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타트업에 재직할 당시 대표와 출장을 가는 일이 잦았다. 또한, 출장을 갈 때면 기술 팀장이었던 '제로빅'씨와 대표와 나 이렇게 셋이 잘 어울렸다. 다들 공통점이 있다면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장을 갈 때면 술을 거나하게 마셨고, 다음날 숙취는 오로지 본인들의 몫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도 술을 엄청 마셨던 것 같다. 보통은 '제로빅'씨가 술을 잘 마시기 때문에 나랑 대표가 먼저 취하는 날이 많은데 그날은 유독 대표가 피곤했는지 나보다도 한참 먼저 술에 취했다. 노래방에 가서 술을 시켰는데 벌써 취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다음날 숙취를 1%라도 줄이기 위해 고음의 락발라드를 불러 재꼈다.
상황은 노래방에서 나오면서 발생했다. 그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대표는 그런 길바닥이 운치 있게 느껴졌는지 노래방에서 나오자마자 아스팔트 바닥을 한동안 쳐다보더니 그날 먹은 음식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참 그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제로빅'씨를 향해 돌아보니 모른 체 하고 앞으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평소 '제로빅'씨는 성숙한 인성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른 체 한 데는 나쁜 의도가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표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서 '나도 모른 체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힘든 사람은 챙겨줘야 한다는 오지랖 넓은 성격 때문인지 나는 다음날 비둘기 밥을 준비하고 있는 대표의 등을 두드려줬다.
나는 아직도 내 선택이 옳았는지, 모른 체 하는 게 나았는지 잘 모르겠다. 혹은 정답이 없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다. 도움을 받는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도 있고 나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에 그 선택을 했던 이유는 인사불성인 사람에게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보다 챙김을 주는 것이 더 우선순위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로빅'씨 그리고 대표
그들과 멀어진 지금,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이 되었는데 나이를 더 먹고 보니 괜한 호의를 행사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 같다. 정이 사라져 가고 있달까. 아마 지금의 나라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사람은 상종을 안 하려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