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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소M Feb 16. 2024

1914년 10월 7일 호루라기를 보내는 가족들


1914년 10월 7일

사랑하는 남편

  셰롱씨가 잘 아는 어떤 장교가 친절을 베풀어 줄 것 같아요. 그분께 당신에게 소포와 이 편지를 전달을 부탁하려 해요. 소포 속에는 호루라기가 들어 있을 거예요. 들리는 소문으로 어떤 부상병 하나가 호루라기 소리로 발견됐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호루라기를 넣었어요. 시어머니께서도 이미 호루라기가 들어있는 소포 여러 개를 당신에게 보냈다고 하셨으니, 그중에 몇 개는 확실하게 당신에게 도달할 거예요. 지난 17일 시어머니가 받은 소식 이후로 당신에게 여전히 새 소식이 없어요. 우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라도 소식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우리 가족에게 이 시기를 이겨낼 용기가 부족하지는 않지만, 당신의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될 거예요.

 피에르 막내 매부는 아직도 루앙에 있으며, 농장 증류소를 위해서 징집연기를 요청했어요. 신께서 그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길 바라셨으면. 저는 조르주 씨에게 매부의 요청을 지지해 달라 요청했어요.

 시댁 소식은 조세프 조카는 군수 공장에 남았고, 앙드레 막내 시숙은 시어머니가 저번에 시숙을 보러 갔던 드뢰에서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쟝 시숙은 몽펠리에에 있어요. 부상은 괜찮다지만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다시 알려드리자면, 쟝 시숙은 지난 8일 베르됭 근처에서 부상을 입었고, 야전병원으로 옮겨졌어요. 거기에서 당신 연대 소속 군인 두 명을 보았어요.

 둘째 펠릭스 매부는 시어머니 안부를 확인하려고 어머니댁으로 파리를 지나는 동료 하나를 보냈어요. 그 동료가 30일에 파리 어머니댁을 떠났고, 어머니는 그 손에 펠릭스 매부에게 보낼 겨울옷 한 꾸러미를 줄 정도로 친절을 베풀었어요. 마들렌이 매부대신에 답 인사로 적었듯이, 어머니는 매부를 마치 넷째 아들처럼 대해줬다고 해요. 루이즈 시누는 잘 지내요. 그래도 어머니는 시누가 더 피곤하지 않도록 침대에 누워있게 하고 있어요.

 오스트르보스크 농장의 모두는 잘 지내요. 동생들이 잘 지내듯 농장도 잘 운영되고 있어요. 우리는 밀을 수확하고 사탕무를 뽑고 있어요. 저번에 앙델리에 밀을 팔러 갔는데, 레지네 가에 자루당 27 프랑에 팔았어요.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25,50 프랑 정도밖에 못 받을 거라 했는데 말이에요. 우리 모든 귀염둥이 아가들도 건강해요. 당신 딸은 먹음직스러울 정도로 통통해요. 무엇보다 당신과 닮았어요. 매우 예쁘고 매우 똑똑해요. 제가 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표현력도 매우 다양한데, 투덜거림도 풍부하게 사용해서 반응하는 법을 알고 있어요. 작은 메추라기만큼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완벽한 근육질이에요.  잠에서 깨어나 눈이 마주치면 바로 웃기 때문에 성격도 매우 쾌활할 거예요. 내 사랑, 우리 딸을 보면 당신은 미쳐버릴 거예요. 우리 딸은 당신을 매우 사랑하며 아빠라는 단어에 웃음을 터트려요. 당신처럼 웃음이 많아서 그게 제게도 행복한 영향을 미쳐요. 당신 아내는 완벽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당신이 너무 그리워요.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어요. 당신이 돌아오셔서 다시 저를 애지중지하고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면 제 행복은 다시 시작될 거예요. 사랑하는 우리 대장 꼬꼬씨, 이런 식으로 우리가 헤어지게 되어 너무 슬퍼요. 얼마나 오랫동안 슬퍼야 할까요! 우리가 다시 만나서 키스하고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 마음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어요. 내 사랑, 당신은 제가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상상할 수도 없을 거예요. 제가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하고 미칠 정도로 열렬히 사랑해요. 떨어져 있는 이 겨울 내내 우리가 함께한 지난 삶을 기억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저를 얼마나 많이 사랑해 줬는지 알게 될 거예요. 그 시절에 저는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것의 4분의 1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제 사랑이 너무 커져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당신만 생각할 때가 있어요.

 내 사랑, 시어머니가 당신이 불쌍한 지휘관 친구를 위해 해준 모든 일을 제게 적었어요. 저는 그 이가 가는 길에 동행해 준 당신에게, 친구로서 마지막 의무를 다한 당신 두 손에 키스를 전하고 싶어요. 당신이 해야 했던 모든 일이 저를 슬픔에 잠기게 했고, 당신이 심적으로 어려운 순간에 함께 해주고 싶어 속상했어요.

 내 친구, 내 인생,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 어깨에 머리를 대고 당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기에 제가 가진 모든 고통에 짓눌려 울고만 싶어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사랑해요. 당신을 안고 뽀뽀해 주고, 우리 아이가 태어나던 밤에 했던 것처럼 꼭 안아주고 싶어요. 끝으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저예요.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가 저보다 우선순위에 있죠. 저를 잊지 마세요. 잊지 말고 계속 사랑해 주세요.

