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좋은 날

초단편 소설 01

by 코태

‘이 아무개’는 노년의 은퇴한 직장인이다.

그는 대기업 부장을 거쳐 누구나 이름은 한 번씩 들었을 법한 중견기업의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자식들도 모두 독립했고 지금은 은퇴 후의 한가함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비록 은퇴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에 등산을 시작했고,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던 시절과 다르게 오히려 몸이 더 건강해진 느낌을 받았다.


여느 날처럼 친구들과 등산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경로우대를 받아가며, 대중교통으로 무료로 목적지까지 가도 되지만 굳이 얼마 전 깨끗이 세차한 고급 세단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모임장소까지 차를 몰고 가며, 휴대폰을 켜 유튜브 정치 뉴스를 틀었다.


겨우 내 추위에 움츠렸던 날씨가 따스하게 풀리며 아침의 상쾌한 공기와 싱그러운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헐벗은 나무들도 꽃과 잎을 피워내며 산도 생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산에 올라가는 동안 힘들고 숨이 차올라도 그는 꾸준하게 흔들지 않고 자신만의 힘으로 등반에 성공했다.

산 정상에서 전경을 바라보며 마신 푸른 기운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고, 바람은 폐부를 씻어내듯 불어왔다.

그는 호연지기를 느꼈다.

자신은 아직 그 속에서 노쇠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직 멀쩡하구나, 나는.” 그 말은 누가 들으라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말려주며 대신 대답해 주는 듯했다.


하산 후 그는 항상 동료들과 식사를 했다. 파전 한 장, 막걸리 한 잔. 산에서 내려온 몸에 술은 더욱 달콤했고, 건강한 음식들이 마치 보약처럼 느껴졌다. 웃음이 터지고, 농담이 오갔다.

오늘따라 기분은 더 좋았다. 술기운에 불콰해진 얼굴로 친구들에게 말했다.

“아직 살아있어! 젊은 애들보다 더 건강한 것 같아!”


차에 올라 익숙한 도로를 달렸다. 창문 사이로 봄바람이 스며들고, 벚꽃은 곧 만개할 것 같았다. 그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켜 유튜브 정치 뉴스를 틀었다. 화면 속에는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이 떠들어댔다.

그는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세상이 말세야… 세금 도둑놈들!”


그러면서도 마음은 흡족했다. 자연의 호연지기를 온몸으로 마셨고, 좋은 술과 좋은 벗을 만났으며, 집으로 향하는 익숙한 길마저 오늘따라 아름다워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건재하다. ‘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

‘이 길은 눈 감고도 갈 수 있다.’


횡단보도 앞, 아이들이 지나갔다. 아이들의 웃음은 봄날의 새소리처럼 가벼웠다.

그는 무심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분명히, 확실히, 제대로 밟았다.


그러나 차는 멈추지 않았다. 익숙한 길은 갑자기 낯설게 기울었고,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순간,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아이들의 모습이 흔들렸다.


그는 핸들을 움켜쥔 채 정신을 붙들었다. 술기운은 사라지고, 대신 싸늘한 공기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봄날, 이른 꽃잎이 떨어졌다.

그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중얼거렸다.

“나는… 제대로 밟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