조상들은 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했을까. 왜 쥐보다 새를 바라보는 게 더 아름다울까. 쥐나 새나 지저분하기는 매한가지 아니려나.


아름다운 것들을 실컷 보다 보니 아름다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잿빛 하늘보다 푸른 하늘이, 홀로그램 비둘기보다는 뽀얗고 화려한 새가, 병든 나무보다는 생명력 가득한 초록 나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러닝트랙, 아이들이 놀기 좋게 설계된 놀이터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얼굴, 깨끗한 호수물에서 아이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는 토실토실한 물고기 떼. 배불러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새들. 적당히 통제된, 나보다 강하지 않은 자연이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 모기 벌레 가득한 진짜 자연은 두려움의 공간이다. 죽은 나무 산나무 뒤엉켜 나보다 더 큰 동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자연은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이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산길을 한참 혼자 걷고 있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호랑이가 나오면 어쩌지 같은 바보 같은 걱정을 했는데 막상 튀어나온 것은 작은 산양이었을 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느낀 적이 있다. 덩치 큰 산양도 자연에서 일대일로 만나니 조금 무서웠다. 동물원의 호랑이는 멋있지만, 펜스를 걷어내는 순간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갈 것이다. 바다에서 수영하면서 미역만 다리에 닿아도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바닷물속에 꽃게라도 만나면 깜짝 놀라 소리 지르며 바다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나약해빠진 나란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자연 말고 잘 통제된 자연인 공원이 나에게 딱 적당하다. 나무 사이 간격까지 계산해서 심어 놓은 산책길,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엽과 쓰레기를 줍는 관리인. 아마도 적당히 관리되고 있는 호수와 호수에 살고 있는 새들. 그리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어린이공원. 무료인 놀이터와 유료인 놀이터, 그보다 더 비싼 놀이기구들이 함께 있는데, 아이들은 유료를 향해 뛰어가 이왕 나왔으니 기분 좋게 뭐 하나 태워주지 않을까 하는 눈빛으로 부모님께 졸라보고, 나 또한 기대에 부응하여 물썰매와 총으로 과녁 맞히기 정도를 시켜주었다. 내가 얼마를 쓰고 갈지까지 계산해 놓은, 자연이 통제된 이곳에서 적당히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지는 것은 아니겠지.


겨울에 왔을 때에는 눈이 잘 오지 않는 베이징에 인공으로 눈썰매장을 만들어놓고 작은 포클레인이 돌리는 썰매라든지 이런저런 재미있는 시설이 많았다. 추워서 오래 놀지는 못해도 가까이서 썰매 타기에는 좋았다. 겨울 썰매장이었던 자리에 가을이 되니 키즈카페를 만들어두었다. (여름에는 덥고 모기가 많아서 놀 수가 없을 것이다.) 야외 키즈카페의 규모에 한번 더 놀랍고 대단하다. 그리고 시즌별로 설치하는 놀이시설인데 너무 잘 만들어 놓아서 놀랐다. 가을은 짧아서 겨울이 오기 전에 얼른 놀아야 한다. 모기가 없을 때 실컷 놀아둬야 한다. 베이징서 모기 때문에 놀지 못하겠다를 실감했는데, 자연 그대로였다면 인간은 모기에게 졌을지도 모른다.


중국 공원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공원 내에 카페와 음식점이 없다는 점이다. 근처에 먹을 곳이 없다. 물론 근처라 함은 지극히 내 기준이다. 차 타고 10분이면 쇼핑몰이 있는데 중국 기준으로 충분히 근처이다. 한국인 기준으로는 공원 안이나 입구에 나오자마자 있어야 할 카페나 음식점이 없다는 점이 어색하다. 하지만 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카페와 음식점이 없기에 고요한 그 공원이 조용하고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을 수 있다. 그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중국정부가 돈이 되는 걸 뻔히 알면서 공원 앞에 음식점을 남발하지 않는 것은 다 생각이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이유가 뭔지에 대해 알 권리가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젊고 어린 내 아이들에게는 뭐든지 알고자 하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면서도, 나는 이제 종종 모든 것을 내가 알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가을의 푸른 하늘이 왜 아름다운지 진화론적, 과학적 설명을 곁들여 증명하기는 좀 귀찮은데, 어찌 되었든 아름다운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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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징에서 가깝다. 이케아 또는 체육용품을 사기 위해 가는 데카트론 바로 뒤편에 있다.

마실 것 먹을 것이 없으니 적당히 가져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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