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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Dec 08. 2022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고

목요일의 말



코 끝이 얼얼할 정도로 공기가 차가웠다. 숨을 내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희부연 입김이 공중으로 번지다 작은 물방울이 되어 머플러 주변에 맺혔다. 밤하늘은 까맣게 두터워졌고 멀리 보이는 별빛이 노랗게 반짝였다. 하아, 천천히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마셨다. 겨울 숲 내음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바닥에서 말라가는 가을 낙엽의 매캐함은 소나무와 찬 공기가 빚어낸 알싸함에 뒤덮여 푸르렀다. 11월의 마지막 날. 잎사귀를 떨군 빈 가지로 나무들은 애처로웠다. 끝을 향해 가는 일에는 어쩔 수 없는 비감이 어린다. 그 애연하고 그윽한 감정을 사랑한다.



나는 사랑에 쉽게 빠지는 사람, '사랑하기'가 취미나 특기인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누군가를 홀로 품고 있었다. 같은 반 남학생이나 선생님, 그도 아니라면 동성의 친구까지, 호감 이상의 감정으로 남몰래 사랑을 키웠다. 중요한 것은 ‘남몰래’ 일 것이다. 사랑은 상대가 모르는 상태로 내 안에서 온전했다. 혼자만 알고 있을 때 감정은 발효 중인 빵 반죽처럼 몽글몽글 부풀었다.



좋아했던 선생님들은, 국어, 체육, 지구 과학, 지리, 수학으로 과목마저 다채롭다. 이 목록은 좋아했던 과목과도 일치한다. 그중 중학교 삼 년 내내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이 각별하다. 수업 시간 중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교과서를 읽게 했는데, 차례가 되어 책을 낭독했을 때 판서를 하시던 선생님이 뒤를 돌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목소리가 좋으니 아나운서를 하면 좋겠다.” 그때 내 꿈은 아나운서였다. 고이 품고 있던 바람을 선생님이 알아 채 준 것 같았다. 그날부터 국어 시간은 특별해졌다.



국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었고 수업은 딱히 즐겁거나 활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수업의 이미지는 창백하게 바랜 빛이 들고 적막할 정도의 고요로 뒤덮여 있으니. 흥미 없이 시무룩한 아이들 틈에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내 얼굴이 선생님 눈에 훤히 보이지 않았을까. 선생님께서는 종종 내게 교과서를 읽게 했다. 시가 나오는 부분은 몽땅 내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일으켜 세우지 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게 했고, 덕분에 떨리는 마음을 숨길 수 있었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했지만 알게 모르게 정성을 들였다.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려드린다는 마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다는 마음에 내 목소리를 살짝 흔들렸을 것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그때 외운 시들이 아직까지 입 속에 맴돈다. 시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시를 소리 내어 읽는 시간만은 좋았다. 발음되어 나오는 단어들 사이에서 말개졌다. 물과 종이를 만나 번지고 마는 수채물감처럼 감정을 물들이고 마는 시의 색. 선생님께서 시를 아끼셨구나, 지금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수업을 위해 시를 읽었지만 선생님께서 들으실 테니 더 공 들여 읽었다. 그 소리를 가장 귀 기울여 들었을 사람도 선생님이었고. 시가 읊어지던 순간 시라는 세계가 만들어졌다면, 우리는 잠시 시와 같이 다정했을까.



선생님은 황순원의 ‘소나기’와 알퐁스 도데의 ‘별'도 사랑했다. 어느 날인가 자신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산과 들을 뛰놀며 자란 소년 시절의 감성이 자신을 국어 선생님으로 만들었다고. 세련된 양복 차림에 안경을 쓴 도회적 외모로는 짐작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빗 속을 걸으며 등 뒤로 소녀의 심장을 느끼던 ‘소나기’ 속 소년과 아가씨가 자신의 어깨로 살포시 기대어 오는 순간 두근거리던 ‘별’의 양치기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었다. 장작이 타고 남은 잿더미에서 발견하는 작은 불씨처럼 선생님을 떠올리는 사이 그때의 감정이 살아난다.



대상의 일면만 보고 사랑에 빠지고 감정을 키우기도 한다. 그러다 일상 속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상처 입는다. 긴 시간 남몰래하는 사랑에 익숙했던 나는 상처가 두려운 사람, 사랑이라는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울렁거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의 사소한 일면을 목격하고 실망해버린 나는, 단숨에 선생님에 대한 사랑을 접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도 혼자 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남몰래, 혼자 할 때, 사랑은 조금 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걸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은 '빠진 상태'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짝사랑 또한 빠진 상태임에 분명하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변함이 없고, 그이를 둘러싼 무수한 그러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애정 하는 감정일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강인하지만 내가 아는 많은 사랑은 연약하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쉽게 울고 쉽게 웃는다. 평소와 다르게 큰 것을 포기하면서 말도 안 되게 작은 것을 욕심내기도 한다. 감정은 사랑이라는 배경 안에서 아이의 속살처럼 여리고 투명해진다. 어린아이의 웃음과 눈물, 식물의 개화와 낙화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나약하고 여릴수록, 난해하고 모순적일수록 아름다워지는 진실이 거기에 있다.



사랑할 때 우리는 나를 너머 밖에 존재하는 대상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나’라는 경계를 허물고 낯선 자리로 옮겨 가길 시도한다. 그러느라 긁히기 쉬운 속살을 드러낸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기꺼이 나약해지고 여려질 수 있다. 사랑의 감정에 중독되는 이유는, 사랑을 할 때 마음이 갖게 되는 순한 속성 때문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하겠다고, 한순간 찬란히 깨어져도 괜찮다고, 불가능에 가까운 다짐을 해보려고 용기를 내면서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빛을 만든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무언가를 사랑했던 많은 마음이 끝났고 시간이 지나 잊혔다. 그런데도 계절의 바람이 바뀌는 때나 어떤 풍경이나 공간에 발길을 멈추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과 감정이 있다. 되돌아갈 수 없고 다시 만날 수 없어 슬퍼지지만 기억하는 마음은 여전히 애연하고 그윽하다. 딱딱했던 마음이 풀어져 촉촉해진다. 기억할 때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겹겹이 축적된 사랑의 기억이 우리를 보호한다. 기억을 껴입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사랑은 끝난다. 드문 드문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무수한 사랑의 기억으로 나이테를 새길 것이다.



*김연수 '사랑의 단상 2014' <이토록 평범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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