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캠핑
“평생 누릴 자유를 한꺼번에 누리는 기분이겠다.” 간밤 내가 전송한 사진을 보고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우연히 만난 숙소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날. 그런 행운을 누리며 내게 온 자유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캠핑장을 이동하는 와중에 일을 병행하느라 신경 쓸 것이 하나 늘었다. 일은 뿌리 뽑힌 것 같은 나의 불안한 정신에 도움이 되지만, 일정을 맞추느라 일행에게 폐를 끼치기도 한다. 마감이 임박했는데 캠핑장의 인터넷과 전기 사용이 원활하지 않아 울상이 되어버린 나를 보며 동생도 안타까워했으니. 별 수 없이 가까운 곳에 있는 숙소를 알아보았고 나와 딸아이만 거기서 하루 묶으며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위치한 초록의 나무집. 집 앞 너른 정원은 풀과 나무로 울창하고 한 편에는 작은 텃밭과 과수원이 있다. 정원을 지나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이 집에 속한 것 같은 고요한 해변에 닿는다. 집의 내부는 오래된 원목 가구와 나무 마감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겼고 그런데도 잘 관리되어 청결했다. 전체적으로 여백이 많은 인테리어라 편안했고. 숙소 주인인 벤은 깊고 맑은 눈에 환한 웃음이 인상적인 사람이다.
늦은 오후 해변으로 나갔다. 물이 어찌나 맑던지 맨 눈으로 바라보아도 물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어디 숨어있었는지 갑작스레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고기가 나타나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갔다. 다른 편에서는 새끼손가락 한마디 만한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춤을 추듯 움직였다. 물이 빠지면서 수면 위로 드러난 돌에는 홍합과 굴, 소라가 한가득 붙어 있고. 물속 모래 바닥 위엔 납작 엎드린 불가사리가 지천이다. 안으로 얼굴을 넣지 않았는데도 모든 게 맨 눈으로 훤히 보였다. 안경을 써서 시력을 조정한 것처럼 모든 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날 밤 창문엔 보름달이 걸렸다. 휘영청 어찌나 밝던지 밤하늘에 둥그런 전등이 켜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벤이 잘 잤냐고 물었다. 잠자리는 편안했고 집 앞 비치의 맑은 물과 너른 자연이 좋다고, 모든 것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답했다. 이 모든 걸 제공해 준 당신께 너무너무 고맙다고. 그 말에 벤이 말했다. “그랬구나, 너는 참 아름답구나(yeah, and you're so beautiful)." 나도 모르게 활짝 웃고 말았다.
그림처럼 수려한 자연을 품은 곳이지만 그만큼 편의 시설과 떨어져 있어 감내해야 할 불편과 외로움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멋지고 좋은 곳은 많지만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은둔의 삶을 선택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고. 벤의 집은 그의 삶의 방식,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아름답다던 벤의 말은 집과 주변의 경관, 그걸 소중히 돌보는 이의 가치를 알아본 내 시선에 해준 말이었고. 그렇게 헤아리고 나니 더 기분이 좋다.
벤은 B&B를 꾸려가며 요가스쿨을 운영하는 요가 선생님이다. 외모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선함은 수행의 영향일까, 주변을 둘러싼 자연의 힘일까. 투명하게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요가를 하고 정원을 가꾸며 사는 삶. 빛나면서도 깊이가 느껴졌던 눈과, 더듬거리느라 느릴 수밖에 없는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기다려주던 그의 태도는 특별했다. 짧은 영어로 자꾸 무언가를 말하게 되었던 것도 그에게서 보이는 환대와 경청의 뉘앙스 때문이었으니까.
적절한 여백을 품고 곱게 나이 들어가는 집, 그런데도 청결했던 오래된 집의 구석구석에서도 그의 성품이 엿보였다. 집과 집이 있는 장소, 살아가는 모습이 한 사람을 그려 보인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가 나를 그려내는 일이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그리며 살고 있을까. 내가 그리고 있는 삶에 진실된 내가 담기고 있을까.
벤의 집이 좋아 태즈마니아에 다시 오고 싶어 졌다. 언젠가 그때엔, 내가 그려낸 삶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