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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an 15. 2024

시를 쓰듯, 사이좋게

2024년 쓰는 마음과 사는 마음



2024년에는 시를 써 보기로 했다. 어떤 산문을 읽고 시인이 좋아지면 자연스레 시집을 들춰 보았다. 시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시는 사랑이며 기쁨이라고, 운율있는 음악이며 말로 하는 놀이라고.


몇 년간 글쓰기를 해왔는데 그걸 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글 쓰는 마음은 종종 즐거웠지만 자주 버거웠고 흰 종이 앞에 앉는 게 두려워 도망쳤던 날도 많다. 쓰면 쓸수록 글로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분명한 대신 오래 계속하고 싶은 바람은 커졌다.



즐겁게 오래 기쁘게, 시 쓰는 마음


그때 ‘시’가 나를 두드렸다. 시라면 기쁘게 오래 쓸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애쓰는 글보다 노래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 그 방법을 알려줄 것 같다.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족 송년음악회를 열었고 해마다 송년회를 하자고 가족들과 약속했다. 글쓰기에 즐거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우쳤듯 살아가는 일에도 즐거움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다.


아이가 피아노 학원엘 가기 싫다고 했던가, 일로 바쁜 내게 심심하다고 칭얼거려서였던가, 아이에게 관심거리를 만들어 줘야겠어 무심코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송년 음악회 하자! 각자 노래나 춤, 피아노든 장기 자랑을 준비해서 발표하는 거야. 1, 2, 3등 순위 매겨 선물도 주는 거야!”


아이는 틈틈이 피아노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음악회에서 연주하겠다며 하나 둘 곡을 꼽더니 마지막엔 11곡을 준비했다. 모두 짧은 동요였지만, 뭘 배웠냐고 물으면 ‘기억나지 않는다’며 말을 돌리던 아이의 연주를, 드디어, 들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열의를 보이는 아이의 무드가 깨지지 않도록 나도 피아노를 치겠다고 공표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배우고는 수십 년 동안 치지 않았는데 이참에 나도 한 곡 연습해 보자 생각했고. 그에 비해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송년음악회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전날 밤 남편이 아이에게 노래나 춤을 같이 하자고 부추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피아노 연주를 준비해 놓은 상태라 아빠가 이거 하자 저거 하자는 말에 귀찮은 눈치였고. 일정이 닥쳐서야 준비 못한 상황을 면피하려는 듯한 남편의 모습에 나는 눈을 흘겼다.


음악회 당일, 아침 일찍 남편이 아이와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노래 실력은 어설펐고 중간중간 음이탈도 있었지만 나름 진지해 이상하게 웃겼다. 갑자기 의욕 충만해졌는지 남편은 춤도 추겠다며 딸아이에게도 방송 댄스에서 배운 춤을 하라고 바람을 넣었다.



어설프고 따뜻한 송년음악회


드디어 송년음악회가 시작되었다. ‘2023년 서윤이네 송년음악회'라는 타이틀을 적어 창문 앞에 붙였다. 내가 처음으로 다음으로 아이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11곡을 차근차근 연주했는데, 제대로 된 아이의 연주를 처음 들어 감개무량했다. 피아노 학원에 얼굴 도장만 찍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단숨에 사라졌다.


이어서 남편과 아이가 아침에 연습했던 노래를 불렀다. 날짜가 임박해 아이를 꼬시는 남편에게 못마땅하던 마음은 단숨에 사라지고  둘이 리듬을 맞춰 노래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제야 이번 이벤트의 의미가 헤아려졌다.


잘하기 위한 장기자랑이 아니라 즐겁기 위한 장기자랑이니까, 다 같이 재미있는 게 더 좋은 거라는  뻔한 사실이 선명해졌다. 이럴 때면 매사 시큰둥해서 별생각이 없나 싶어 보이는 남편이 의뢰로 지혜롭다는 생각도 들고.  


두 사람의 노래는 어설펐지만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 무언가를 잘해서 홀로 돋보이는 것보다 부족한 대로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노력이 더 보기 좋은 게 아닐까. 잘 해내기 위해 홀로 애쓰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함께 더디게 나아가면서 즐거움을 경험하는 일도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남편의 코믹 댄스가 이어졌다. 원래 코믹한 춤은 아닌데 몸치인 남편이 열심히 추는 동작이 그 자체로 웃음을 자아내는 공연. 그런데도 온몸을 불사르며 움직이는 남편의 모습이 웃기다 못해 뭉클했다. 배꼽이 빠져라 웃는 통에 눈물이 찔끔, 남편의 가상한 노력에 눈물이 또 찔끔. 그 일은 지난해 최고로 크게 웃었던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남편이 온몸을 던져 선사한 웃음 덕분에 부끄럼쟁이 딸아이가 춤까지 췄다. 세상에 즐기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없고 그런 사람의 무대라면 관객은 언제든 환호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언제나 더 힘이 센 건 진지함이 아니라 유머다. 연습과 노력으로 아이에게 성취감을 맛보게 하려던 나의 진지함보다 어설프지만 유머를 장착한 남편의 임기응변이 이날 더 빛났다.




무엇보다 나와 "사이좋게"


나에게 마흔의 전반전은 자신과의 싸움으로 힘겨웠다. 싸우듯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를 되찾고 삶의 중심을 만들기 위해 그런 시간이 분명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흔 후반전은 그랬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싶다. 나 자신과 사이좋게 나이 들고 싶다. 산다는 건 기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즐기는 사람이 애쓰는 사람보다 더 좋기 때문이다.


몇 년 간의 독서와 글쓰기로 어렴풋이 감지했던 것을 2023년을 지나며 또렷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부족하고 넘어지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다면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설령 실패하더라도 나와 당신을 크게 끌어안고 또다시 걸어 나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러니 무엇이 되고 얼마나 성취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2024년은 누구보다 나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남편과 아이, 가족들, 내가 만나는 타인, 그 모든 세상과 더 즐겁게 공존하고 싶다. 혼자여서가 아니라 함께라서 더 기쁜 날들을 미루지 않고 만나고 싶다. 시를 쓰듯, 노래하듯, 나와 삶을 즐기고 싶다.


즐기는 사람은 누구보다 힘이 세다. 내 앞의 삶을 고통스럽게 돌파하는 대신 곁에 있는 이들과 손을 잡고 한 번이라도 더 웃기로 한다. 잘 하겠다는 욕심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거라 완벽하지 않다면 포기하겠다는 자세 대신 어설픈 몸짓에도 괜찮다 안아주고 부족하더라도 시도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기로 한다.


아이와 남편과 건강하게 웃었던 그날이 이토록 소중하게 기억에 남을 줄 몰랐다. 가족들 모여 앉아 '하하 호호' 웃을 수 있는 것으로 생은 충분하며 감사할 만하다는 걸, 2023년이 인생의 밑거름처럼 내게 건네 주었다. 그 거름을 자근자근 밟으며  2024년을 시작한다. 사이좋게, 시를 쓰듯!








* 이 글을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70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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