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graphy Trip

29 MAY 2025

by 게으른 곰

오늘은 둘째 딸이 1박 2일로 Geography Trip을 가는 날이다. 둘째는 지리 수업을 듣는다. 사회 과목 중 무슨 과목을 들을까 고민하다가 지리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즈니스나 어카운팅, 이코노미를 들었으면 사는데 더 도움이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오늘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가방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둘째를 보면서 지리도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MG_2522 copy.jpg 학교 뒤로 떠오르는 아침 해. 지리 여행을 위해 일찍 등교했다.


뉴질랜드 고등학교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와 많은 것들이 다르다. 일단 배울 모든 과목을 대학처럼 본인이 선택한다. 고등학교는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총5학년인데, 9학년때는 8-10개의 과목을 배운다. 필수 과목인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체육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인이 배우고 싶은 과목으로 채울 수 있다. 학교마다 과목의 개수나 다양성은 다르지만 바느질 수업이나 목공, 아트, 연극, 음악, 디지털 테크놀로지, 컴퓨터, 비즈니스, 어카운팅, 외국어(일어, 한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마오리어 등) 많은 과목이 있다. 첫 해는 이런 시스템이 무척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이들 성향에 맞는 수업을 고등학교 때부터 선택해 들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여겨진다.


9학년, 10학년은 주니어 학년으로 다양한 과목을 배워볼 수 있게 이수할 수 있는 과목수가 시니어 학년보다 많다. 둘째는 10학년때 드라마 수업과 바느질 수업을 했었다. 연극 발표회 때 부모님을 모시고 공연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그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날이다. 대사를 혼동해 실수가 있었지만, 나는 그 실수까지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바느질 수업은 통이 큰 후드가 달린 옷을 1년 동안 천천히 만들었는데, 이 옷은 뉴질랜드 겨울에 흔히 입는 필수템이다. 겨울 아침 침대에서 나올 때 이 옷을 먼저 뒤집어쓴다. 무릎을 덮을 정도로 넉넉한 기장덕에 그나마 따뜻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둘째는 곰돌이 푸우에 나오는 이오르 디자인을 곁들여, 모자에 귀를 달고 당나귀 갈퀴를 붙였다. 엉덩이 쪽엔 꼬리를 붙이고 앞쪽엔 커다란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해 말, 둘째는 바느질 수업에서 1등 성적을 받아 상장을 받았다. 태어나 바느질과 미싱 사용을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급하지 않은 수업 일정, 그리고 충분한 선생님의 조언과 격려 덕분에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그 옷은 겨울을 기다리며 옷장에 보관되어 있다. 겨울에 방문할 남편이 입게 될 것이다. 이 수업덕에 둘째는 언젠가 다시 미싱을 꺼내 옷을 만드는 취미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11학년부터 13학년은 시니어 학년이다. 학교의 언니 오빠 같은 느낌이다. 11학년부터는 6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게 된다. 체육 과목이 필수 과목에서 제외된다. 대게 대학을 갈 학생들은 비슷한 과목을 듣는다. 과학 과목을 2개 선택해 듣는 게 일반적이고, 수학을 2과목 드는 아이도 있다. 영어는 필수 과목이니 들어야 하고, 사회 과목을 한 과목 정도 선택해 듣는다. 큰애는 물리와 화학, calculus(미적분학), 아트, 어카운팅, 영어를 듣고 있다. 둘째는 일본어, 화학, 생물, 수학, 영어, 지리 수업을 듣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목은 세부적으로 나뉘기도 하며 그 과목을 듣기 위해 간단한 테스트를 보기도 한다. 시험은 대게 모두 서술형이고 수학은 공학 계산기를 사용한다. 실수로 계산을 틀리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전체적인 이해와 응용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뉴질랜드는 학교마다 NCEA(뉴질랜드 교육과정) 외 IB, A-LEVEL을 다루는 학교도 있다. 우리 학교는 NCEA와 IB를 선택할 수 있다. NCEA를 11학년까지 공부하고 IB는 12학년, 13학년때 이수하게 된다.


