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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Feb 05. 2019

서운함은 폭력이라는 말

최은영, 「일 년」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지만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다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기다려서 오히려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진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다 멈칫한 부분. 나는 어제도 오늘도 서운했는데 서운하다는 감정엔 폭력적인 데가 있단다. 누군가 나에게 답정너라고 부르는 걸 보면 나의 감정은 정확히 서운함이었나 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살면서 한 번도 서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온 것인가!



그동안 서운하게 하는 자들만 탓해왔던 나를 되돌아본 하루였다. 최은영의 글은 미묘한 감정을 짚어주어서 좋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감정을 잘 모르는 말로 설명해서 좋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콕 집어 말하지 않으면 모를 마음들을 차근차근 꺼내보여 주는 것 같은 기분? 그러다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가끔은 미처 생각지 못한 표현에 놀라기도 한다.



오늘은 모처럼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 담요를 덮고 책을 읽었다. 부모님이 외출한 집은 고요했고 오로지 나만의 공간이었다. 평소에는 생각도 못할 여유가 있는 하루여서 좋았다. 이제 설 연휴가 딱 하루 남았다. 아니 근데 연휴가 다 가버렸단 생각에 벌써 서운한데 어쩌지? 역시나 글 쓰는 건 쉽지만 마음 쓰는 건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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