마리-조세프

우리 딸 바베트가 부드러운 키스를 보내요. 선하신 주님이 당신의 안위가 우리 둘에게 절실하단 걸 기억하시길.



1914년 10월 8일

사랑하는 내 자크,

  당신에게 소포와 편지를 보냈어요. 오귀스트 셰롱이라는 장교를 통해서요. 그 안에는, 제 말은 장교 안을 뜻하는 게 아니라 소포 속을 말하는 거예요. 소포 속에는 담요 한 개, 플라넬 셔츠, 속옷, 조끼, 양말 한 켤레, 머플러, 허리띠를 넣을 플라넬 주머니, 종이, 휴지, 비누, 칫솔, 연필, 담배 6갑, 성냥, 초콜릿 한 상자, 호루라기가 있어요. 듣기로는 전장에서 한 부상병이 호루라기 소리 때문에 발견되었다고 해요. 안위를 전하는 좋은 방법이죠! 당신에게 무사히 가길 바라요. 그리고 이 겨울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기를 바라요. 내 사랑 당신 셔츠에 축복 메달을 꿰매뒀어요. 선하신 주님과 축복을 주시는 동정녀 마리아를 떠올리세요. 당신에게는 그들의 보호가 필요해요. 그들이 당신을 지켜주고 승리를 주길 바라요.

 오늘 아침 당신이 보낸 엽서를 받았는데, 오랫동안 당신 소식이 없었어요. 23일에는 혹시 당신이 사망했을까 두려움에 죽어가고 있었어요. 그날이 당신 가정에 불행이 들어오는 날이라고 했거든요. 내 불쌍한 냐옹씨, 농담이에요. 제가 그런 미신을 믿을 리가 없잖아요. 멀리 서나 가까이서나 당신을 이렇게 놀리는데, 받아줄 당신이 없네요. 만약 당신이 여기 있다면 평상시처럼 저를 놀라게 한 나쁜 녀석은 “내가 때려줄게"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겠죠. 어서 독일군을 때려주고 빨리 돌아오세요. 내 사랑, 당신에게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요.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지 너무 오래됐고,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요.

 편지를 멈췄다가, 다시 이어 쓰고 있어요. 당신 딸이 찢어지는 울음소리로 밥을 달라고 했고, 방금 업어서 재웠어요. 이제 저도 자러 가야겠어요. 안쓰러운 영혼의 단짝, 당신이 그토록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편하게 지내는 것이 부끄러워요. 당신의 피로에 동참할 수 없는 게 불공평해요.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은데, 벽난로에 우리 딸의 작은 신발이 놓인 걸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참, 당신이 요청한 매부의 부대 주소를 마들렌이 전해 줬어요. 펠릭스 매부의 주소를 받아 적는데 이게 복잡하네요.

:로지 원수, 영국원정대 소속, 제6 드레곤 경비대, 제4 기병 여단, 파리 중앙 사무소


 곧 다시 봐요, 사랑하는 자기.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깊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당신을 감싸 안아주며,

당신 부인, 마리-조세프


1914년 10월 9일

사랑하는 내 아내

  삶은 여전하고 시간은 여전히 더디게 가오. 곧 변화가 있기를 바라오.

 나는 잘 지내오. 날이 더 이상 덥지 않지만 잘 껴입고 있소.

 어제 5통의 편지를 받았소, 그러나 아주 오래된 것이오. 새 소식을 기다리고 있소.

 장모님과 처제들을 나 대신 꼭 껴안아주고 우리 딸 바베트에게는 뽀뽀를 부탁하오.

 당신에게는 내 사랑하는 아내, 가장 상냥하고 부드러움을 보내오.

당신의 자크로부터






1차 세계대전 병사들의 필수품: 호루라기


  1차 세계대전에서 각국은 장교들에게 나팔대신 호루라기를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호루라기는 가볍고 소지하기 쉬우며, 나팔보다 사용법도 간편했습니다. 소리 신호는 진격을 명령하거나 적의 습격을 알리기도 했고, 때로는 후퇴를 명령하거나 정해둔 암호를 통해 호루라기 신호만으로 어느 방향으로 공격해야 될지까지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호루라기 보급은 장교의 명령 전달 신호기로 시작되었지만, 전쟁사에서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특징은 전장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벌어졌으며, 참호전이라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중대형 화기도 등장했으나, 방어 장비는 그에 비해 무척 미비했습니다. 그래서 벌판으로 포격 공격 이후에는 부상자를 수색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부상병 다수가 포탄으로 움푹 파인 대지 어딘가에 파묻힌 상태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하다면 발견확률은 극악해집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참호와 포탄 구덩이로 뒤섞인 흙속에서 사람을 식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호루라기와 군견은 구조요청과 수색작업을 위해 1차 세계대전 전장에 처음 투입됩니다.


그 시절 프랑스 군이 사용했던 다양한 호루라기 모델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1차 세계대전에서는 군보급품 목록에 호루라기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호루라기뿐 아닙니다. 사실상 중앙에서 내려오는 보급품의 양과 질은 턱없이 부족하고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호루라기는 생존에 직결된 필수 품이기에 보내야 했습니다.

 병사들의 가족들이나 연인, 지인들이 따로 보내주어 보급되었기에, 다양한 형태의 호루라기들이 유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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