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겠네.
이 공원에 처음 왔을 때였다. 남편은 베이징에 도착한지 그래도 석 달은 지났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가족을 이끌고 이 공원에 왔는데, 내 상식으로는 공원이 너무 커서 도무지 다 걸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한국에 익숙하던 시절이라 이렇게 큰 공원을 왜 걸어야 하는지 귀찮기만 하던 때였다. 마침 입구에 4인 자전거가 눈에 띄어 그걸 한번 타고 가보자 했고, 신랑은 왜 저런 자자전거 따위에 몇백 위안을 써야 하는지 신경질을 내며 나를 긁었다. 나는 주말에 겨우 몇백 위안 쓰는 걸로 저렇게 열받게 하나 싶었고, 남편은 중국에서 자전거를 몇백 위안씩이나 내는 바보짓을 왜 하는지 나의 고집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에서 한 달 내내 자전거를 타는 정액권이 20위안도 안 하는데 말이다.
그때는 몰랐고, 이제는 나도 알겠다. 굳이 비싼 자전거를 빌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 큰 공원을 하루 만에 다 걷지 않아도 된다. 내 걸음이 허락하는 만큼 걷다가, 힘들면 잠시 앉아 쉬면서 싸 온 먹을 것도 좀 먹어보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 중국에서 자전거 한번 타는데 1.5위안인데 굳이 몇백 위안을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관광객이 아닌 주재원이라면 더더욱. 다시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빌려준 남편이 대인배다.
처음 베이징에 왔을 때 내 체력은 바닥이었다. 갑상선암 수술을 막 마치고 오기도 했고, 갑상선을 하나 떼어내서 그런지, 아니 그전에도 그랬지만 갑상선기능저하증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며 축 늘어진 삶을 살았다. 그리고 베이징에 와서 조금 화가 났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도 걸어가려니 15분이 걸려서 착시의 숲에 온 것 같았다. 모든 게 다 큼직큼직해서 바로 한 블록만 가면 된다더니 아무리 걸어도 한 블록이 끝나지 않았다. 신발이 닳고 밑창이 떨어지고 내가 아끼던 가죽 신발이 너덜너덜해져서 헛웃음이 났다. 왜 베이징의 수많은 언니들이 쿠션 빵빵한 운동화만 신고 다니는지 그때 알았다. 로퍼만큼은 내 보잘것없는 패션의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었는데, 로퍼를 신고 리장에 갔다가 무릎이 망가져서 6개월 이상을 고생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여느 베이징의 주부들처럼 운동화만 신는다.
이제 나는 제법 잘 걷는다. 날이 좋으면 심지어 뛰기도 한다. 좀 멀리 가야 할 때면 자전거도 잘 탄다.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있는데, 물론 오토바이와 엉켜서 처음에는 혼란스럽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도 다 룰이 있다. 바다의 해류를 따라가는 물고기처럼, 자전거도 그 해류를 잘 따라가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나는 날씨 좋은 날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목적지 없이 그냥 동네를 돌기도 한다. 몇 년 전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헤이치아오 공원에 처음 왔을때, 4인자전거 빌리는 몇백 위안 때문에 남편에게 열이 받아서 이 공원을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혼자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몇몇 공원을 가보니 이 공원만큼 좋은 공원이 또 없다. 남편도 이 공원이 마음에 들어서 나를 여기로 데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전거를 빌려달라고 어린애처럼 떼를 썼나 싶다. 이런 걸 보면 같은 것을 좋아하면서도 쓸데없는 걸로 잘도 싸운다.
헤이치아오 공원은 아직 미완성인 공원이다. 갈 때마다 호수가 한 개 더 생기기도 하고, 밭이었던 공간에 나무를 심어놓기도 하고, 호수를 메꿔서 수상다리를 만들고 섬도 만들어 놓았다. 매년 갈 때마다 풍경이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 큰 공원에 화장실이 딱 한 개뿐이었는데 며칠 전에 갔을 때에는 화장실을 한 개 더 짓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무들도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나뭇가지들이 아직 다 펴지지 않은 어린 나무들이 많다. 그리고 가장 대단한 것은 호수를 하나 더 만들었다는 것이다. 없던 호수가 생기는 걸 보니 참 대단하다 싶다. 미완성인 공원이라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대중교통이 닿기는 좀 애매한 거리라서 그런 건지 정말 한적한 공원이다.
가을에 이곳이 떠오르는 걸 보면, 가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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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놀이터, 탁구 농구 테니스 풋살장 다 있다.
걷기, 뛰기, 자전거 타기 모두 가능
큰 호수가 있고, 화장실은 아직까지 한 개. 자판기도 한 개 보긴 했으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돗자리와 캠핑의자도 가능한 듯싶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대중교통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