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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Apr 14. 2023

모든 순간이 꽃 같아

벚꽃 길 걷다가



오랜 친구와 양재천을 걸었다. 개천을 사이로 늘어선 벚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온화한 볕이 봄을 향해 조명을 비췄고 모처럼 하늘도 파랗게 맑았다. 우리는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노란 개나리 꽃무덤 사이로 들어가 꽃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계셨다. 꽃들 속에 당신의 얼굴을 넣으려 돌멩이를 밟고 올라섰고 그러느라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그 앞에서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 굳은 무릎을 굽혔다. 당신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려는 시도가 사랑스러우면서 뭉클했다. 삶을 즐기고 귀히 여기는 데엔 저런 사소한 몸짓으로 충분할 것이다.




벚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 길목에서 젊은 여자 둘이 사진을 찍고 있다. 만개한 벚꽃이 탐스럽게 매달린 줄기를 끌어당겨 자신의 얼굴 옆에 두고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런 친구를 사진에 담느라 또 다른 이는 연신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었다. 그 틈에서 친구와 나도 사진을 남겼다. 이제는 얼굴 나오는 사진을 찍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이 되었지만, 그럴수록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지 모른다. 반짝하는 순간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므로 적극적으로 남기고 기억하고 싶다. 삶은 기억이니까.




친구가 주말 아이들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고 말했다.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주말이면 꽃만큼 사람이 많을 게 뻔하다. 복잡한 길에서 아이들은 피곤하다 투정 부리지 않을까. 그 나이엔 봄꽃의 아름다움을 잘 모를 테니까. 짧게 왔다 가버리는 것, 사라짐 속에 아찔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건 한참 뒤에나 알게 되니까. 이별과 상실 뒤의 안타까움과 아쉬움, 후회를 번복한 뒤, 삶의 유한함이라는 흐릿한 진실이 드러날수록, 봄꽃의 아우라는 강렬해진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친구가 감탄했다.

“그러게 말이야. 잠깐이라서 더 아름다운 걸 거야. 금세 사라질 걸 아니까 더 절실하게 예쁜 걸 거야.”




벚꽃이 유독 아름다운 건 짧게 왔다 폴폴 흔적 없이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꿈처럼 등장해 소멸하기에.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필 테지만 그때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나도 세계도 변할 테니까. 삶과 벚꽃은 연속할 테지만 매 순간은 오직 하나. 저 빛은 지금에만 맺힌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생의 모든 순간이 꽃 같다. 피어올랐다 사그라들고 마는 것. 다시 오더라도 순간의 감정은 그때뿐. 순간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벚꽃이 알려준다. 한창일 때 꽃을 보며 감탄하듯, 여기에만 존재하는 감정과 상황을 생생하게 감각해야 한다고.




이별과 소멸을 생각하면 초초분분(秒秒分分)*이 소중하다. 그러므로 아름답지 않은 시간도 없다. 만개한 꽃처럼 감정이 펼쳐지는 자리마다 고유한 생명력이 있다. 나중을 기약하는 대신 초초분분 살뜰히 걸어간다.




꽃 지기 전, 한 번이라도 더 걸어야겠다.






*김해서 작가의 음악에세이 '초초분분'에서 따온 단어입니다.





PS. 진 자리마저 어여뻤던 벚꽃, 내년에 다시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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