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재직하며 한 해 동안 약 4명의 디자이너를 경험했다. 물론 작은 기업인지라 디자이너 팀이 꾸려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디자이너 TO는 1자리이다. 즉, 1명이 나가면 그 1자리를 메꾸는 형식이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혼자 있다 보니 디자이너 혼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디자이너도 시각디자인, 웹디자인, 앱디자인 등 세부 전공이 다양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라는 조직에서 일하는 나 홀로 디자이너의 숙명은 제품 디자인도 했다가 앱 디자인도 했다가, 웹 페이지를 만들 때가 되면 웹 디자인도 했다가 일당백의 역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는 디자이너에게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일 것이다. 거기다 잘 알려지다시피 디자이너의 연봉테이블은 높은 편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초기 스타트업의 디자이너 직무는 오래 일하기 힘든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1월, 내가 처음 만난 디자이너는 40대 초반의 워킹맘이었다. 그녀는 활달하고 젊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참 신기했던 게 본인보다 10살이나 어린 동생들과 춤도 추고 밤문화도 즐기러 다니곤 했다. 그녀가 일할 당시 비트코인이 떡상하면서 붐을 일으켰다. 전해 듣기로 그녀도 그때 한몫 챙겼던 것 같다. 내가 옆자리에서 지켜본 봐로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현타 오는 순간 중 하나로는 대표의 둥그런 몸뚱이와 얼굴을 포토샵 하고 있을 때인 것 같다. 초기 스타트업들은 대표의 사진을 기사에 게재할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대표가 늘 디자이너에게 본인의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첫 번째 디자이너 분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 같다.
두 번째 디자이너는 대학생 현장실습생이었다. 그녀는 관심 있는 일을 곧잘 했지만 대표의 눈에는 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정규직 전환이 되지 못하고 짧은 기간의 근무를 마치고 떠나게 되었다.
세 번째 디자이너는 서른 즈음의 미혼 여성이었다. 그녀는 뭔가 독특한 면이 있었으며, 대표는 그 독특한 면에서 창의성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창의성도 창의성을 받아줄 수 있는 환경에서 빛을 볼 수 있다. 대표의 생각과 같은 결을 같지 못하면 창의성 있는 제안도 창의성이 아니라 곁가지에 불과했다. 그녀는 참다 참다 바탕화면을 "도비는 자유예요" 라는 유명한 퇴사짤로 바꾸고 탈주하고 말았다.
한 때 유명했던 퇴사짤 Dobby is free!
네 번째 디자이너는 대표와 결이 잘 맞았는지 무던한 성격이라 그런지 가장 오래 근무했다. 이 디자이너는 스스로 그만두지도 않았고 회사가 부산에서 서울로 이전하게 되면서 타의로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기 스타트업 회사에서 좋지 못한 디자이너 환경에서 회사생활을 잘 견딘 것을 보면 어딜 가서도 일을 잘할 사람이라 확신이 든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일을 잘하고 있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