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가는 귀여움
동네 과일 가게 하나가 없어졌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형편이 어려워 문을 닫은 건 아닌지 마음이 쓰였다.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 작은 가게의 사장님들께 존경심과 유대감을 남몰래 품고 있다. 홀로 가게를 꾸려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는 데 어떤 노력과 헌신이 필요한지 조금쯤 알아서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서로가 서로의 물건을 팔아주며 버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옆길 미용실 사장님, 큰길에 있는 순댓국 집 사장님, 아래 길 그림책 방 사장님, 뒷길 책방 사장님, 맞은편 꽃집 사장님이 우리 집 단골이었다. 내게 필요한 게 생기면 저절로 그 사장님들 가게로 발길이 향했다. 품앗이나 상부상조라는 말이 옛말이 아니라는 얘기. 주변 상권이 좋아져야 자신의 가게도 잘 된다며 주변 사장님들은 나를 반겨주셨다.
가게를 그만둔 지금도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 편이다. 짧은 자영업자 생활에서 배운 마음 덕분일까. 어려서 엄마한테 자주 들었던 말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로 팔아주고 돕는 거라던 말. 표면적으로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지만 서로의 먹고사는 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돕는 일일 것이다. 김치 담그는 사람이 없는 우리 집의 경우 동네 김치 가게 아주머니가 안 계시면 어디서 입맛에 맞는 김치를 구할 수 있을까. 가까운 거리에 슈퍼와 약국이 있고, 인심 좋은 채소 가게가 있는 것도 뚜벅이인 내겐 중요하다.
8년째 다니고 있는 동네 미용실도 그런 가게 중 하나. 남자 미용사가 운영하지만, 내 스타일을 존중해 주고 가격과 서비스 면에서 부담 없어 계속 다니고 있다. 한때 가게를 운영할 때는 미용실 사장님과 자영업자의 고충을 나누기도 했고 동네 상권의 변화에 대한 소식이나 가게 운영에 대한 조언을 얻었다. 내겐 미용실과 아저씨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하나의 문 같다.
얼마 전 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들렀다. 그날따라 아저씨 얼굴이 조금 기운 없어 보였다. 해가 갈수록 아저씨 얼굴에서 주름이 늘고, 흰 수염이 생기면서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처럼 가게도 낡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겠지. 바닥의 검은 타일이 유난히 검어 보이고 기물들도 낡아 보이고.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도 났다. 아파트 단지 화단 아래 상가가 있어 습기가 많이 찬다고 언젠가 아저씨가 해주었던 말씀이 떠올랐다. 괜히 나까지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가게에도 주름이 생겼구나 생각하다 구김 없는 새 미용실을 가면 기분이 산뜻해질까, 더 만족스러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단숨에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최신의 좋은 시설에서 우아하게 서비스를 받고 싶어 미용실을 가는 건 아니다. 적합한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해 주는 곳이면 충분하다. 과한 친절이나 관심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시설이 너무 좋은 곳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해 불편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멀리 나가 머리를 할 여유가 없었고, 이제는 그런 수고를 들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집 근처 전철역 주변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미용실이 십여 개지만 아저씨 가게를 고수하는 건, 익숙해서 편안하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알게 모르게 세심하게 나의 컨디션을 읽어주신 덕일 테고. 과한 친절과 부담스러운 서비스 대신 적당한 선에서 인간적인 관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내 안에는 아저씨에 대한 의리랄까, 우정이랄까 하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단순히 편리함 만으로 아저씨의 미용실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 어떻게 지내시나, 장사는 잘 되나 궁금해진다. 어느새 나는 사람 냄새를 느끼고 싶어 미용실을 가는 것 같다. 머리를 하는 동안 흘러나오는 아저씨의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요즘 주변 가게들 상황은 어떤지, 맞은편 공사하는 자리에 뭐가 들어오는지, 요즘 사람들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프로그램이 인기고, 어디에 어떤 맛집이 있는지. 인터넷을 뒤져야 찾을 수 있는 쏠쏠한 정보를 아저씨는 술술 풀어내니까. 미용실을 나설 때면 나라는 사람이 업데이트된 기분이다.
머리를 하는데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서 친구랑 놀게 두고 과일과 간식을 챙겨주고 나왔는데, 배가 고프다며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날마다 먹는 간식의 양이 늘어 몸에 안 좋은 군것질거리만 찾아 걱정하던 차였다.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는 내게 아저씨가 그러셨다. “그 나이 때에는 붕어빵, 떡볶이 이런 거 먹는 게 가장 큰 재미잖아요.” 붕어빵 하나가 너무너무 맛있고 친구랑 사 먹는 떡볶이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릴 나이. 그 시절 행복의 모양은 붕어빵이나 떡볶이 모양일 테지.
머리 손질을 마치고 집에 갈 채비를 하는 내게 아저씨가 물었다. “붕어빵은 사가기로 결정하셨어요?” 붕어빵 하나 사는데도 이것저것 따지고 걱정하는 자신이 나도 답답하고 피곤한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한 아저씨의 물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거, 걱정할 수 있죠, 그래도 사 가야 하지 않을까요, 하는 뉘앙스가 느껴졌달까.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걱정하는 내 마음도, 붕어빵이 먹고 싶은 아이의 마음도 하찮지 않다고 공감해 주는 것 같아서. 이러니 내가 계속 미용실을 찾지.
아저씨의 얼굴 위로, 가게 구석구석으로 시간이 부지런히 쌓인다. 그게 조금 짠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반길 일이다. 새것만 쫓는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요란하지 않게 한 자리를 지키는 일의 가치를 묵묵히 보여주어서. 더 나은 무언가만 좋은 게 아니라 낡은 방식과 익숙한 것의 친근함, 시간이 형성한 움푹함 같은 것도 좋다고. 많이 사고 빠르게 버리고 새것만 좋아하는 이 시대는 낡은 그릇에 담긴 소박한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고 넘쳐 부담스러운 서비스 말고 규모 있게 뭉근한 진심을 넣은 서비스로 인간적인 관계를 다져가는 곳도 우리 곁에 필요하다.
낡아가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시간의 흔적이 빛처럼 내려앉는 동네가 되면 좋겠다. 그런 곳에서는 골목이든 건물이든, 그리고 사람마저도 나이 듦이 초라해지거나 서글퍼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아저씨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내 머리를 잘라주는 상상을 해본다. 그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미용실을 나와 붕어빵을 사러 가는 길.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집에 가는데 사라진 과일 가게 아주머니가 다른 가게에서 과일을 진열하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반찬가게였던 자리로 과일 가게가 이전한 거였다. 문을 닫은 게 아니었구나. 조만간 과일 사러 들러야지. 어수선하지만 활달한 기운이 길 위로 스쳤다. 나를 둘러싼 이 동네의 자글자글한 테두리가 거칠지만 귀여워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대로 지원군이 되어 주는 테두리. 좁은 골목들이 대지의 주름처럼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