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닮은 사람

시간이 머무는 곳

by 춤추는바람




음력설에는 흰 눈이 펑펑 내렸고 입춘을 앞두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반갑지는 않지만 이번 겨울의 마지막 일 것 같던 눈이 덕분에 녹지 않았을 것 같았다. 휴일 마지막 날 썰매와 눈집게를 챙겨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겨울 햇살만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햇빛이 넘실거리는 길의 반쪽에는 이미 봄이 당도한 것 같았고, 그늘진 나머지 반에만 겨울이 남아 있었다. 해가 비치는 자리엔 눈이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으니.



이제 봄도 멀지 않았다. 해가 1센티만 더 솟아올라도 길 위에 남은 ‘반’도 채 되지 않는 겨울이 물러갈 테지. 그와 함께 겨울이라 불렸던 많은 것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이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차갑고 맑고 투명한 공기, 날카롭지만 따스한 햇빛, 때론 잿빛의 하늘에 펑펑 쏟아지던 눈과, 그리고 마른 가지들……. 겨울의 모퉁이에 다다른 것 같다. 다시 또 올 테지만, 이별은 늘 슬프고 애잔하다. 거듭되는 시간 속에서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어서 그럴 테다.



응달진 숲길에는 예상처럼 눈이 녹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남편은 눈 쌓인 길을 골라 딸아이를 태운 썰매를 끌었다. 썰매가 미끄러져 나가면서 쉭쉭 소리를 냈다. 어린 시절 스케이트 장에서 얼음판을 달릴 때 나던 소리였다. 스케이트장을 간 게 언제였더라. 요즘도 사람들은 스케이트장을 가려나…….





***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무렵의 내가 스케이트를 신은 아빠 곁에 앉아 있는 사진이 있다. 아마 처음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판 위에 섰을 때도 아빠의 손을 잡고 있었을 테다. 그날은 오래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스케이트를 신겨주던 아빠를 기억하고, 아빠가 나와 언니를 스케이트장에 데려갔던 주말을 알고 있다. 아빠가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며 우린 스케이트를 배웠을 테지만 언제부턴가 아빠는 더 이상 스케이트를 신지 않았다. 언니와 나를 데리고 가 신발을 신겨 준 후 우리만 스케이트장으로 들여보내고 아빠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시간을 때웠다. 언니와 나는 해가 기울 때까지 스케이트를 탔다. 타고, 또 타고, 또 타고, 그래서 추위와 피곤함으로 발이 얼얼해질 때까지 얼음판 위를 달렸다.



겨울 놀이라는 게 마땅치 않았던 시절, 주말의 스케이트장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앉을자리를 찾고 간신히 엉덩이를 붙여 신발을 갈아 신을 수 있었다. 얼음판 위에서도 다닥다닥 붙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한 방향으로 휩쓸려 움직였다. 그런데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고 신이 났다.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음악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뒤섞여 공기가 술렁였다. 차갑고 고요한 겨울의 적막이 그곳에서는 맥을 추릴 수 없었다.



언니와 나를 스케이트장에 들여보내고 아빠는 무얼 했을까. 대기실에 앉아 내내 텔레비전을 보았으려나,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반나절은 족히 있었을 텐데 우리를 두고 집에 다녀오기도 했으려나. 많은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해마다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엘 갔으니 그런 날이 여러 번 쌓였을 텐데, 기억을 더듬어볼 때마다 떠오르는 건 몇 개의 동일한 장면뿐이다. 기억 속을 헤매며 하나라도 더 기억을 주워 보려 애쓰는 건, 있음과 있지 않았음 사이에 머무는 일을 '있었음'으로 남겨두기 위해서고. 그때 그곳의 그를, 이야기로 만들어 사라지지 않게 하고 싶어서다.





***





스케이트장에서 보내는 겨울날이 좋았다. 바람을 가르며 얼음판 위를 달리는 기분, 귓가를 스치던 쉭쉭 얼음 갈리던 소리도,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음악 속에 들썩거리는 분위기에 머무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스케이트장 밖으로 펼쳐진 낮은 숲과 드문 드문 놓인 집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며 먼 곳을 상상하는 것도. 그것은 가보지 못한 곳을 떠올리게 했고 그러는 사이 익숙한 작은 세상에 미세한 틈이 생기곤 했으니까.



발목까지 촘촘하게 끈을 조여 신어야 하는 스케이트는 차분하고 꼼꼼한 아빠와 어울리는 물건이다. 끈을 넣는 구멍이 쪼르륵 여러 개 달려있던 빨간색 스케이트. 발등에서 두 갈래의 끈을 교차시켜 구멍에 차례대로 넣고 당겨 단단하게 신어야 날 위에 섰을 때 발목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그 신을 아빠가 신겨주었다.



