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Feb 23 2026
일주일 내내 내리던 비가 드디어 그치고 아침부터 맑게 개었다. 매일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았는데 항상 흐려서 오늘은 커튼을 열어보지 않았더니 어느새 붉은 보랏빛 하늘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우산을 챙기지 않고 예약해 둔 툭툭을 타고 리틀아담스피크 트래킹 코스로 향했다. 7시였다. 한국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시간.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뷰포인트까지만 올라가서 거기가 끝인 줄 알았지만 스키장 최상급 코스 같은 비탈길을 한번 내려가고 또 한번 올라가야 트레일 코스의 최종 봉우리가 있었다. 그리 멀지는 않았으나 쉽지 않은 코스, 등산할 준비가 되어있는 튼튼한 젊은이들만 그 언덕으로 갈 수 있었다. 나도 스포츠 샌들을 신었지만 엉금엉금 그곳으로 향했다.
사지를 모두 활용하여 고갯길을 올랐다. 봉우리에 가려 보이지 않던 지평선 위로 드리운 구름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공중으로 삐죽 나온 엔드포인트가 백 미터쯤 아래에 있었지만 또 다른 바위길을 내려가야 되는 게 귀찮아서 가장 높은 곳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중천으로 향하는 해가 점점 뜨겁게 어깨를 달궜다.
해가 뜨자마자 출발해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시내로 내려왔다. 갈 때는 툭툭을 탔지만 올 때는 여유롭게 걸어온다. 툭툭이와 차를 피해 한 켠으로 섰다가,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우연히 마주친 요가원, 마사지샵 정보를 찍어두고, 셀카를 찍었다가 하늘 풍경을 찍었다가, 게임 앱을 켜놓고 걸음 수를 올린다. 동네 개들과 친한 척도 해보다가 40분 넘게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화창한 오후를 즐기다가 이번엔 오후타임에 요가원을 찾았다. 나 빼고는 모두가 새로운 참여자인 것 같다. 요가가 처음인 것 같은 아가씨와 처음이 아닌 것 같은 아가씨가 내 앞에 자리했다. 처음인 것 같은 아가씨는 검은색 초미니 캉캉 치마수영복 같은 걸 입고 견상 자세를 하면 팬티만 입은 것 같은 뒤태가 남사시럽다. 종종 마주치는 서양 소녀들은 한국이면 속바지로만 입었을 초미니 바이커 쇼츠를 잘만 입고 다닌다. 괜히 무릎 위까지 오는 내 레깅스가 거추장스럽다. 한 뼘짜리 반바지에 쪼리 신고 학교 다니던 시절이 아련하기만 하다.
크리스틴은 어제와 비슷한 요가를 안내한다. 저 문장은 얼마나 여러 번 써먹는 레퍼토리일까? 내가 만약 일주일 동안 머무르며 나타난다면 무슨 말을 할지 고민을 할까?
이곳이 두 번째이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기억하며 인사를 해주는 크리스틴에게 오늘이 엘라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말한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더 수다스러워지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은 하루짜리 여행객이 스쳐 지나갔겠냐마는 다음 주에도 만날 요가 선생님처럼 느껴지는 그의 담담하고 진지한 목소리-비가 세차게 올 때 크게 말하느라 쉬어버려 회복 중이라는 목소리-는 잊지 않을 것 같다.
밤 10시면 한국시간 1시. 자동으로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오늘은 이상하게 갑자기 시력이 나빠진 것 같다. 내일은 해가 뜨는 하늘을 꼭 지켜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