각 분야의 리더들도 시니어 학년부터 뽑는다. 큰애는 form class와 양궁 클럽에서 리더와 코치를 맡고 있다. form class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같은 반’ 느낌이다. 각각의 form class엔 담당 선생님도 있다. 담임 선생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담임 선생님의 역할과 비중은 매우 약하다. 같은 반도 우리나라처럼 같은 학년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전체 학년이 모두 다 섞여있다. 그러니 매년 신입생이 반에 새로 들어오게 된다. 아침 조회 시간에 form class에 모여 전달 사항을 간단히 전해 듣고 각자의 수업 교실로 흩어진다. 학교 과목 상담도 각 과목 선생님과 약속 시간을 만들어 상담한다. 나는 큰애의 form class 선생님을 딱 한번 뵌 적 있다. 담임 선생님이어서가 아니고, 10학년때 큰애의 수학 과목을 맡고 계셔서 수학 상담을 위해 만났었다. 무척 인자하시고 자상하신 분이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학교의 인터넷 시스템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학교 수업은 노트북을 이용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각 과목의 수업 알림이나 행사 공지 등은 모두 학생 개인이 알림으로 전달받는다. 학교 수업뿐 아니라 가입한 동아리 소식, 일정, 스포츠 일정, 훈련, 대회 공지 등 모든 것을 학교 인터넷 시스템을 통해 전달받는다. 모든 활동은 공동체 느낌보다 개인화되어 있다. 듣는 수업이 각자 모두 다르고 동아리나 스포츠 활동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인화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결석도 학교 시스템에서 설정할 수 있다. 담임 선생님과 연락할 일이 없다. 아이들은 개별적으로 수업을 듣고, 스포츠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단체 활동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뉴질랜드 학교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스포츠 활동과 공부가 병행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이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부터 스포츠 활동을 했다. 뉴질랜드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에 처음엔 로잉 클럽에 가입했다. 로잉을 3회쯤 갔을 때, 모든 대회가 여름방학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름은 로잉이 꽃피는 시기다. 그날을 위해 일 년 동안 훈련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름 방학 내내 한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클럽에 가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큰애는 양궁, 작은애는 배드민턴이다. 둘 다 우리나라가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스포츠다. 나는 필드하키나 농구 같은 팀 스포츠를 했으면 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큰애는 양궁 코치로 활동하고 있고, 둘째는 열심히 배드민턴 대회에 매주 수요일마다 참가하고 있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스포츠 활동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게도 행복을 가져다준다. 처음 뉴질랜드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한 가지는 공부만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은 내 욕심 때문이었다. 잘 적응해 준 아이들이 고맙다.


지리를 공부하고 있는 둘째가 오늘 Geography Trip을 갔다. 아침 7시 20분까지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아침해가 뜨는 시간에 집을 나섰다. 돌돌돌돌 작은 캐리어 소리가 경쾌했다. 다행히 오후에 비예보가 있는데, 오전은 맑은 날씨다. 지리를 공부하면서 나오는 지역에 직접 방문해 눈으로 보고 경험을 통해 배우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이다. 로토루아(Rotorua)는 유명한 지열 활동 지역이다. 그래서 간헐천, 온천등이 유명하다. 유황 연기도 많아서 로토루아에 가면 특유의 유황 냄새가 난다. 아마 지금 이 부분을 공부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공부를 책에서 끝내지 않는다. 경험하며 배움을 익힌다. 일례로 비즈니스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지난주, 학교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했다. 본인이 팔 물건과 방법, 마케팅, 수요조사 등을 통해 좋은 사례와 실패 사례를 익히고 더 나은 방향을 찾는다. 수익금과 성과, 그리고 보완해야 할 점등을 리포트로 작성해 제출한다. 그렇게 비즈니스를 체험하며 배운다. 지난주 작은애는 생물 시간에 쥐 해부를 했다. 그전엔 소의 심장을 해부했다. 화학 시간엔 여전히 실험을 한다. 실험을 하다가 뭔가 펑 터진 날엔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느라 정신이 없다. 조금은 느린 것 같고, 조금은 세련되지 않았지만 차곡차곡 아이들 인생에 쌓이는 보물 같은 추억들이 감사하다.


내일 둘째는 여행을 마치고 오후 7시쯤 학교에 도착할 예정인데, 7시부터 시작하는 배드민턴 클럽 활동까지 하고 밤 9시에나 집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여행을 떠났다. 학교를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참 다행이다. 내일도 시험이 있는 큰애는 오늘도 공부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겠지만, 내일 여행을 마치고, 배드민턴까지 치고 올 둘째는 이야기보따리를 산더미처럼 풀어놓을 테니, 오늘은 충분히 조용한 밤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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