대충 끈을 끼워 한 번에 당겨서도 안 되고, 구멍이 많다고 건너뛰어도 안된다. 누군가는 귀찮아 한 칸 걸러 끈을 끼워 신기도 했고, 누군가는 발목 끝까지 끈을 감지 않기도 했지만, 아빠에게 그런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발에 딱 맞게, 그리고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끈을 끼워 신어야 했던 스케이트는 생각해볼수록 아빠를 닮았다. 아빠는 구멍을 돌아 나온 끈이 뒤집히거나 꼬이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발등에서부터 발목 끝까지 모든 구멍을 채우고 발목 근처에 있는 고리까지 빠짐없이 끈을 걸어 준 후에도 남는 끈은 발목에 돌려 감아 적당한 길이로 만들어 예쁘게 매듭을 지어 주었다.



그건 삶의 태도와 비슷했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누가 보지 않더라도 순서와 방법, 자기만의 규칙을 지키는 것, 무엇을 하기 위해 단단하게 기초를 세우는 일 같은 것. 이왕이면 흠이 없고 반듯하게, 가지런하고 예쁘게 마무리하는 것도. 스케이트 끈 하나를 묶는 데서도 아빠의 성격은 배어났다. 그런데도 아빠는 스케이트장 안에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노심초사하며 곁에서 지키고 있거나 따라다니며 이렇게 타라, 저렇게 타라 군말을 보태지 않았다.



아빠는 늘 조금 먼 곳에서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지 않았고, 크게 꾸짖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나 돌아보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아빠를 찾을 수 있었다. 어딘가에 있을 아빠의 존재를 느끼며 든든했고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얼음판 위를 날쌔게 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이 성장기 내내 나를 지탱했던 것 같다. 어쩌면 간섭을 싫어하는 내 성미를 알아 아빠는 그렇게 떨어져 지켜보기만 한 건지도 모르겠고. 아빠는 워낙 말수가 적었고 강처럼 평온한 사람이었다.



겨울 주말 스케이트장을 가고, 마음껏 얼음을 달리던 시간, 그 모든 걸 당연하다는 듯 누렸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무엇 하나 당연한 게 없다. 스케이트장을 갈 수 있었던 겨울 날도, 반나절을 기다려주던 아빠도, 빨간색 스케이트도, 그 모든 게 이젠 남아 있지 않으니.





***





폐장 시간이 다가오는 늦은 오후 무렵이 제일 좋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가 스케이트장은 한산해지고, 풍경에는 쓸쓸한 기운이 덧대어졌다. 그러면 더 먼 곳을 바라보며 얼음 위를 달릴 수 있었다. 하늘에 붉은 기운이 번지고 음악의 템포도 한결 느려지면 알 수 없는 애수에 젖어들었던 건 이별의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일 테다. 신나게 놀았던 하루와의 이별을, 평일과 다른 분위기, 스케이트장이라는 낯선 공간과도 헤어져야 할 테니.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다는 걸, 즐겁게 솟구쳤다가도 사그라들 수밖에 없는 감정이 있다는 걸, 모든 건 사라짐을 기약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는지도.



문 닫을 시간을 향해 쓸쓸한 분위기가 고조되던 스케이트장의 이미지는 이상하게 아빠와 닮았다. 거실 문간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아빠, 말없이 먼 곳을 응시하던 시선과 옅은 미소, 그 얼굴에 어리던 표정은 겨울 해 질 녘 풍경과 너무도 비슷하다. 내게 남은 아빠의 잔상이 쓸쓸한 탓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빠의 얼굴은 겨울 오후를 닮아갔다. 그것은 결코 여름이 될 수 없고, 봄날처럼 가볍고 밝은 것도 아니었다. 가을의 화려함도 거기엔 없었다. 소리 없이 저물어가는 늦가을의 사그라짐과 소멸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탄생을 대비하는 겨울의 인내와 기다림, 어떤 묵묵함이 그 얼굴의 전부였다. 하지만 겨울 햇살만이 지닌, 얼음을 녹이는 깊고 진한 온화함만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완벽주의자였고, 그래서 때론 차갑고 날카로웠다. 순백의 눈 덮인 겨울처럼. 그는 겨울이었고, 모든 계절 중 겨울을, 나는 사랑한다.





***





아이는 여러 번 썰매를 탔다. 남편은 아이가 바라는 대로 묵묵하게 썰매를 끌었다. 그러곤 눈덩이를 뭉쳐 마른 나뭇가지 위에 올려 두었다. 이번 겨울의 마지막일지 모를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