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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Nov 28. 2024

폭설이 들려준 단어

시간이 머무는 곳


117년 만의 11월의 폭설이다. 평년보다 기온(1~3도가량)이 높이 올랐던 서해가 채 식지 못한 상태에서 북쪽의 찬 기운을 만난 탓이라고 한다. 따뜻한 공기와 찬 공기가 급작스레 만나 두꺼운 눈구름이 형성되었다.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눈이 쏟아진 이유다. 흔치 않은 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기후 변화로 인한 현상이다. 1도 차이가 이토록 거대한 눈구름을 불러온다.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의 모습에 반가운 마음이 앞서다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눈발에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소리 없이 두께를 늘리는 눈,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을 포위하는 눈은 무서운 것이다. 습기가 많은 눈은 건조한 눈보다 3배 정도 더 무게가 나간다. 이번 눈은 수분을 많이 머금어 잘 뭉치고 미끄러져 떨어지는 대신 나무에 들러붙어 가지를 짓누르며 쌓인다. 눈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것, 눌리는 것, 부러지고 무너지고 마는 것을 생각한다.      


자연은 의도가 없고 눈에도 아무런 생각이나 의도는 없을 것이다. 훤히 알던 것들이 눈 이불을 덮자 전혀 모르는 대상으로 다시금 눈앞에 펼쳐진다. 풍성한 잎사귀에 뒤덮여 있을 때는 헤아리지 못했던 나뭇가지들의 선이, 없던 선에 흰빛을 올려 강조한 듯 허공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눈 풍경 앞에서 조금쯤 어리둥절해하며 감탄할 때, 조금쯤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일 때, 세상에 막 태어난 아기가 태어났음을 인식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감각의 일부를 회복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눈 앞에서 순전해진다.


우리는 눈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맑고 깨끗해진다. 맑고 깨끗하고 희고 고요한 눈의 속성처럼.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다. 흰빛을 보고 환해지는 아이들과 강아지처럼, 머리로 대상을 평가하고 구분하는 대신 눈으로 본다. 아는 척하지 않고 조금 아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솔직함을 자랑스러워한다. 그 시간은 눈이 녹아 사라질 때까지로 길지 않다. 눈이 사라지면 우리는 또다시 눈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눈 녹듯 잊고 살 것이다.   


그러므로 눈을 마주한 날은 기념할 만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기쁘게 축하할 만하다. 발목이 젖도록 눈을 맞고 밟는다. 눈놀이하던 어린 시절의 친구가 떠오르고 스케이트 끈을 묶어주던 아빠의 얼굴도 잠시 내 곁을 걷는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헤쳐 낯선 고장에 닿았던 밤 코트 자락을 펼쳐 안아주던 연인의 모습도 어느 하나의 눈송이에 박혀 있다. 눈송이 하나하나는 모두 다른 모양을 지니고 있다던가. 하나의 눈송이에 하나의 기억이, 또 하나의 눈송이에 또 하나의 기억이, 폴폴 날아오른다. 눈은 빗방울처럼 단숨에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을 따라 허공에 머물다 비스듬히 땅 위로 몸을 누인다.      


낮에는 하교한 아이들을 데리고 눈밭을 다시 걷는다. 아이들은 눈을 저희처럼 만난다. 또 다른 아이처럼 눈을 대한다. 두드리고 끌어안고 몸을 비비며. 조심스레 바라보는 대신 온몸으로 뛰어든다. 달리고 뒹굴고 구르며 한바탕 신나게 논다. 눈은 어떤 친구를 더 좋아할까. 자기만의 감상으로 멀찌감치에서 감탄하거나 걱정하는 친구일까, 부둥켜안거나 같이 놀자 끌어당기며 함빡 웃어주는 친구일까.      


나무들은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고 울라브 하우게는 썼다. 아이들은 차가운 줄도 모르고 안는다는 생각도 없이 한 아름 눈을 안아 미끄럼틀 위로 옮긴다. 눈 앞에서라면 나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왜 사랑하는지, 사랑이 무언지 모르는 법이니까*. 어린아이들이 그런 사랑을 하니까. 이유와 목적 없이 당신을 보고 듣고 만지며 끝없이 헤매는 사랑. 영원히 알려하지 않고 감탄만 하는 대상, 만날 때마다 와락 끌어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열매를 맺어 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울라브 하우게



어제의 반복이듯 오늘을 맞는다. 커튼 너머로 희붐한 빛이 번진다. 거실로 나와 창밖을 보니 어제처럼 눈이 날린다. 나무 위로 쌓인 두께가 어제보다 두껍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어제와 조금 다른 마음으로 시작한다. 기쁨이 슬픔으로 반가움이 두려움으로 기우는 찰나, 모르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판단하거나 생각하지 않기로, 당신을 모르는 채 사랑하기를 택한다.       


잠옷 위로 양말을 신고 패딩을 걸치고 여명이 떠오르는 공원으로 나간다. 여정을 마치고 이제 쉬기로 한다는 듯 눈송이들이 살포시 나무와 길 위로 내려앉는다. 무언지도 모른 채 세상에서 가장 흰 옷을 선물 받은 나무들이 길의 양옆으로 늘어섰다. 깨끗하고 희고, 맑고 고요한 호위를 받듯 그 길을 걷는다. 없는 소리를 들으려 귀를 세우고 모든 것이 흰 세상에서 더 희거나 덜 흰 것을 가늠하려 집중해 보다 그저 없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몇 발자국 떨어진 자리에서 나무에 쌓인 눈이 쏟아져 내린다. 후드득,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난다. 나무가 진동했을까, 눈이 몸을 움직였을까. 아침의 빛이 살며시 손가락을 대었나. 후드득, 후드득... 후드득... 몇 그루의 나무가 눈을 터는 광경을 보고 듣는다. 두꺼운 책을 펼쳐 찾고자 했던 문장을 발견하고 말없이 책 등을 덮는 사람처럼 숲을 덮고 빠져나온다.


나무의 진동.

눈송이의 뒤척임.

아침 빛의 지문.

폭설이 들려준 단어를 받아 적는다.

     



*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알베르투 카에이루(페르난도 페소아의 이명 중 하나)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김한민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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