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UN 2025
아침엔 늘 정신이 없다. 매일 그런 루틴이니 이젠 적응할 만도 한데, 여전히 힘에 부친다. 아마 엄마가 된 이상, 아이들이 출가하지 않는 이상 바쁜 아침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이 드신 나의 엄마를 생각하니 아이들이 출가해도 바쁠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정말 부지런하셨다. 지금도 부지런하다. 엄마를 부지런하게 만드는 건 고집이었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된다는 고집, 몸에 좋지 않은 것을 가족에게 먹이고 싶지 않은 고집, 가끔은 엄마의 고집스러운 철칙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았지만, 나도 엄마가 되고 나서는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엄마는 지금도 40이 넘은 딸에게 좋은 음식, 좋은 재료를 손질해 갖다 주신다. 무겁게 들고 오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그 짐을 짊어지고 딸에게 오는 길을 좋아하신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것이 백배 낫나 보다. 허리가 굽어가는 엄마를 보고, 어느 날은 투정 같은 화도 내봤지만, 엄마는 막무가내다. 엄마는 아직도 나를 냇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로 생각하시는 게 틀림없다. 그 엄마의 고집스러운 사랑이 싫지만은 않다. 이 나이가 돼도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부모와 자식은, 그런 관계인 것 같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허리가 굽어도, 엄마가 해준 밥이 제일 좋다. 그 안엔 사랑과 근심, 걱정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겠지.
부모에게 자식이 다 큰 어른으로 보이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현재까지는 모르겠다.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갈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작은 딸은 학교를 일찍 간다. 수업 시작 1시간 전에 학교를 간다. 학교가 그렇게 좋을까. 학교 때문이 아니라 친구가 좋아서일 것이다. 처음엔 염려스러워 이른 등교를 반대했는데, 이젠 일찍 등교하는 작은애 때문에 더 바쁜 아침을 보내게 됐다. 뉴질랜드는 학교 급식이 없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야 한다. 아침 식사는 간단히 시리얼, 혹은 전날 저녁에 먹은 반찬으로 해결한다. 문제는 도시락인데, 우리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2일 동안 싸주면 3일째 되는 날은 밥을 찾는 한국인이다. 또, 밥을 3일 동안 싸주면 다른 제3의 요리를 요구한다.
왜, 도대체, 뉴질랜드는 학교 급식이 없을까. 이건 말도 안 된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엄마는 도시락을 싸주셨다. 엄마는 어떻게 매일 도시락을 쌌을까. 그때 난 햄이나 소시지 반찬을 싸주지 않는 엄마가 불만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엄마는 정말 음식에 큰 공을 들이셨다. 치킨도 집에서 튀겨주셨고, 크로케나 빵도 잘 만드셨다. 내가 엄마 요리 중 특히 좋아했던 칼국수는 직접 면을 밀대로 밀어 칼로 썰어 만드셨다. 엄마는 그런 것들을 다 하셨다. 엄마는 요리를 정말 잘하셨다. 빈틈없는 성격이라 모양도 예뻤다. 그런 엄마는 불량 식품이라고 생각되는 반찬은 도시락으로 싸주지 않으셨다. 내 반찬을 친구들에게 주고, 친구의 소시지 반찬은 내가 먹었다. 친구 도시락은 늘 맛있었고, 내 도시락은 늘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딱 그때의 엄마 나이다. 샌드위치 한 개를 싸도 준비 시간이 1시간은 걸리는데, 밑반찬을 만들고, 밥을 짓고, 국을 아침마다 끓인 엄마는 새벽에 일어났던 것 같다.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른 새벽, 가족은 모두 잠자고 있을 때 혼자 일어나 밥을 지으셨다. 일찍 출근하시는 아빠의 식사를 먼저 챙기고 자식들 도시락을 싸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엄마는 그때가 좋았다고 가끔 말씀하신다. 나는, 도시락을 매일 싸야 하는 지금이 별로 좋지 않다. 요리에 자신이 없는 나는 도시락으로 뭘 싸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만든 샌드위치는 햄, 치즈, 양상추, 토마토를 넣은 것이다. 무난한 맛이겠지만 매일 먹으면 질릴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쌀밥에 밑반찬 도시락은 먹기도 불편하고 냄새도 많이나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도 그렇게 도시락을 싸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밑반찬은 먹기엔 쉽지만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나는 아직도 밑반찬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 뉴질랜드는 책상에 앉아 반찬을 나눠먹던 나의 학창 시절과 다르게 벤치에 앉아서, 혹은 계단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대게는 빵이나 샌드위치, 샐러드 등을 도시락으로 싸 온다. 처음엔 저걸로 식사가 될까 하는 걱정이 들 만큼 적게 먹는 뉴질랜드 아이들을 보고 놀랐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속을 꽉 채운 뚱뚱한 샌드위치를 싼다. 자식이 배를 곯는 것은 이상하게 견딜 수 없다. 유난스러운 한국인들의 밥 사랑도 한몫하는 것 같다. 안부를 식사의 유무로 묻고 약속을 밥 한번 먹자고 하는 한국인의 피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흐르고 있는 것이다.
몸이 무거웠던 어느 날 아침, 번듯한 샌드위치나 김밥이 아니고 간단한 도시락을 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달걀을 4개 삶았다. 사과와 포도, 해시브라운과 삶은 달걀을 싸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득 채운 도시락을 싼다.
삶아진 달걀 껍데기를 까다가 문득, 이걸로 될까? 하는 한국 엄마의 마음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삶은 달걀을 한쪽에 치우고 달걀 6개를 풀고 당근, 브로콜리, 새우, 치즈를 꺼내 다지고 손질했다. 한 문장으로 끝난 내 요리는 사실 만드는데 1시간이 걸렸다.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해시브라운이랑 같이 케첩을 뿌려 도시락에 담았다. 사과를 1개씩 깎아 넣고 포도 알 15개 정도 담았다. 도시락이 꽉 찼다. 그래도 뭔가 부족해 보였다. 팬트리를 열어 견과류 바 한 개와 브라우니 한 조각, 채소 과자 한 봉지를 쌌다. 두 개의 도시락이 됐다. 밥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간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뭔가 든든한 것이 빠진 도시락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두 개의 도시락이 든든한 마음을 들게 했다. 뭐라도 배를 채우면 된다. 밥이 아니어도 괜찮다.
뉴질랜드에 사니 집에서 먹는 식사도 간단해졌다. 반찬은 김치 한 개이거나 할라피뇨, 올리브이다. 한국에서는 매 끼니마다 김치를 반찬으로 먹었는데(그것도 김장김치, 열무김치, 갓김치나 오이김치 등 두세 가지가 올라올 때도 많았다. 모두 엄마와 시어머니가 해주신 것들이다.), 지금은 일 년에 절반도 김치를 반찬으로 먹지 않는다. 여전히 집에서 한식을 먹지만 상차림이 간단해졌다. 도시락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 그러면서 내 요리는 자유를 찾았다. 내 마음대로 만든다. 재료의 한계와 내 요리 실력과 노력 부족 때문이다. 어느 날은 맛이 있고, 어느 날은 맛이 없다. 뉴질랜드에서 지내는 동안은 쭉 이렇게 먹게 될 것이다.
한식은 점점 더 세계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살아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한식만큼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가진 나라는 별로 없다.
해가 갈수록 애국심만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