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이라는 말을 사랑한다
봄을 준비하느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한 계절처럼, 2월과 3월은 삶의 새로운 단계를 맞느라 우리의 날도 바쁘다.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는 2월 말, 3월 초는 급류를 통과하는 물살처럼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끝을 맺는 뿌듯함과 작별의 아쉬움도 잠깐, 새로 시작하는 용기와 출발의 움직임으로 인생의 계절도 봄을 맞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간다. 입학식을 앞두고 처음에는 때가 되면 일어나는 일이지 싶어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거치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니 요란 떨 필요도 없다고. 하루 이틀 식이 다가올수록 아이에게는 한 번뿐인 순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은 우리가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또렷해진다. 하나의 길도 차로 지난 것과 두 발로 또박또박 걸은 것이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기듯. 마음의 최선만은 다하고 싶었다. 그러다 또 하나를 떠올렸다. 사랑은 동사요, 행동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문장을. 사랑은 마음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실행으로 만들어진다던 말. 축하와 응원의 마음을 가만히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실천하기로 했다.
학교 가방과 준비물을 챙기고, 고운 원피스와 구두를 마련했다. 그러느라 시간을 들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아이가 무얼 좋아할까 고심했다. 딸의 긴 머리를 어깨까지 잘라 단정하게 빗어주고 예쁘게 꽂을 머리핀도 같이 골랐다. 좋아하는 것을 공들여 고르며 두려움보다 기쁨으로 시작을 맞길 바랐다. 걱정이 되기도 할 테지만 엄마가 응원하며 곁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고. 한글을 읽기 시작한 아이가 눈으로 볼 수 있게 카드에 그 마음을 글로 적어 주었다.
입학식날. 커다란 운동장 위로 햇살이 쏟아져 눈이 부셨다. 파란 하늘이 유난히 높았고 날은 차가운데도 빛에는 봄이 가득했다. 긴장과 즐거움이 뒤섞인 몸짓으로 아이는 팔랑거렸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위축되는 대신 기대감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교실로 들어가자 드문드문 자리에 앉은 아이들과 앞에 서 계신 담임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의 손짓에 아이는 앞으로 걸어 나갔고 선생님께 이름표를 받아 자신의 책상을 찾아 앉았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조마조마했으니, 아이의 마음도 그랬을까.
식이 시작되고 순서에 따라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앉고, 인사를 하거나 답을 하는 일이 이어졌다. 교실 뒤에 서서 아이가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묘했다. 설렘과 걱정, 기쁨과 초조가 뒤섞여 부풀어 오르는 마음. 비단 내 아이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일 앞에 옹송그려 앉은 작은 아이들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모든 게 처음인 막막한 순간, 받아들이고 견디며 기어이 겪어 내는 용기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
뒤에 서 있는 나와, 다른 부모들, 우리 모두가 저렇게 작은 아이였던 때가 있었다는 걸 기억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이 가보지 않았던 계단 앞에서 발을 높이 들어 올릴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 시간을 통과하며 성장하는 걸까. 이만큼 자라느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용기를 썼을까. 모두가 참 대견했다. 자라느라 애썼던, 여전히 애쓰고 있는 모두가 근사했다. 내 앞의 아이들, 곁에 있는 어른들, 모두를 한껏 축하해주고 싶었다. 모두가 자신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되겠다고.
아이들에겐 용기를 내고 두려움과 맞서야 하는 일이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 큰 격려와 이해, 기다림과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시작의 어려움을 헤아리면 잘하길 기대하기보다 기다리는 법부터 배워야 할 테고. 커다란 용기를 내느라 아이들에겐 많은 시간이 걸릴 테니까. 어른의 기준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의 속도로 천천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격려하고 도와야지. 누군가의 응원 없이 우리는 버티고 통과하며 자라 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이야 당연히 자라는 거지, 때가 되면 졸업하고 입학하는 게 대수인가,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성장 또한 결코 당연하지 않다. 자라나는 존재는 매 순간 힘을 내야 한다. 인간은 도움 없이 자랄 수 없고, 자람은 시간과 노력, 믿음과 사랑이 쌓여 발생하는 일. 아이 자신과 부모의 노력,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이 모여야 한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마주하는 이 순간. 무심히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해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입학식을 마치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아이는 긴장과 어려움의 기색 없이 환하게 웃으며 놀이터로 달려갔다. 어린이집을 같이 다녔던 친구를 만나 신나게 놀았다. 어쩌면 아이는 자신이 무얼 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해 얼떨떨한지 모르겠다. 그 어색함을 떨치려 익숙한 대로 개구쟁이 모습을 택했는지도. 바짝 긴장해 굳어버리는 대신 활짝 웃는 걸 택한 아이가 반가웠다. 낯선 환경, 처음이라는 어려움에서도 용기를 내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즐거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씩씩함이 기뻤다.
그런데도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다 알 수 없고 부족한 데로 나를 기울여 보는 날들. 집에 돌아오니 쓰러질 듯 피곤했다. 가만히 뒤에 서 있었을 뿐인데 마음만은 아이를 따라 아주 먼 곳까지 다녀왔던 걸까. 눈앞이 뿌예질 정도로 노곤한 걸 보니 미세하게 바뀌고 있는 삶의 장면과 역할에 맞추느라 버벅거리고 있는 건가 싶고. 그러면 작은 아이는 또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안쓰럽고 대견하고.
너와 나란하게 걸음을 맞춰 보고 마음을 포개려 한껏 기울여도 본다.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이 진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한참 뒤에 있는 아이를 기다려주고 말없이 밀어도 주면서, 애달파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응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라서 자신이 되는 일,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는 일, 누군가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일. 삶에는 아름다운 것투성이다.
인생의 계절도 봄인가 보다. 마음을 다해 피어나느라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