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귀찮음의 경계

28 MAY 2025

by 게으른 곰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별로 없어 만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기회가 많았다. 화요일 ART모임에서도 누군가를 만나고, 영어 수업에서도 누군가를 만난다. 하지만 이 두 그룹은 수업이 묶어주는 인연이기 때문에 사석에서 만남을 갖지 않는다. 수업에서 만나 웃고 즐겁게 대화하고 헤어지지만 서로의 마음에 자리 잡아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보고 싶다는 감정이 들게 하는 사이는 아니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다 같이 웃고 떠드는 그 즐거운 시간을 비집고 찾아온다.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약속이 한 개, 두 개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목요일은 이웃과 산책을, 금요일은 처음 보는 두 명과 커피를 마셨다. 월요일은 엄마 넷이 모여 점심을 먹었고, 화요일, 수요일은 영어 수업과 ART 모임을 했다. 근래에 가진 일정 중 가장 바쁜 일주일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즐겁다. 새로운 정보를 나누고 생각들을 공유한다. 비슷한 삶의 모습과 고민들을 들으며 위안을 받는다. 어쩌면 나는,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매일매일의 연속을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통화할 때도 솔직한 감정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감정을 겉으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반대로 기쁜 일이 있어도 많이 기뻐하거나 많이 슬퍼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이 흘러가는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가는 편이다.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나의 상태와 감정을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일이 없는데 불안함이 느껴지는 건 처음 경험하는 일이고, 이건 내가 생각해도 정상적인 패턴은 아닌 것 같아 신경 쓰고 있다.


얼마 전 무척 우울한 날이 있었는데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작년부터인가 생리 전 날 무척 우울한 감정이 든다. 한국이었으면 의사와 상담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평소와 다르게 깊고 어두운 우울함을 느낀다. 호르몬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는 확실히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감정에 기분이 변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이유 없이 깊은 우울함이 찾아 모면 나는 달력을 들춘다. 어김없이 생리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이건 호르몬 때문이라고, 더 깊은 어둠으로 가지 않기 위해 수차례 곱씹는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온 나는 우물밖에 나와 큰 세상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햇빛도 아름답고 경치도 아름답고 모든 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나는 혼자 못났다. 나를 못나게 만드는 건 바로 나다. 나는 왜 이리 작고 여린 마음을 갖고 태어났을까. 남편이 나에게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주변을 둘러보라는 말이다. 주변에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일들이 많은지, 하지만 주변과 상관없이 마음은 제멋대로다. 감사를 몰라서가 아니다.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모른다. 하긴, 나도 뚜렷한 원인을 모르는데 남편이 이해 못 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가끔 너무 평온한 마음을 가진 그가 나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쓸쓸함도 느끼지만, 몸도 마음도 건강한 그에게 감사하다. 그래, 한 명은 건강해야 한다. 누군가는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갱년기가 오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44살인 나는, 갱년기가 아직도 먼 일같이 느껴지지만 40대 중반에 갱년기를 겪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갱년기 증상을 찾아봤다. 기분변화, 우울, 피로, 체중 증가, 집중력 저하는 나에게 해당하지만 안면 홍조, 자다가 땀을 많이 흘리는 것, 심장이 빠르게 뛴다던지 불면증, 생리 주기 변화 등은 나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니니, 이제 막 시작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갱년기는 누구나 겪는 일이니 당연히 지나가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의지할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혼자 갱년기를 이겨내야 되는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약도 없다고.


결국 오늘은 영어 수업에 가지 못했다.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다. 요즘 두통이 잦다. 원래 두통이 가끔 있지만, 요즘 더 자주 아프다. 그리고 몸이 무겁다. 일주일을 너무 바쁘게 보낸 것 같다. 운동을 게을리했더니, 가지고 있는 체력이 모두 소진된 게 틀림없다. 올해 초, 운동을 열심히 해보리라 다짐하고 산 실내 자전거는 내 방 한구석에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구입할 때 나는, 한쪽 구석에 진열만 해놓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하고 다짐을 했다. 다짐은 가볍고 허무하고 거짓이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리라 또 다짐을 한다.


사람을 만나는 건 매우 즐겁지만, 역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하다. 차라리 극 내향형이거나 극 외향형인 사람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는 50대 50 정도로 내향적이고 외향적이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 피곤한 성격이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사람을 만나면 힘이 든다. 하루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있어야 한다. 일주일 넘게 그 시간을 갖지 못해 두통이 찾아왔나 보다. 진통제를 먹고 나탈리에게 수업에 못 간다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종일 침대에 누워서 자다 깨다 하며 하루를 보냈다. 종일 날이 흐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흐린 날의 유일한 장점은, 침대에서 하루 종일 누워 보내기에 딱 어울리는 날이라는 것이다. 빗소리가 오늘따라 좋다. 마음이 편하다. 두통만 없으면 딱 좋겠는데, 진통제를 한 알 더 먹을까 고민 중이다.


아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큰 일도 없고 걱정되는 일도 없다. 한 달 뒤면 남편이 뉴질랜드에 온다. 그의 밝음이 내 어둠을 모두 몰아내주길 바란다. 비가 더 많이 오면 좋겠다. 침대 안이 더 따뜻하려면 바깥 기온이 조금 더 낮아도 괜찮겠다. 추워지길 바라본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흠, 확실히 평소의 나는 아닌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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