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팔아 커피를 살 수 있을까> 독립출판 소식
결코 독립적이지 않은 사람의 독립출판기
독립출판을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여름이었다. 에세이 수업을 들으러 간 부천의 독립책방에는 기성 출판을 화려하게(?) 거절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책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럼에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 책들을 단 한 권도 사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만 해도 내 글이 제일 구렸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서 척척 책까지 출판했다고? 사실 자존심이고 뭐고 혼자서 책을 만들었다는 그 능력들이 너무 부러워서 배가 아팠다.
마지막 수업 날, 책 몇 권을 사서 돌아왔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단숨에 독립출판의 매력에 빠졌다. 제일 좋은 것은 성취감. 초반에 접했던 독립출판물들은 대개 얇아서 금방 완독 할 수 있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나도 하루에 책 두 권 읽는 책벌레가 됐다. 그다음으로 좋은 것은 위로. 회사 다니면서 나만 울고 힘든 줄 알았는데 퇴사 컨텐츠만 보면 나는 지극히 정상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다음으로 좋은 것은 솔직함. 독립출판물은 필명으로 내는 책이 많아서인지 더 진솔하게 느껴졌다.
자기 힘으로 책을 냈다는 사람들이 참 많이 부럽긴 했지만 직접 독립출판을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음. 만약 내가 독립출판을 한다면. 책방에 입고하러 가는 상상을 했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쑥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독립출판 작가들을 끊임없이 부러워하면서도 갖은 핑계를 대며 독립출판을 피해 다녔다. 이유는 책방에 내 책을 팔아달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서,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라서, 책 표지 디자인을 못해서, 회사를 다녀서, 어제 체해서, 조카가 태어나서 등등.. 말로만 독립출판에 관심 있는 척하고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 나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는 것보다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던 독립출판을 해보기로 결심한 건 바로 나 같은 사람 10명 덕분이다. 합정 글쓰기 모임, 문토 <결국은 에세이>에서 그들의 글을 처음 들었던 날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제한시간 안에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하나같이 다 재미있었다. 소개팅에 실패하는 남사친에게 보내는 여심 공략법에서부터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패스워드 만드는 법까지. (난 이날도 쇼핑에 대해 썼다..) 내 입으로 내가 쓴 글을 읽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어쨌든 내 차례만 버티면 글쓴이가 읽어주는 글을 여러 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할 수 있었다.
‘다들 집에서 준비해왔겠지. 한 시간 만에 어떻게 저렇게 좋은 글을 써!’ 하고 정신승리하길 여러 번. 어느덧 수업이 끝나 있었다. 2주에 한 번, 딱 6번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 아쉬울 수가. 우리는 이별의 아쉬움 앞에서 독립출판이라는 새로운 구실을 만들었다. 그렇게 혼자 독립출판을 하기는 선뜻 용기가 안 나는 11명이 모였고, 각자 1/11(0.09)만큼의 몫을 한다고 ’영점영구’라는 이름도 지었다.
<이 책을 팔아 커피를 살 수 있을까>는 독립출판은 난생처음인 영점영구 11명이 함께 쓰고 만든 책이다. 책을 만드는 게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은 만큼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카페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고민이 길어져서 제작기간이 반년 이상 걸리기는 했지만. 직장인에게 저녁시간은 금인 탓에 만날 때마다 밥을 거르기도 했지만. 가끔 이 책을 팔아 커피는커녕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11명의 용기를 모아 마음을 달랬다.
이 모든 것의 시작!11명 중 누군가는 판을 짜고, 누군가는 디자인을 하고, 누군가는 인쇄를 보고, 누군가는 지출내역을 관리하고, 누군가는 서점에 입고 요청서를 보내고, 누군가는 글을 좀 더 쓰는 방식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말은 독립출판물이지만 몹시 의존적인 책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팔아 커피를 살 수 있을까. 이 책을 만들면서 먹은 수십 잔의 커피값 이상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책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 벅찬 일이라면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것 말이다.
* 사족이 매우 길었지만 책이 나왔습니다. 슈크림라떼라는 필명으로 참여했습니다. 영점영구 11명이 쓴 총 55편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328p의 혜자스러운 구성. 벌써 커피 사 먹긴 그른 것 같지만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출간된 글 일부는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책 부록으로 각자 내가 글쓰는 이유를 실었습니다.
https://brunch.co.kr/@cotton100/47
책 소개
제 목 : 이 책을 팔아 커피를 살 수 있을까
가 격 : 14,900원
판 형 : 130*180
페이지 : 328p
장 르 : 에세이
온/오프라인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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