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맞춰 느린산책의 운영 방식도 자리를 잡아갔다. 어린 아기가 있어 가용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의 양도 한계가 있었다. 클래스와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수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더 좋았기 때문에 매장 판매는 예약 주문으로 돌리고 클래스에 주력하기로 했다.
여름으로 향하는 계절도 일을 추리는데 한몫 더했다. 열기를 내뿜는 오븐 앞에서 머물러야 하는 베이킹은 더위에 취약했다. 육체노동과 육아가 이어지는 매일매일이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첫 마음은 금세 옅어져갔다. 하지만 느린산책마저 없었다면 일상에 매몰되어 계절의 변화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아침마다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느라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이와 헤어져 작업실로 향하는 길이면 어느새 다리에 힘이 차 올랐다. 차도에 접한 번잡한 상가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 초등학교를 감싼 긴 담장을 따라 커다란 나무가 잎을 드리운 조용한 길이 이어진다. 천천히 그 길을 걸으며 매일의 날씨를 헤아렸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빛의 결을 느끼고 잎사귀의 색이 변해가는 걸 감각했다. 높은 담장 위 아무도 모르게 피어있는 도라지 꽃을 발견한 날이면 나만의 비밀을 찾아낸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달마다 수업 스케줄을 짜는 일도 그랬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고 마음을 더듬어보는 일이었다. 이맘때 나오는 과일은 뭘까?, 이런 날씨엔 따뜻한 디저트가 좋을지, 차가운 디저트가 더 어울릴지, 이번 달엔 어떤 특별한 날이 있지?, 그럴 땐 무얼 축하하고 선물하면 좋을지를 계속 생각했다. 어떤 수업이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줄 수 있을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이 계절에 사람들이 놓치지 않고 먹었으면 싶은 과일로 디저트를 만들었고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테이블을 차리는데 신경을 썼다. 계절의 꽃으로 테이블을 장식하고 디저트에 어울리는 차를 준비하고, 음악을 골랐다. 그러느라 저절로 자연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전하는 일과 방식에 더 섬세해졌던 것 같다. 느린산책의 일은 힘든 와중에도 늘 좋은 마음을 품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했다.
공간에도 기운이라는 게 있을까. 느린산책에 쏟았던 마음이 어떤 자장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 같다. 한 번은 멀리서 케이크를 주문한 손님이 왔다. 미리 만들어 둔 케이크를 가져가면서 평소 흠모하고 있는 분을 통해 우연히 느린산책을 알게 되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 말에 더 고맙고 반가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연결된 실을 따라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 건네었던 마음의 조각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어딘가로 계속 전달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돌고 돌다, 엮이고 엮이다가 때가 되면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마주치는 인연이 있었고, 누군가에게 보냈던 마음의 조각을 되돌려 받는 일도 많았다. 느린산책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멋진 상상을 하게 해 주었다.
한 번은 누가 수업을 신청했는데 같이 수업을 들을 거라며 알려준 동참자의 이름이 예전 직장 상사분과 같았다. 동명이인인가 하고 넘겼는데 수업 당일 내가 아는 그 분이 오신 것이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이렇게 만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분은 여전히 같은 곳에서 일하고 계셨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나는 베이킹 클래스를 하고 있고 거기에 수업을 들으러 오신 직장 상사, 이 모든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회사를 다닐 당시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회사는 야근이 일상이었고 가끔 밤샘 작업까지 요구했다. 그땐 회사와 일이 전부인 삶을 살았다.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기를 함께한 사람을 마주하고 보니 그리 먼 일 같지도 않았다. 지긋지긋했던 야근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어떤 시간은 그걸 같이 보낸 사람들 속에 살아있다. 살다가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나면 까맣게 잊혔던 시간이 엊그제처럼 떠오르는 이유다. 그러면 지난 시간은 애틋해지고 미웠던 사람도 그저 반갑다. 지난 시간에는 늘 그리움만 뽀얗게 쌓여 있었다.
임신 중인 분들도 자주 만났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태교로도 좋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즐거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임신 기간 중의 관심사는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엄마가 되어 듣는 예비 엄마들의 이야기가 낯설었지만 한껏 행복에 젖어 있던 과거를 추억하게 해 주었다. 아이를 만날 기대에 부풀어 좋은 것만 먹고 보았던 그 시기는 매일이 은은한 행복 속에 잠겨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육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사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예비 엄마들에게 묻어나는 독특한 분위기가 수업에 온기를 더했다. 볼록한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는 몸에서는 온화하면서도 나른한 기운이 번져 나왔다. 아기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생명을 품고 있는 존재를 보호하기 위한 세계의 장치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기운은 함께 있는 사람마저 너그럽게 만들어 주었다.
추석을 앞둔 수업에서는 인절미 마들렌, 흑임자 피낭시에, 그리고 밤 파운드케이크로 선물 세트를 만들었다. 세 가지 메뉴를 만드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지만 수업 내내 즐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분위기는 매번 달라진다. 유난히 적극적이고 소통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수업은 더 활기차게 흘러갔다. 그날은 베트남에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며 기다렸던 수강생을 만났다. 베트남에서 베이킹 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다. 그분에겐 일로 하던 베이킹을 다른 이의 수업에 참여함으로써 순수하게 즐기는 기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베어 나온 즐거움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좋은 기운은 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니까. 사람들 사이로 가을 하늘만큼이나 청량하고 맑은 에너지의 자장이 퍼져 나갔다.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다. 수업이 시작되는 아침엔 작업실에 해가 들지 않는다. 그런데 분주하게 실습을 마치고 시식할 때가 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햇빛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남향에 통창이 달린 작업실은 그야말로 햇빛 맛집이 된다. 따가운 햇살에 잠시 계절에 대한 감각마저 상실했다. 사람들은 둘러앉아 햇살이 조명을 밝힌 테이블을 사진에 담았다. 수강생들과 모여 앉아 먹는 디저트 한 입, 향긋한 차 한 모금에 몸도 마음도 느슨해졌다. 그럴 때면 우리를 둘러싼 시간마저 잠시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빗장도 헐거워졌다. 처음 만난 타인에게 숨겨놓았던 진심을 열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과 삶, 취향과 고민, 꿈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금세 친밀함을 느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면 육아로 닫혀 있던 일상이 한 뼘 확장되었다. 나이, 환경, 젠더, 관심, 시선, 방향, 꿈, 제각각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커다란 테이블 주위에 모여 앉아 자기 마음속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꺼내 보여주었다. 그 돌멩이들이 쌓여 탑을 만들기도 했고 하나하나 놓여 서로를 잇는 돌다리가 되기도 했다. 돌멩이가 품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는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했고 또 누군가의 마음은 새로운 꿈을 꾸라고 간지럽히기도 했겠지. 그런데 누구보다도 내 마음에 자주 내려앉았다. 힘들게 일하며 흘린 땀을 닦아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래서였겠지. 언젠가부터 디저트를 만드는 시간보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식 시간이 더 기다려졌던 건. 아무리 수업이 늦게 끝나도 시식 시간을 거를 순 없었다. 먹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디저트에 이야기로 그림자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디저트보다 사람들이 담긴 사진을 더 많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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