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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독자 만들기

계속 쓰기 위한 팁

by 춤추는바람


글은 들어주는(읽어주는) 이로 완성된다. 단 한 명이라도 나의 글을 읽어주면 글에 존재 이유가 생긴다. 거기다 공감까지 얻으면 다음 글도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난다.


한 번은 모임 숙제로 쓴 글에 자신이 없었다. 의미도 목적도 모르겠는 글. 아무래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숙제는 해가야 하니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었다. 초고를 쓰고, 문단 배열을 수정해 전체 내용을 다듬었다. 마지막까지 문장을 깎았다.


그날의 주제는 ‘내 안의 연약함’이었다. ‘연약함’을 떠올리자 고등학교 시절 매일의 계획을 적던 손바닥만 한 수첩이 생각났다. 거기에 지키지 못할 계획을 반복해서 세웠다. 하지 못한 계획 옆에 X표가 늘어도 실천 가능한 수준을 점검해 목표를 낮추는 대신 무리하게 계획을 짰다. 어제 지키지 못한 계획 때문에 조급한데다 더 많이 해야한다며 욕심을 부렸다. 이제와 돌아보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이상만 높았던 어린 내가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100쪽, <멀고도 가까운> 레베카 솔닛, 김현우 옮김, 반비



이토록 부끄러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일단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지키지 못한 것, 부족했던 것만 보였다. 그런데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그럼에도 계속 노력했다는 게 보였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대신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매일 계획을 적었으니 일정 시간 책상 앞에 앉아 공부했다. 계획을 모두 지키지 못했지만 다섯 중에 둘이나 셋은 해냈다. 묵묵히 성실했던 내가 거기 있었다.


글로 적으며 지난 과정과 나의 심리 상태를 돌아보고 그에 대한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사이 시선의 방향과 폭이 바뀌었다. 부족함만 보던 시선은 여러 정황을 살펴 그럼에도 해낸 무엇을 찾아냈다. 조리개를 열어 더 밝게 그리고 줌아웃으로 더 넓게 바라보았다. 내 안에 있으면서 한 발 뒤로 물러서 나를 포함한 세계를 조망하려는 ‘나이면서 조금 더 큰 나’를 만났다. 진실에 가깝게 쓰려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정확하게 쓰려고 주의를 기울이느라 글 쓰는 자아는 나이면서 나보다 조금 더 큰 시선을 갖는다. 그렇게 글로 쓰고 나자 부끄러워 숨겨야 할 것 같던 일이 사소하게 느껴졌다. 흐릿했던 이야기는 조금 선명해졌다.


그날 모임 장소를 향하는 전철에서 오전에 정리해 두었던 글을 다시 검토했다. 내 방이 아닌 여러 타인과 공유하며 움직이는 공간에서 글을 읽자 이전과 다르게 읽혔다. 조금 더 가볍고 움직일 여지가 있는 글로, 종결되어 닫힌 글이 아니라 어딘가로 열리는 글로 읽혔다. 그러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글을 고쳤다. 확정적으로 썼던 결론을 바꾸어 느슨하게 결말을 열어 두었다. 모든 글에 반드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어떤 글에서는 모르는 걸 모르는 상태로 남겨 둘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답을 주는 것보다 질문을 던지거나 여운을 남기는 글을 더 좋아한다. 글쓴이가 닫지 않은 문은 독자에게로 열려 각자의 답을 찾도록 이끌어준다.


모임에 도착해 다른 멤버들이 써 온 글을 들었다. 각자의 글엔 쓴 사람의 개성이 담겼고 그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이라 고유했다. 너무도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어딘가 나와 닮은 구석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 여기 없지만 이 글에 공감할 사람, 자신과 유사한 구석을 찾아 위안이나 도움을 얻게 될 또 다른 이를 상상한다. “여기서만 읽기 아까워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글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다른 멤버의 글을 듣고 우리가 주로 보이는 반응이다. 그처럼 타인의 글을 읽는 일은 글을 쓴 사람을 듣다 여기 없는 누군가를 헤아려보는 경험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의 외연을 확장해 보는 연습이다.


다른 멤버들이 써 온 이야기에 공감하고 나면 나의 사적인 글에도 누군가 공감할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 내가 그랬듯, 다른 이들도 하나의 문장, 혹은 어떤 단어에 자신을 포개볼 거라고. 내가 써 온 글을 천천히 읽는 동안에는 바라던 대로 다섯 명의 멤버들이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나만의 경험일 거라고 의심했던 부분에 사람들은 공감했고, 어떤 문장을 짚으며 좋다고 말했다. 들어준 이들이 있어 ‘이 글이 의미가 있을까?’했던 고민은 사라졌다.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이다. 즉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284쪽, <멀고도 가까운> 레베카 솔닛, 김현우 옮김, 반비



글로 교감한다는 건 떠들썩하고 요란한 일이 아닐 것이다. 작은 끄덕임이나 하아-하는 낮은 숨 소리, 눈맞춤과 잔잔한 미소, 조심스러운 질문과 "저도 그래요." 하는 말 정도가 오간다. 클릭 한 번과 작은 하트 표시처럼 고요하고 잔잔하다. 직접 비를 맞지 않더라도 창을 사이에 두고 바라만 봐도 빗방울이 피부에 닿는 감촉을 상상할 수 있듯이.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사이에도 내면은 내게 들어오는 이야기를 향해 손을 뻗느라 들썩거릴 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들으며 타인의 이야기를 껴안고 그것들과 섞였다. 우리는 서로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기꺼이 그 속으로 들어갔다. 나의 삶을 여행지처럼 여겨주는 친구들이 있어 글쓰기는 계속된다.


글쓰기를 지속하기 어려운 당신 곁에도 함께 쓰자는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 더디게 천천히 걸을수록 즐거워지는 여행처럼 서로에게 글쓰기라는 여행지가 되어 나보다 조금 더 큰 나를 탐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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