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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게 뭘까

사랑하려고 씁니다

by 춤추는바람



사랑한다는 게 뭘까. 전부 알 것 같다가도 하나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되어버리는 말.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사랑하는데 그 마음을 정의하지도 못한다니 나 자신이 딱해지고 만다. 하지만 분명 어제도 이게 사랑이지! 하고 마음속으로 외쳤던 순간이 있다.


내가 최근 사랑을 느꼈던 순간을 나열해 볼까.


산수유꽃이 활짝 핀 걸 보았던 때. 작고 노란 꽃들이 돋아나 산형꽃차례를 이룬 모습이 섬세한 세공사의 손에서 탄생한 보석 브로치 같았다. 꽃 앞에서 이건 사랑이구나 생각했다. 산수유나무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꽃으로 피었다고. 사랑에 빠지면 낯빛이 달라지고 심지어 사람이 변하기도 하지 않나. 아무것도 없던 메마른 가지 위에 빛 덩어리 같은 꽃이 달렸으니 이건 변신에 가깝다. 나무도 봄이 되면 세상과 끔찍한 사랑에 빠져 전혀 다른 얼굴로 피어나 제모습을 바꾼다. 기어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사랑이다.


친구들과 대화하다 봄나물처럼 귀한 게 없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남편 직장 때문에 도쿄에 나가 있는 친구는 봄나물 놓치는 게 가장 아쉽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 말에 밥상에 봄나물을 챙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금세 사라지는 게 봄나물이다. 내가 요리할 줄 아는 나물이라 봐야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지만, 그거라도 챙겨 먹으면 입으로 누리는 봄은 충분할 것이다. 쑥은 여린 잎을 먹어야 하니 더 서둘러야 한다. 냉이며 달래며 두릅이며, 생각만으로 군침이 도는 봄나물이 내게도 있다. 그러니 번거롭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밥상에 올려주고 싶었다.


하루는 일을 마친 오후 동네 슈퍼로 나갔다. 쑥이나 달래, 냉이가 있으려나 기웃거렸다. 자주 가는 마트 두 곳과 채소 가게 한 곳을 순회한 덕에 쑥과 달래를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다. 간장에 달래 총총 썰어 넣어서 달래장 만들어 솥 밥에 비벼 먹어야지 생각했다. 거기엔 쑥 된장국이 잘 어울릴 것이다. 날마다 새 밥을 짓지 못하고 반찬도 사 먹은 경우가 많은데, 모처럼 초록초록한 것들로 갓 지은 밥을 낼 생각에 내 마음도 설렜다. 저녁 준비가 바빴지만, 봄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런 순간엔 제대로 사랑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건강하게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음식을 지을 때, 그걸 사람들에게 먹일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일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하는 것 같다.


된장 풀고 두부 넣고 끓인 쑥국과 채 썬 무를 올려 지은 솥 밥에 달래장 올려 쓱쓱 비벼 먹는 저녁. 단출하지만 참 달았다. 봄이 주는 사랑을 먹어 그랬을까. 봄이 우리를 사랑해서 이렇게 맛있는 나물을 주는 거야.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그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너를 사랑해서 이렇게 밥을 짓고 너를 살찌우게 하는 게 엄마의 기쁨인 것처럼, 봄도 우리를 살찌우게 하는 게 기쁨인가 봐. 봄이 우리를 사랑하는구나.


어릴 적 학교를 다녀오거나 회사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늘 같은 걸 물었다.

“밥은 먹었니?”


배가 고플 때는 가장 반가운 말이었지만 대체로 그 말에 시큰둥했다. 늘 듣는 말이라 “어서 와라.” 정도로 들렸던 것 같다. 한창 다이어트에 신경 쓸 때 엔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지금 내가 가장 경계하는 말이 ‘밥’인데 엄마는 그런 내 맘엔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아 서운했다. 친구 문제, 공부 문제, 회사 일이나 연애로 마음이 괴로울 때도 그 말이 무신경하게 들렸다. 엄마는 밥밖에 관심이 없구나. 세상에 중요하고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엄만 맨날 밥 타령이야? 하면서 짜증을 낸 적도 있다.


아이가 많이 자라 더 이상 내 손이 크게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문득 이런 깨달음이 내게 왔다. 이제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건강한 음식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도 진짜 친구는 될 수 없을 테고, 공부나 힘든 일을 대신해 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언제나 뒤에서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아이가 힘들 땐 한껏 안아주고 위로해 줄 테지만, 그것 말고 무언가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도 있었으면 싶은데, 밥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가능하면 건강하고 그러면서 맛있는 음식말이다.


힘들고 괴로울 때 밥 한 끼 든든하게 먹고 나면 조금쯤 기운이 나고 마음이 풀어지기도 하니까.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해 주거나 속상함을 덜어주지 못하더라도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밥 힘이라는 걸 넣어주고 싶다. 누군가를 견디게 하는 힘은 사랑이다. 그러니 밥은 사랑이다. 맨날 밥밖에 모른다고 엄마를 미워했는데, 엄마가 내게 준 최선의 사랑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언제쯤에나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될까? 우리는 대체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수나 있는 존재일까? 내게 오는 사랑조차 알아채지 못하기 일쑤고, 누군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랑조차 건네지 못하는데. 그러니 조건 없이 주어지는 사랑,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는 사랑이라도 제때 받았으면 좋겠다. 산수유꽃을 바라보고 봄나물을 먹는 것처럼. 나무가 띄워 보내는 연애편지와 봄이라는 계절이 퍼뜨리는 사랑의 팡파르라도 마음껏 누려보자.


사랑을 느꼈던 한 가지가 더 있다.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하루 이틀 새 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 부랴부랴 목련을 보러 나갔다. 꽃망울이 부풀어 오른 걸 본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 벌어져 있었다. 나무 꼭대기에 달린 꽃받침은 이미 벌어져 꽃잎이 갈래갈래 펼쳐졌다. 목련이 피었다. 그 하얀 얼굴 아래서 혼자 기뻤다. 나를 위해 여기 있다는 듯 내 위에서 환한 꽃들 보며 사랑받는 기분이었다. 지구가 우리를 사랑하는구나, 나무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꽃들이 내가 보고 싶어 기어이 태어났구나 감탄했다. 사랑이 아니라면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없던 것이 태어나는 일. 밤하늘에 달이 솟듯 단숨에 어둠을 밝히는 일. 지난하게 견디었던 어떤 시간이 찰나에 위로받는 일은.


올해는 봄꽃들 보며 세상이 나를 사랑한다고 마음껏 착각해 보기로 했다. 개나리, 매화, 벚꽃, 조팝, 진달래, 철쭉, 산딸꽃, 이팝꽃, 나를 사랑하기 위해 찾아올 꽃들을 기다려야지. 제때 사랑하는 법엔 여전히 서툴지만, 제때 사랑을 받는 데는 능숙해져 봐야지.


사랑한다는 게 뭘까.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너를 보기 위해 어떻게든 찾아오는 일이다. 입안에 단 밥을 넣어 배부르게 하고 그래서 조금쯤 마음의 근심을 덜어주는 일. 당신이 견딜 수 있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일, 어둠에서도 잠시 환해지도록 웃어주는 일이다. 당신이 모르더라도 당신을 향해 나를 펼쳐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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