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

레몬 파운드 케이크, 기본이자 진리

by 춤추는바람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잃어버린 게 무얼까 생각하다 레몬 파운드 케이크를 구웠다.


‘위켄드(weekend)’라고도 불리는 레몬 파운드 케이크는 흔한 디저트 중 하나다. 밀가루와 설탕, 달걀과 버터를 동량으로 넣어 만드는 쉽고 간단한 레시피이지만 레몬의 상큼한 맛이 더해져 언제 먹어도 입안을 새롭게 한다.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맛. 그런 기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첫 마음이랄까,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랄까. 해를 건너며 생활의 빛을 놓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맴돌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의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날마다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오전 시간을 보내는 게 엄마인 내가 세운 유일한 계획이었다. 거기에 아이 방학을 핑계 삼아 나도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을 원 없이 읽고 싶다는 바람을 숨겼다. 아이에겐 방학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벤트일 테지만 내겐 아이의 세끼 챙기기와 돌봄이 증가하는 힘겨운 구간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방학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평소보다 게으름을 피우며 느슨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빼놓을 수 없다. 느슨한 시간에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속도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생활 방식과 분위기까지 ‘느슨한’을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곁에 있는 이가 지닌 기분까지 반영될 것이다. 그러니 방학 동안만큼은 가능한 한 ‘느슨한’ 기분을 유지하고 싶었다. 언제 마감이 닥칠지 예상할 수 없는 프리랜서 처지지만 어떤 일정은 과감히 포기할 수도 있지,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다.


그랬는데 방학과 동시에 아이가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가장 중요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도서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책만 읽는 방학을 상상하는 사이 그건 내가 더 바라는 바가 되었는데 시작조차 못 했다. 그 때문일까, 새해, 1월, 방학, 겨울, 눈. 설렘과 기대를 건네기도 했던 단어들마저 빛을 잃어갔다. 방학과 독서의 즐거움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아 기운 빠졌다.


무엇을 잃은 걸까.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진 않을까. 내게 질문을 던지다 보니 가장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는데 다다랐다. 지난 연말의 가족 여행부터 이러저러한 모임 탓에 루틴이 깨져버렸다. 일도 글쓰기와 독서도, 어디선가 박자를 놓쳐 리듬이 늘어졌더. 박자를 회복할 타이밍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 나와 달리 아이는 서서히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갔다.


아이는 약 기운 때문인지 아침 9시가 넘도록 늦잠을 잤다.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아이 몸엔 잠이 유용한 약일 터라 굳이 깨우지 않았다. 아이가 깨는 순간부터 나의 돌봄 노동이 시작되니 늦잠은 반가운 손님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면 아이는 홀로 시간을 보내야했다. 독감 때문에 외출을 못 하고 친구도 만날 수 없어 시무룩했다가도 금세 놀이거리를 찾아냈다. 종이 만들기를 하거나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그러다 지치면 소파에 기대앉아 책을 읽었다. 내 방에서 일을 하다 거실을 내다보면 책에 빠져든 아이와 거실 바닥으로 마구 널부러진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정확하게 내가 바라던 방학의 모습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 읽기에 몰두하기. 별것 하지 않으면서 공백 같은 시간 보내기.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아이가 물감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다음 날에도 무얼 그릴까 고민하길래 아기자기한 그림이 담긴 그림책을 건네며 따라 그려보라고 알려 주었다. 슬며시 36색 색연필을 꺼내 아이가 주로 머무는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다.


어떤 순간엔 갖가지 색연필이 엉클어진 테이블 위로 한낮의 겨울빛이 드리운 장면이 내 앞에 펼쳐졌다. 바닥에 깔아 놓은 러그는 한쪽이 구겨진 채로 비뚤게 놓였고 아이가 벗어 놓은 양말이 뒹굴었다. 색연필과 아이의 드로잉 노트와 종잇조각들, 가위와 테이프, 책과 구겨진 러그와 뒤집혀 벗은 양말과…. 거실 테이블과 바닥 위에 어수선하게 놓인 물건을 겨울의 빛이 온화하게 비추는 순간, 이런 깨달음이 왔다.


‘저게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것들이야. 저걸 제거하는 게 아니라 저기에 리듬을 부여하는 게 우리의 일이야!’


일을 마친 저녁엔 나도 모르게 거실 바닥에 널린 물건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거실 바닥을 점령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부르자 그것들이 각별하게 다가왔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내 삶을 창조하는 고유한 요소로 보였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 대상과의 관계가 변한다. 성가셨던 물건이 사랑스럽게 보였으니 그게 바로 해방이다.


나를 피곤하고 귀찮게 하는 생활의 걸림돌을 포용하는 게 진정한 삶의 기술이다. 그것에 적당한 자리와 간격을 마련해 주어 사이좋게 지내는 게 삶을 창조하는 방법 아닐까. 가능하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그 목록을 채우면 좋겠지. 수시로 손에 닿아 익숙해지도록 가까이에 늘어뜨려 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치운다 해도 그것들은 들이닥칠 것이다. 내게 리듬을 상기하라고 요구하면서. 들이고 내고 넣고 빼고 구르고 덮으면서 청소가 아닌 연주를, 정리가 아닌 노래를 지으라고 내 앞에서 신호를 보낼 것이다.


어느 날엔 책꽂이 위에 잘 놓여 있던 화분들마저 거실 바닥 위로 옮겼다. 햇빛이 잘 드는 창가로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대열에 식물도 동참시켰다. 아이의 드로잉 북 옆에는 한동안 잊고 있던 나의 드로잉 북까지 올려두었다. 이참에 나도 그림을 좀 그려볼까. 독서와 그림, 겨울빛과 식물, 우리의 방학이 엉성하지만 가만한 리듬을 타고 느리게 흐르기를 상상한다.


자신에게 맞는 리듬을 만들고 그걸 유지한다면 충분히 좋은 삶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침마다 시 한 편을 적고 일기 쓰는 일을 고수했다. 그 리듬이 기도처럼 나의 내면과 생활을 안녕하게 해주었다. 연말과 새해 사이 리듬을 잃고 헤맸는데 의심과 질문 없이, 이유나 목적을 따지지 않고 나만의 리듬으로 돌아가련다. 읽고 쓰는 일이 내 삶에 드리운 빛이었음을 깨달았으니.


늦게 일어나 천천히 밥을 먹고 소파에 기대 책을 읽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 아이 곁으로 겨울의 빛이 떨어진다. 뜨겁고 강렬하지 않더라도 은근하게 온기를 드리우는 방식으로. 은근하게 지속되는 한 줌 빛 같은 생활, 기본을 지키고 리듬을 유지하는 생활. 내가 꾸리고 싶은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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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닫고 쓰는 인생 레시피>는 격주 연재됩니다.

다음 글은 1월 27일에 발행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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